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전주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파고>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연.

제20회 전주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파고>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연. ⓒ 에코글로벌그룹


이제 막 20대 중반을 넘어선 신인 배우 이연이 자신의 첫 장편 주연작을 들고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tvN에서 단막극으로 소개된 영화 <파고>가 뉴트로 전주 섹션에 초대된 것. 

아직 생소한 얼굴과 이름이다. 영화에선 고립된 섬마을에 살며 마을 청년들과 수상한 관계를 맺는 예은 역을 맡았다. 폐쇄된 공간을 배경으로 탐욕을 채우는 마을 주민들, 거기에 희생양이 된 예은 간에 미묘한 감정 흐름이 이 영화의 묘미다. 섬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초등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예은은 섬 사람들에게 우편물과 택배를 전하는 일을 한다. 종종 사람들은 예은에게 상식에서 벗어난 꽤 충격적인 요구를 한다. 

"묻힌 이야기, 소수인권 문제 등에 관심이 많다. <파고> 역시 도덕 불감증에 걸린 섬 사람들의 이야기다. 원래 첫 시나리오에선 예은이 선생님이었는데 제가 너무 어려 보인다고 연령대가 낮아졌다. 섬이 배경이지만 대도시에서도 섬처럼 사는 분이 있잖나. 사회에서 소외된 분, 스스로 소외를 선택한 분들을 생각하며 촬영에 임했다. 그래서 섬 촬영 자체가 낯설진 않았다."

연출을 맡은 박정범 감독과 상의하며 이연은 섬에서 사는 아이들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등을 많이 봤다고 한다. 도시 아이들에겐 없는 함박웃음, 맑은 눈빛을 참고하며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묵묵히 만들어갔다. 

"초등교육을 받지 않고 자란 모습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말들을 예은이가 한다. 예를 들면 '엄청 외로워 보이시네요', '(파출소장에게) 머리가 길면 되게 예쁘실 것 같아요' 같은. 보통 사람과 다른 결이 있는데 이걸 거북하지 않게 보여야 했다."
   
 영화 <파고>의 한 장면.

영화 <파고>의 한 장면.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촬영을 위해 그는 인천 굴업도와 여수 인근의 연도라는 섬에서 약 한 달간 합숙했다. 실제로 고립감을 느꼈다며 이연은 "아마 감독님의 큰 그림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느낌이 촬영에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여수) 연도 같은 경우는 택배가 오면 선착장에 쌓인다. 그걸 마을 사람들 각자가 확인하고 가져가는 건데 아마 그걸 보고 감독님은 예은이 택배원이라는 설정을 하신 것 같다. 예은은 커 가면서 마을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마을이 같이 키운 아이인데, 도움이 되고 싶은 예은과 섬사람들의 도덕 불감증이 만난 것이지. 거기서 어떤 슬픔이 생기더라."

극적인 설정이지만 어린 여성을 유린하고도 죄책감 없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어떤 황폐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20회 전주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파고>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연.

제20회 전주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파고>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연. ⓒ 에코글로벌그룹


치료제가 된 연기

2016년부터 여러 단편, 광고에 출연해 온 이연은 본래 실용음악 전공이다. 중학생 때부터 노래를 부르며 음악 쪽으로 진로를 잡았지만 돌연 찾아온 무대 공포증에 중도 포기해야 했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건 다치고 약해진 심리 상태를 다잡기 위함이었다. 

"제가 노래하던 방식과 대학입시의 방식이 많이 다르더라. 다들 제 방식이 아니라고 했다. 입시에서 교수님들 앞에서 한번 무너지고, 나중에 무대 공연을 하는데 관객들 귓속말까지 다 들리더라. 울다가 그냥 무대를 내려왔다. 아, 이제 무대에서 노래를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선배의 권유로 연기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제가 노래해 온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입시를 위해) 그냥 공부해 온 다른 친구들처럼 저도 그냥 공부하듯 노래만 했더라.

노래로 내가 이루고 싶은 게 뭐지? 그 무렵 처음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없었다. 그래서 휴학을 했고, 연기치료를 받으며 찍었던 프로필 사진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게 됐다. 노래와 연기의 차이가 제겐 엄청 크다. 무대에 서면 4분간 제가 준비했던 모든 걸 완벽하게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카메라는 일종의 가구처럼 느껴졌다. 조명도 그렇고.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그 앞에서 전 제 것만 하면 되더라. 처음 연기를 접한 게 치료 목적이어서 그런지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역할의 크기보다는 시나리오라는 세상에서 어떤 인물이냐가 제겐 중요하다. 재밌게 현장에서 연기하는 편이라 촬영장에서 만나는 모든 분이 좋다. 덕분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무엇이든 딸이 하고 싶은 건 하게 했던 어머니. 그런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예의는 지키도록 배웠다고 한다. 통통 튀면서도 방종은 하지 않는 이연의 태도가 그런 어머니의 교육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와는 종종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고.

그는 이제 막 배우로서 닻을 올렸다. "전도연 선배처럼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이연은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곧 차기작인 <담쟁이> 촬영에 들어간다. 

"정말, 그 사람 자체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아바타>에 '아이 씨 유'라는 대사처럼. 딱 그 세계가 보이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전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편견 없는, 뭐든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리고 제가 연기하면서 치유를 받았기에 제 영화를 보시는 분도 마음이 괜찮아지셨으면 좋겠다(웃음)."
 
 제20회 전주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파고>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연.

제20회 전주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파고>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연. ⓒ 에코글로벌그룹


 
이연 파고 박정범 전주국제영화제 J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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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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