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이즌 리얼> 스틸컷

<다니엘 이즌 리얼>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최근 공포영화의 트렌드는 인간 내면에 대한 집중이다. 이전에는 원한 또는 저주에 의해 나타난 악령이 공포의 원동력이었다면 최근 작품들은 씻어내지 못한 내면의 아픔과 불안전한 현재가 원인이 되고 있다. 

내면 문제에 대해 스릴러에서 자주 써먹는 소재가 흔히 이중인격 또는 다중인격이라 말하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다. 개인에게 가해진 충격적인 기억을 잊거나 이기기 위해 또 다른 인격을 만들어 낸다는 이 설정은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악마를 길러내는지 보여준다.
  
수상한 다니엘이라는 존재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인 <다니엘 이즌 리얼>과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는 고통스러운 현실과 이로 인해 약해진 내면이 어떻게 악을 길러내는지 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니엘 이즌 리얼> 부터 살펴보자. 루크는 어린 시절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 때문에 가정에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였다. 한 살인마가 카페에 난입, 사람들을 쏴 죽인 학살사건이 있던 날, 루크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자 유일한 말동무인 강아지 인형을 안고 집 밖으로 나선다.

사건 현장 앞을 지나던 루크는 온몸에 총상이 있는 여종업원의 시체와 눈이 마주친다. 그 끔찍한 공포 속에서 루크 옆에 '다니엘'이라는 친구가 나타난다. 루크는 다니엘을 집에 데려오고 처음 생긴 친구에게 깊은 우정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엘이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한 루크는 어머니를 죽일 뻔하고 루크가 가상의 친구 다니엘과 어울리는 걸 더이상 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인형의 집에 다니엘을 가둘 걸 명령한다.

 
 <다니엘 이즌 리얼> 스틸컷

<다니엘 이즌 리얼>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학생이 된 루크는 우울함을 이기지 못해 상담을 받는다. 주변에 그를 좋아하거나 아껴주는 친구는 한 명도 없고 이혼한 어머니는 정신질환 증세가 더 악화되어 루크를 힘들게 만든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루크는 어린 시절 인형에 집에 가둔 다니엘을 다시 부르게 된다. 그리고 루크 앞에 나타난 성인이 된 다니엘은 적절한 조언과 도움으로 루크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네 개의 인격을 지닌 여자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의 교코는 네 개의 인격을 지니고 있다. 본래 인격인 교코와 레즈비언 나오미, 자유분방한 유카리, 어린 시절 인격인 소녀 하루는 모두 교코를 보호하기 위한 인격들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집에 들이는 남자들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교코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인격들을 만들어 낸다. 나오미는 남자를 혐오하게 만드는 인격, 유카리는 기가 세고 막무가내인 어머니를 상대하기 위한 인격, 하루는 과거의 아픔을 모두 품고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인격이다.

교코는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작가인 타지마를 만나게 된다. 평소 타지마의 책을 좋아하던 교코는 그에게서 지금은 절판된 데뷔작을 빌리게 된다. 하지만 인격 나오미가 그 책을 버리고 쓰레기장에 버려진 책을 본 타지마는 충격을 받고 교코에게 화를 내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도망쳤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다시 찾아와 돈을 요구하고 인격 유카리는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태도로 교코를 겁먹게 만든다.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 스틸컷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카리가 인격으로 나타난 날 이후 잠에서 깨어난 교코는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어머니는 교코를 살인범으로 지목하고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이를 말리던 타지마는 교코와 더욱 가까워지게 되고 그녀가 지닌 내면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던 중 불쑥 타지마의 집을 찾아온 교코의 어머니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교코가 과거 살인을 저질렀으며 그녀와 엮인 남자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을 말이다.
  
 <다니엘 이즌 리얼>과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에 '공포' 장르의 색을 입히며 이야기의 깊이를 더한다. <다니엘 이즌 리얼>의 공포는 환상이라 여겼던 다니엘이 주 인격으로 나타나는 순간 시작된다. 주 인격이 된 다니엘은 폭력을 휘두르고 루크의 미래를 망치려 든다. 다니엘은 루쿠에게만 있는 인격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내면의 깊은 욕망인 '심연'이다.

작품은 다니엘이라는 공포의 정체를 심연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외부에서 겪는 고통과 좌절이 내면을 무너뜨릴 때 심연에 있는 깊은 악은 눈을 뜬다. 더이상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여길 때,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그동안 욕망과 본능을 누르고 있던 선과 도덕이라는 선은 무너지고 심연이라는 깊은 악에 빠지게 된다. 눈을 뜬 심연은 인간을 악마로 만들어 버린다.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는 과연 살인을 저지른 게 교코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인격인지에 대한 미스터리를 보인다. 교코의 내면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인격이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그녀 내면의 인격들이 교코를 보호한 덕분에 악이 나타나지 않았고 외부의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말이다. 이 영화가 교코의 내면을 주목하는 이유는 과연 악을 이기는 존재는 선인가 아니면 또 다른 악인가 하는 질문 때문이다.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 스틸컷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 스틸컷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교코는 어린 시절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하던 남자를 옥상에서 떨어뜨려 죽였다. 그녀는 악을 이기기 위해 스스로 악을 저질러야만 했다. 만약 교코의 내면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악마라는 인격을 만들어 냈다면 결국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악을 길러내야만 한다는 암울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 이 작품은 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적 쾌감 속에 이런 질문을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심연을 조명한다.

<다니엘 이즌 리얼>과 <살인마를 키우는 여자>는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악마를 길러냈는가를 보이는 작품들이다. 외부의 좌절과 절망은 내면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내면은 이성과 윤리로 꾹 누르고 있던 깊은 심연을 들춰낸다. 이 두 작품이 묘사한 공포는 악령은 외부에서 나타나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닌 내부에 숨어 있다가 점점 영혼을 잠식시킨다는 점에서 더 깊은 어둠을 품고 있다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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