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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 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사장님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리본을 다듬어 주며 웃음 섞인 핀잔을 줬다. "딸 키운 엄마가 리본도 못 묶어요?"
 사장님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리본을 다듬어 주며 웃음 섞인 핀잔을 줬다. "딸 키운 엄마가 리본도 못 묶어요?"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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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쇼핑하러 갔다가 리본 달린 원피스를 입어 보았다. 나는 손재주 없는 게 엄마를 닮았는데, 엄마는 옷의 리본을 이리저리 묶어 보더니 모양이 잡히지 않자 가게 사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사장님은 우리 쪽으로 다가와 리본을 다듬어 주며 웃음 섞인 핀잔을 줬다.

"딸 키운 엄마가 리본도 못 묶어요?"

농담인 걸 알기에 같이 웃으며 적당히 대꾸했지만 왠지 기분이 묘했다. 딸이라고 해서 다 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딸 키우는 엄마라고 해서 다 만능인 것도 아닌데. '엄마가 그것도 못 해?' 엄마는 살아오면서 이 질문을 얼마나 많이 직면해야 했을까.

엄마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최근 KBS 2TV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라는 프로그램의 제작발표회에서 김민종씨의 발언이 현장에서 즉시 논란이 됐다. "아이는 역시 와이프가 키워야 하는 것 같다. 와이프가 아이를 편하게 키울 수 있도록, 엄마가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아이도 키울 수 있도록 내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논란의 조짐이 보이자 사회자가 다시 추가 질문을 던졌고, 그는 "프로그램을 하며 어머니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라며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아내가 아이를 잘 보듬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는게 제 몫인 것 같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라고 발언을 다시 정리했다(관련기사: "육아는 와이프가..." 아찔했던 김민종, 이 프로 필요한 이유).

이것은 물론 어떤 개인에게 적용되는 상황일 수 있다. 그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충분한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결혼한다면 아내는 집에서 최대한 편하게 아이를 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좋은 의미였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육아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남편이 좋은 환경을 만들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전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해보니 역시 어렵더라, 와이프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나는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을 구분 짓는 것부터 적절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육아가 아닌 다른 체험 프로그램이었다면 '역시 여자(또는 남자)가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을까. '육아는 고단하다'는 경험의 교훈이 '육아는 아내의 일'이라는 성 역할로 당연하게 귀결되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온 이유다.

생애 최초로 결혼이나 육아를 맞닥뜨릴 때, 우리는 사회적으로 익숙한 성 역할에 따라 상대방에게 남자 또는 여자로서의 역할을 자연스레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남성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을, 여성에게는 가사 능력을 기대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런 기대치 때문에 실제로 그 역할이 점차 더 강화되기도 한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그 영역의 능력치가 쌓이는 것이다. 반대로 그런 기대치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 해도 결과가 기준에 못 미치면 남편/아빠 또는 아내/엄마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결혼은 나도 처음이라서
 

백종원 대표에게 요리를 배우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남자 연예인이 '전 잘 부치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당시 백 대표는 '본인이 해 먹을 생각을 하라'고 대꾸했다. 맞는 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요리를 비롯한 가사는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고, 심지어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막 결혼했을 때에도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 모두 집안일에 대한 조언은 늘 나를 향해 말씀하시곤 했다. 입고 있는 옷을 보며 빨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식재료를 챙겨 주며 요리법을 가르쳐 주실 때면 당연한 듯 나에게'만' 당부했던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남편을 데려와 같이 설명을 들으며 '남편이랑 같이 할게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나 역시 결혼 초에는 아내이자 여자로서 당연히 집안일에 대해 능숙하게 꿰뚫고 있어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을 느끼기도 했다. 둘 다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집안일을 잘하는 것이 아내로서의 매력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안일을 나눠 하면서도, 모르는 게 생기면 그는 자연스럽게 나한테 묻곤 했다.

"김치찌개 어떻게 끓이지? 고기 먼저 볶아, 김치 먼저 볶아?"

요리를 한다고 나선 남편이 질문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레시피를 검색해 알려주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리 초심자인 나의 머릿속에 각종 레시피가 탑재돼 있을 리는 없었다. 답은 인터넷에 있는 게 당연했다. 한동안 그의 질문에 힘겹게 답을 찾아주다가, 언제부턴가는 '나도 몰라, 네가 찾아봐'라고 대꾸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해낸다는 건 그 일을 수행하는 법을 공부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 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는 것은 각자가 나름대로 노력해야 하는 영역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엄마는 뭐든지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엄마의 능력은 끝없는 공부와 실패와 경험과 희생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원하는 역할을 질문하자

 
 그러니까 쉽게 '이건 역시 아내가 잘해', '애는 엄마가 잘 보지'라고 기대하거나 칭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을 누군가 잘 해냈다면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가 아니라 비교적 그 사람의 성향에 맞는 일이거나, 여러 번 해본 일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쉽게 "이건 역시 아내가 잘해", "애는 엄마가 잘 보지"라고 기대하거나 칭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을 누군가 잘 해냈다면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가 아니라 비교적 그 사람의 성향에 맞는 일이거나, 여러 번 해본 일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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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남자들은 '내 여자는 집에서 편하게 지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히며,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는 자신의 사회적 능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배우자 입장에서 든든할 것이고, 또 그렇게 생각해주는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여자들도 있다.

하지만 집에서 살림을 돌보는 것이 정말 '편한' 역할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원하는 역할을 먼저 묻고 조율할 필요가 있다. '결혼하며 일 그만두고 집에서 쉬어'라는 말은 상대에 따라 의지가 될 수도 있지만, 강요라는 이름의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결혼으로 이뤄진 '가정' 하면 떠오르는 남녀의 역할 분배는 기본적으로 가부장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성은 집안일을 돌보며 내조를 하고 남성은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한다. 그래서 남편은 '바깥양반'이고 아내는 '집사람'이었던 것이다.

성 역할의 구분이 흐려진 현대에서도 가정 내 역할 분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준이 꼭 성별이 될 필요는 없다. 꼼꼼하고 자상하게 아이를 잘 보는 남편도 있고, 돈을 더 잘 버는 아내도 있을 것이다.

임신과 출산은 분명 여성의 몸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내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해서 여성들이 저절로 '엄마'가 되는 건 아니다. 아기가 우는 이유를 엄마들이 빨리 알아채는 건 타고 난 모성애 덕분이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아이를 돌보며 하나씩 배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쉽게 '이건 역시 아내가 잘해', '애는 엄마가 잘 보지'라고 기대하거나 칭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을 누군가 잘 해냈다면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가 아니라 비교적 그 사람의 성향에 맞는 일이거나, 여러 번 해본 일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서로에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또 무엇을 잘하기를 원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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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여행·문화 담당 기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기 위해선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