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아스달 연대기> 연출을 맡은 김원석 PD. 후반 작업을 이유로 기자간담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tvN <아스달 연대기> 연출을 맡은 김원석 PD. 후반 작업을 이유로 기자간담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 CJ E&M

 
tvN <아스달 연대기> 측은 결국 스태프 부당 노동 논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tvN 새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제작발표회가 28일 오후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렸다. 

<아스달 연대기>는 한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상고 시대를 다룬 판타지 드라마로, 이를 구현하기 위해 회당 30억 원, 총 540억 원이라는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됐다. 본격적인 촬영 전부터 어마어마한 제작 스케일과 히트 메이커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김원석 PD의 만남,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김옥빈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된 뒤, 540억 원이 투입된 대작 촬영 현장에서는 '배고프다', '잠을 잘 수가 없다'는 스태프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주당 150시간이 넘는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에, 식사 시간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식사를 거르고 촬영하는 날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누적된 피로 탓에 촬영 중 안전사고가 발생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결국 지난 4월 10일,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아스달 연대기>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을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고발 직후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은 "당사는 제작 가이드의 본래 취지에 따라 제작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스태프협의체 구성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없어 난항을 겪는 등 가이드 정착 초기에 어려움도 있지만 주 68시간 제작 시간, B팀 운영 등을 준수하며 제작환경 개선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방송스태프노조는 스튜디오드래곤과의 면담 이후 "제작사는 책임을 회피했고, 고발 이후 제보자를 색출하려는 정황도 포착됐다"고 폭로했다. 

이날 <아스달 연대기> 제작발표회는 현장 책임자인 김원석 PD가 처음으로 언론 앞에 서는 자리였다. 당초 CJ E&M은 드라마 후반 작업을 이유로 김원석 PD의 기자간담회 불참을 공지했다. 김 PD는 공식적인 제작발표회 시작에 앞서 무대에 올라 인사했지만, 별도의 질문을 받지 않고 무대를 내려갔다. 

대부분의 경우 드라마 PD들은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작품과 관련된 질문에 답을 한다. 촬영과 방송이 생방송급으로 진행되는 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날 김원석 PD의 기자간담회 불참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김 PD는 무대에 올라 "작품 특성상 후반 작업이 많은 작품이라 오늘 부득이하게 인사만 드리고 작업을 하러 가야 한다. 정말 감사드리고, 기대는 낮추시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또, 김원석 PD가 빠진 상태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논란에 대한 작가와 배우들의 의견을 묻는 질문이 나왔지만, 진행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앞서 공식입장문이 나간 것으로 안다. 작품과 관련된 질문만 해달라"고 정리했다. 
 
 2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tvN 새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제작발표회.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주연 배우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김옥빈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tvN 새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 제작발표회.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주연 배우 장동건 송중기 김지원 김옥빈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CJ E&M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서, 새 근로기준법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이유로, 생방송 형태로 진행되는 드라마 제작 환경과 충분하지 못한 제작비가 꼽힌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는 100% 사전 제작 드라마로 기획돼 지난해 11월 촬영이 시작됐고, 540억이라는, 한국 드라마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다른 드라마 제작 현장보다 더 좋을 수는 없더라도, 더 나쁠 이유는 없는 현장인 것이다.  

최근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표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 52시간을 지키며 촬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명작을 만드는데, 꼭 누군가의 꿈과 열정이 희생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은 노동환경 개선으로 인한 제작비 상승에 대해 "좋은 의미의 상승이다. 나의 예술적 판단으로 근로 시간과 일의 강도가 세지는 것이 항상 부담이었다"라고 인터뷰하며 "정상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오마이뉴스>와 만난 <아스달 연대기> 스태프는 "<아스달 연대기>에 역대급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스태프들을 위해 쓰인 금액은 제로다. 대부분 막대한 규모의 세트와 배우 캐스팅 비용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날 공개된 <아스달 연대기>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540억 제작비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대규모 세트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원석 PD와 감독, 배우들은 드라마의 거대한 이야기와 그를 표현한 영상미에 대해 이야기했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영상을 만들기 위해 현장 스태프들은 밥도 거른 채 주 150시간 일했고, 출근과 퇴근 사이 텀이 3~4시간밖에 되지 않는 날도 많았다. <아스달 연대기>에서 일한 한 스태프는 "오전 7시께 스태프 버스에 올라 새벽 4시까지 촬영하고, 3시간 만인 오전 7시 다시 스태프 버스에 오른 날도 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일한 스태프들의 인건비로, 총 540억 원의 제작비 중 얼마가 쓰였을까? 그 금액을 다시 시급으로 계산하면 얼마일까?

김원석 PD는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을 통해 디테일하고 현실적인 연출로 사랑을 받은 스타 PD다. 김 PD는 고용관계에 있어 방송 스태프들의 '갑'은 아니지만, 현장 책임자이고, 스태프 노동 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질적인 '갑'이다. 본인이 책임지는 현장에서 발생한 여러 논란에 대해 책임 있는 발언을 회피한 이날 제작발표회에서의 모습은, 그의 작품이 이야기해온 메시지들과는 위배되는 것이었다.  

한편 현재 CJ E&M 사옥 앞에서는 <아스달 연대기>를 비롯한 CJ E&M 편성·제작 드라마 촬영 현장의 장시간 노동을 규탄하는 1인 시위가 50일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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