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포스터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성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권위이다. 과거 성에는 왕과 귀족들이 살았으며 현재에도 성은 그 엄청난 유지비용 때문에 부유층의 소유물로 여겨진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할 권위를 지니고 있다. 이 권위는 존중과 경배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열등감과 수치심을 통한 분노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억압이다. 성의 거대한 문과 높은 벽은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완벽하게 내부를 보호하지만 내부에 갇히게 되면 외부로 탈출하기 힘들다. 원치 않게 성에 갇히게 된 이는 그 공간이 지닌 성격 때문에 억압을 받고 자유를 잃을 수도 있다.
 
셜리 잭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성이 지닌 공간적인 특징을 두 자매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는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장르적 매력과 현 시대에 어울리는 사회적인 의미를 담아낸 영화다.

극 중 블랙우드 가문은 마을에서 약간 벗어난 언덕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에 살고 있다. 그들 가문은 계속 그곳에 살았고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끼친 적이 없다. 그런 그들이 음식에 섞인 독극물로 집단살인을 당하게 된다.
  
집단살인이 벌어진 성, 재산을 노리고 찾아온 사촌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컷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이 집단살인에서 살아남은 건 세 사람이다. 항상 웃는 얼굴에 친절하고 예의가 바른 첫째 딸 콘스탄스(알렉산드라 다드다리오)는 사건 당시 요리를 담당했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지목돼 수사를 받았다. 반항적인 둘째 딸 메리(타이사 파미가)는 당시 벌로 금식을 당하고 2층 방에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저택의 주인이자 두 딸의 아버지인 존 블랙우드(스티븐 호간)의 동생인 줄리안(크리스핀 글로버)은 음식을 먹었지만 독극물을 소량 섭취했기에 목숨 대신 두 다리를 잃게 되었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집단살인 이후 블랙우드 가문 저택에 살아남은 세 사람과 존 블랙우드의 재산을 노리고 저택을 찾아온 사촌 찰스 블랙우드(세바스찬 스탠)의 이야기를 메리의 시점에서 다룬다. 작품은 미스터리와 스릴러, 사회적인 요소를 절묘하게 배합한다. 미스터리를 강화하는 요소는 집단살인의 진범의 정체와 메리가 집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기묘한 주술이다.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콘스탄스는 무혐의로 풀려났고 사건은 미궁으로 남았다. 과연 범인은 누구고 왜 한 가문을 몰살시키려고 했는지의 이유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메리는 언니와 걷지 못하는 작은 아버지만 남은 집을 지키기 위해 주술을 건다. 나무 주변과 집 주변에 아버지의 유품들을 묻는 메리의 행동은 기묘한 느낌을 주며 흥미를 자아낸다. 이 주술이 약해진 날 찰스가 그들의 저택을 찾아왔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무엇을 막기 위한 주술이었는지가 주제의식과 결부되며 미스터리로 관객을 이끈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컷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스릴러의 요소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찰스에 의해 표현된다. 재산을 노리고 저택에 온 찰스는 존 블랙우드의 옷을 입고 생전 그가 했던 것처럼 강압적인 아버지 행세를 하기에 이른다. 이런 찰스의 행동 때문에 그는 사사건건 메리와 부딪힌다. 찰스를 집에서 쫓아내려는 메리와 그런 메리를 짓누르려는 찰스의 기싸움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블랙우드 가문을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적대감이다. 그들은 권위적이고 강한 존재였던 존 블랙우드가 사라지자 남겨진 두 딸에게 경멸과 멸시에 쌓인 분노를 풀어낸다. 메리는 식료품을 사러 마을에 내려갈 때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괴롭힘과 조롱을 당한다. 이런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요소는 단순히 스토리적인 재미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바로 사회적인 요소인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제목인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의미

이 영화에서 성은 상징적인 소재로 작용한다.
 
극 중에서 성은 블랙우드 가문을 의미한다. 블랙우드 가문을 지탱하는 존재였던 존 블랙우드는 그 강력한 힘과 권위로 두 딸에게 든든한 성벽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두 딸은 성에 갇혀 강압과 억압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모습은 가부장적 사회가 지닌 모순을 의미한다. 가장은 가정을 지키는 존재지만 동시에 때로는 구성원을 억압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만큼 권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컷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스틸컷 ⓒ (주)디스테이션

 
그 권리는 가정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명령에 복종해야 된다는 생각, 내가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만큼 나에게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다. 영화는 이런 그릇된 가치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단서를 '연대'에서 찾는다. 주체적인 메리와 달리 콘스탄스는 수동적이다. 그녀는 항상 미소 짓고 있으며 남들의 말에 순종적이다. 찰스가 저택에서 존 블랙우드처럼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순종적인 콘스탄스의 태도에 있다.
 
메리는 그런 콘스탄스를 외면하지 않는다. 결코 혼자만의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나지 않는다. 비록 힘이 들어도 거대한 저택을 지키기 위해 주문을 걸고 결계를 치며 콘스탄스 역시 자유와 권리를 찾게 노력한다. 이런 메리의 자세는 제목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라는 제목에는 절이 싫어서 중이 떠나는 체념적인 태도가 아니라 잘못된 절을 바꿔보겠다는, 우리의 보금자리는 우리가 지키겠다는 주체적인 자세가 담겨 있다.
 
7월 11일 국내개봉을 앞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는 장르영화제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드물게 대중적인 영화이다. 하지만 그 주제의식의 표현에 있어서는 특별하다. 장르적인 매력을 살리면서 그 장르적 색깔 안에 주제의식을 녹여내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어렵지 않지만 또 가볍지도 않은 이 영화만의 표현법은 장르적인 매력과 함께 높은 만족도를 선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우리는언제나성에살았다 세바스찬스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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