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직업이 된 스포츠 에이전트는 고객(선수)이 좋은 조건의 계약을 따내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따라서 그 선수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 올려 구단과 협상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에이전트들의 협상 능력에 따라 선수의 계약 기간과 연봉 규모가 달라지기도 하기 때문에 프로 스포츠에서 에이전트의 역할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LA 다저스)의 에이전트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가장 싫어하는 '악마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다. 보라스는 지난 2012년 류현진이 다저스와 6년 3600만 달러에 계약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류현진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보라스는 류현진뿐 아니라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 달러에 계약할 때, 추신수가 텍사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에 계약할 때도 한국 선수의 에이전트로 활약했다.

보라스는 류현진과 다저스의 6년 계약이 끝나가던 지난해 9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뜬금없이 "류현진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어깨 수술 전력을 가진 만 31세 투수의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는 말에 대부분의 야구팬들은 고객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에이전트의 '립서비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올 시즌 류현진의 활약을 보면 지난해 보라스의 발언은 립서비스라기보다는 '예언'에 가까웠다는 느낌마저 든다.

빅리그에서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2년과 부상으로 날려버린 2년

류현진은 KBO리그에 데뷔하자마자 투수 부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며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를 휩쓴 '괴물 투수'였다. 류현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한국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국제대회에서도 강한 면모를 뽐냈다. 역대 최초로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류현진이 2573만 달러의 높은 포스팅 금액과 6년 3600만 달러의 장기계약을 따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한국야구대표팀의 류현진이 23일 저녁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하여 역투하고 있다.

한국야구대표팀의 류현진이 지난 2008년 8월 23일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하여 역투하고 있다. ⓒ 유성호

 
류현진이 아무리 한국에서는 '괴물'이라 불리며 KBO리그를 호령했다지만 빅리그에서는 동양에서 온 낯선 루키 투수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실제로 류현진은 2013 시즌 스프링캠프에서부터 현지 언론으로부터 '빅리그의 장기레이스를 견디려면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식의 충고(?)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시즌이 시작된 이후 '실력'으로 자신을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날려 버렸다.

2013 시즌 192이닝을 던지며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4위에 오른 류현진은 2014년에도 14승7패3.38의 호성적으로 다저스의 3선발로 맹활약했다. 그 시절 다저스의 원투펀치는 무려 '사이영상 듀오' 클레이튼 커쇼와 잭 그레인키(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였다. 류현진은 리그를 대표하는 쟁쟁한 투수들 사이에서 당당히 다저스의 붙박이 선발 투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프로 입단 후 9년 동안 정규리그에서만 무려 1613이닝을 던졌던 류현진의 어깨는 2015년 시범경기에서 탈이 나고 말았다. 갑작스런 어깨 통증으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류현진은 정밀검사 결과 어깨 관절와순 부상 진단을 받으며 수술대에 올랐다. 커트 실링, 크리스 카펜터, 알 라이터 정도를 제외하면 이 수술을 받고 복귀한 후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류현진의 재활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2016년 7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복귀전을 치른 류현진은 4.2이닝8피안타6실점으로 무너진 후 팔꿈치에 건염이 발견돼 다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2년의 활약과 2년의 부상으로 구단과 팬들의 신임을 잃은 류현진은 2017년 마운드에 복귀해 다저스의 5선발로 활약했다. 25경기에서 126.2이닝을 던진 류현진은 5승9패3.77을 기록하며 무난한 복귀 시즌을 치렀지만 부상 전의 안정된 구위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가 2019년 5월 7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6회 3사후 마운드에서 내려오고 있다.

LA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 ⓒ AFP/연합뉴스

 
지난해 1점대 평균자책점은 예고편? 1790만 달러의 연봉도 적어 보인다

작년 시즌 초반 5경기에서 3승 무패 2.22로 호투행진을 이어가던 류현진은 5월 3일 애리조나전에서 1.1이닝 만에 사타구니에 불편을 느끼고 자진 강판했다. 결국 류현진은 사타구니 염좌로 석 달이 넘게 부상자 명단에 있었다. 4월 한 달 동안 3승을 따내며 최고의 출발을 보이고 있었기에 류현진으로서는 더욱 안타까운 부상이었다. 하지만 재활 과정을 끝내고 빅리그 마운드로 돌아온 류현진은 어깨 수술을 받기 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8월 1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전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 류현진은 부상 복귀 후 9경기에서 4승3패1.89로 엄청난 호투를 선보였다. 특히 작년 시즌 홈구장인 다저스타디움에서는 5승2패1.15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올렸다. 류현진은 2014년 이후 4년 만에 등판한 가을야구 경기에서도 승리 투수가 됐고 빅리그 데뷔 6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선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작년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은 류현진은 다저스가 제시한 퀄리파잉 오퍼를 수락해 1년 179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2015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출신의 좌완 댈러스 카이클이나 통산 333세이브의 크렉 킴브럴이 팀을 구하지 못한 지난 겨울의 FA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류현진의 퀄리파잉 오퍼 수락은 꽤 현명한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 시즌 류현진은 1790만 달러의 연봉이 적게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류현진은 올 시즌 8경기에 등판해 5승1패1.72를 기록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평균자책점 3위를 달리고 있고 다승은 내셔널리그 공동 1위. 18.00개에 달하는 삼진과 볼넷 비율은 2위(8.00개)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다. 류현진은 지난 3일 샌프란시스코전부터 3경기 연속 '8이닝 이상 1실점 이하 4피출루 이하 투구'를 기록했는데 이는 오직 샌디 코팩스와 클리프리, 커쇼, 류현진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다.
 
 류현진(LA 다저스)이 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2회에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류현진(LA 다저스)이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경기에서 2회에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한편 5월 둘째 주에 열린 2경기에서 완봉승 한 번을 포함해 2승17이닝5피안타1볼넷 무실점으로 완벽한 투구를 펼친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각) 빅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내셔널리그 '이 주의 선수'에 선정됐다.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이주의 선수에 선정된 것은 박찬호(2000년)와 김병현(2002년),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2010년),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2016년)에 이어 역대 5번째다.

류현진은 올 시즌을 앞두고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 LG트윈스에서 트레이닝 코치를 역임했던 김용일 코치를 전담 트레이너로 고용했다. 그 정도로 류현진은 건강한 시즌을 보내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고 그 결과가 올 시즌 성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투구를 마치면 관중들의 기립박수는 물론이고 동료 선수들이 먼저 다가와 축하를 건네는 선수가 된 류현진은 빅리그 진출 7년 만에 '투수명가' 다저스의 에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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