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호적수를 만나 박진감 넘치는 압박 축구를 경험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었지만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낸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지난해 11월 브리즈번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황의조의 선취골로 다 이긴 줄 알았지만 후반전 추가 시간 3분에 동점골을 내주고 허탈한 표정을 지은 우리 선수들이었기에 이러한 결과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7일 오후 8시 부산 아시아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후반전에 교체로 들어온 골잡이 황의조의 감각적인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황의조, '첫 골 주인공은 나야 나'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황의조가 첫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황의조, '첫 골 주인공은 나야 나'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황의조가 첫 골을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탈압박, 장기 과제로 받아들여야

A매치에 목말랐던 부산의 축구팬들이 아시아드 관중석에 5만2213명이나 찾아왔다. 2002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게임에서 한국 남자축구의 월드컵 도전 역사상 첫 승리의 순간이 떠오를 정도로 뜨거운 응원의 목소리가 울려퍼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의 게임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반전 내내 호주의 압박 수비에 맥을 못추고 슛 기록을 단 1개도 남기지 못한 것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3-5-2 포메이션을 내세워 허리 싸움을 알차게 해나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브랜든 오닐과 무스타파 아미니가 중심을 잡은 호주의 4-3-3 압박에 휘말려 슛 한 번 제대로 날려보지 못하고 전반전을 끝내야 했다.
 
15년만에 부산서 A매치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 15년만에 부산서 A매치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관중들이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18분에는 골대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을 겪기도 했다. 호주의 왼쪽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에서 브랜든 오닐이 올린 짧은 크로스를 미첼 듀크가 헤더로 방향을 살짝 바꿔 골을 노렸는데, 김승규 골키퍼가 지키고 있는 골문 오른쪽 기둥에 맞고 나온 것이다.

비교적 높은 위치부터 조여온 호주의 압박 전술에 우리 선수들이 당황한 기색을 드러낸 것은 분명했다. 그로 인하여 수비 지역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이런 수위의 압박 상대들은 얼마든지 더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준비해야 한다. 9월부터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은 수비 전술부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승점이 걸린 게임에서 한국 축구를 상대로 거친 압박 수비를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안일한 생각으로 느슨한 후방 빌드 업을 펼쳤다가는 뒤통수를 얻어맞고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상대 팀 호주는 우리 선수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떠난 라이벌이 된 셈이다.
 
볼다툼 벌이는 김민재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한국 김민재가 호주 미첼듀크와 공중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 볼다툼 벌이는 김민재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한국 김민재가 호주 미첼듀크와 공중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교체 후 9분만에 해결사로 날아오른 '황의조'

벤투 감독은 후반전까지 답답한 공격을 방치하지는 않았다. 67분에 황희찬 대신 황의조를 들여보낸 것이다. 그보다 먼저 호주 벤치에서 수원 블루윙즈 소속의 유능한 공격형 미드필더 타카트를 들여보낸 것에 자극을 받은 듯 보였다.

그리고는 73분에 왼쪽 측면에 변화를 줬다. 김진수를 빼고 홍철을 들여보낸 것이다. 수원 블루윙즈의 간판 선수 둘이 자존심 대결을 펼칠 수 있는 흥미로운 구도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3분 뒤에 멋진 결승골이 그들의 발끝에서 빛났다. 76분, 왼쪽 측면에서 홍철이 공을 잡고 얼리 크로스를 반 박자 빠르게 보냈는데 호주 오른쪽 미드필더 브랜든 보렐로의 몸에 스치며 날아갔다.
 
황의조 골 순간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황의조가 한국 첫 골을 성공 시키고 있다

▲ 황의조 골 순간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에서 황의조가 한국 첫 골을 성공 시키고 있다 ⓒ 연합뉴스

 
이 크로스 궤적을 예상하고 가장 먼저 반응한 주인공은 역시 황의조였다. 골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황의조는 홍철과 눈빛이 맞은 순간 빠르게 앞으로 마중나가며 오른발을 뻗어 방향을 슬쩍 바꿔 넣었다. 상대 골키퍼 앤드류 레드메인보다 황희조의 오른발 축구화 바닥이 0.1초 정도 빠른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황의조의 이 결승골 순간이 우리 선수들에게 탈압박 과제 해결의 열쇳말이 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반 박자까지는 아니어도 상대 선수들의 거센 압박 앞에서 0.1초라도 빠르고 정확하게 공을 돌릴 줄 알아야 분명한 득점 기회가 나온다는 점이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이 과제를 해결하고 실천해내지 못하면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일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장 완장을 찬 한국의 에이스 손흥민은 지난 2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풀 타임으로 뛰고 날아와 피곤했지만 압박감이 더 큰 이 게임조차 교체 없이 풀 타임 활약했다.

82분에 손흥민의 왼발 끝이 빛났다. 역습 기회에서 그의 드리블은 유럽 별들의 무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변함없이 빠르고 날카로웠다. 상대의 거친 압박 전술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 능력이 어디까지 필요한가를 이 한 장면만으로도 입증한 셈이었다. 

상대 수비수 둘을 달고 뛰면서 방향을 순간적으로 바꾸는 손흥민의 드리블 실력은 역시 세계 최고 레벨이었다. 그리고는 왼발 슛까지 짜릿하게 내질렀다. 그의 왼발 끝을 떠난 공이 호주 골문 왼쪽 구석에 꽂히는 듯했지만 골키퍼 앤드류 레드메인이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날려 가까스로 쳐내고 말았다. 황의조의 멋진 골에 이어 손흥민의 박진감 넘치는 활약이 이어지자 5만2213명 관중들은 비 그친 부산 밤하늘을 엄청난 함성들로 가득 채웠다.
 
슛하는 손흥민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손흥민이 슛하고 있다.

▲ 슛하는 손흥민 7일 오후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열린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과 호주와의 평가전. 손흥민이 슛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호주를 상대로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이긴 이후 4년 5개월 만에 짜릿한 승리를 거둔 우리 선수들은 이제 11일(화)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아시아의 라이벌 이란과 만나게 된다.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결과(7일 오후 8시, 부산 아시아드 스타디움)

한국 1-0 호주 [득점 : 황의조(76분,도움-홍철)]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 황희찬(67분↔황의조)
MF : 김진수(73분↔홍철), 이재성(73분↔나상호), 주세종, 황인범, 김문환
DF : 권경원, 김영권, 김민재
GK : 김승규

주요 기록 비교
점유율 : 한국 54%, 호주 46%
유효 슛 : 한국 2개, 호주 1개
슛 : 한국 4개, 호주 6개
코너킥 : 한국 5개, 호주 5개
오프 사이드 : 한국 2개, 호주 1개
파울 : 한국 6개, 호주 16개
경고 : 한국 1장(김문환), 호주 2장(무스타파 아미니, 브랜든 보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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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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