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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올라갈 오름은 개오름이다. 오름 정상 돌무더기 모습이 개를 닮았다 해서 개오름이 됐다는 말도 있고, 어느 지점에서 보면 오름 모습이 뭘 덮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개(蓋) 오름이 됐다는 말도 있다. 번영로 부근 서귀포시와 제주시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길을 잘못 찾아들어가 왕고사리 실컷 꺽은 개오름
▲ 개오름 길을 잘못 찾아들어가 왕고사리 실컷 꺽은 개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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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로 로타리에서 성읍2리로 들어간다. 마을을 지나 네비게이션 지시대로 간다. 중간에 사유지 농원이니 들어가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푯말이 서 있다. 달리 갈 길이 없어 목표 지점까지 들어갔더니 오름이 훤히 보인다. 울타리가 쳐져 있다. 길을 잘못 들었다.

나오는 들판 주변에 고사리가 보인다. 풀숲에 큰 고사리들이 많이 보인다. 금세 한 주먹 꺾었다. 아내도 조금만 조금만 하면서 자꾸 꺾는다. 찔레나무 숲 부근엔 정말 큰 고사리들이 많다. 아내는 왕고사리라면서 신나한다. 한 시간쯤 꺾었다. 비상용 시장바구니가 가득 찼다.  
 
제대로 찾은 개오름의 입구
▲ 개오름  제대로 찾은 개오름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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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개오름 올라가기다. 길을 찾기 위해 되돌아 가본다. 사유지를 벗어나니 북쪽으로 길이 있었다. 드디어 입구를 찾았다. 목장을 지나야 올라갈 수 있다. 

제주 오름은 솟아오른 오름은 공유지이고, 그 아래 평지는 사유지인 듯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개오름은 목장 주인이 오름 올라가는 길을 제공했나 보다. 목장을 지나니 편안한 길이 나 있다. 둘레길이 있는 것 같았다. 왼쪽으로 돌기로 한다. 곧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영남 지역에서는 고사리보다 고치미를 더 쳐준다. 제사에 올리는 고사리도 사실은 이런 고치미다. 제주사람들은 고치미를 꺽지 않는다.
▲ 고치미 영남 지역에서는 고사리보다 고치미를 더 쳐준다. 제사에 올리는 고사리도 사실은 이런 고치미다. 제주사람들은 고치미를 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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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길가에 고치미가 보인다. 너무 커버린 건 놔 두고 작은 순들을 꺾는다. 영남지역에선 이 고치미를 제사상에 올린다. 털을 벗기고 순을 떼내어 삶아서 말리면 된다. 제주 사람들은 고치미는 꺾지 않은 듯했다. 신바람 났다. 고치미를 실컷 꺾는다. 이래 저래 오름 오르기는 더뎌진다.
 
개오름 중턱에는 삼나무, 편백나무가 번갈아 가며 숲을 이루고 있다.
▲ 개오름  개오름 중턱에는 삼나무, 편백나무가 번갈아 가며 숲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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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오름 정상은 130미터 남짓 올라가야 한다. 길이 거의 수직으로 나 있어 가파르다. 그래도 조금 힘들다 싶을 때 정상에 닿고 만다. 삼나무 숲이 끝나니 곧 편백숲이 이어진다.

숲이 있는 오름은 숲 때문에 시야가 좁다. 오름 탐방객 입장에선 나무가 없는 게 좋다. 제주 동부지역 오름엔 숲이 없는 오름이 많다. 그래서 인기가 많다. 개오름은 나무들 때문에 분화구도 보이지 않고 주변도 잘 보이지 않아 찾는 사람이 드물다.
 
개오름 삼각점. 해발고도, 비고, 위도, 경도 등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 개오름 개오름 삼각점. 해발고도, 비고, 위도, 경도 등이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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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에 올라가면 만나는 삼각점이다. 학술적인 분위기가 좀 나 사람들이 잘 보려 하지 않는다. 해발고도가 345미터이고 위도가 33도 25분이란다. 정상 바위들을 아무리 봐도 개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상 부근도 좁다. 앉을 만한 자리도 없다. 넘어가는 길만 있다. 나무에 가려 주변 경관도 좋지 않다. 고사리 꺾느라 배가 고팠다. 준비해 온 점심을 먹는다. 단소도 한 곡 불어 본다. 바람이 불어 단소가 자꾸만 끊긴다.  
 
개오름 정상에서 동쪽으로 보면 여러개의 좌보미 오름들이 보이고 멀리 성산 일출봉도 보인다.
▲ 개오름 정상에서 본 좌보미, 높은 오름 개오름 정상에서 동쪽으로 보면 여러개의 좌보미 오름들이 보이고 멀리 성산 일출봉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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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가리긴 하지만 동쪽 전망이 좋다.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그 앞으로 좌보미 오름의 여러 봉우리들이 보이고 그 왼쪽엔 높은 오름이 보인다. 개오름은 분화구가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분화구 한 바퀴 도는 재미가 없다.
 
봄에 새순이 나고, 작년 잎들은 생을 마감한다.
▲ 관중 봄에 새순이 나고, 작년 잎들은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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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려간다. 길 옆에 고사리과 식물들이 많다. 이건 관중인 듯하다. 새순이 돋아 활짝 폈다. 작년 잎들은 할일을 다하고 생을 마감하고 있다. 남한산성 아래동네 목장승을 보는 듯하다. 새로 만든 장숭 옆에 썩어가는 장승이 누워 있었다. 입을 쩍 벌리고. 이게 자연이리라. 이 관중도 그러하다. 순리다. 60이 넘어가니 이런 사라지는 순리가 자꾸 보인다.
 
요즘 제주 들판과 산기슭에 피는 옥녀꽃대
▲ 옥녀꽃대 요즘 제주 들판과 산기슭에 피는 옥녀꽃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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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내려오니 길이 오름 둘레로 돌게 나 있다. 차가 있는 방향으로 간다. 길 옆에 꽃이 이상하게 핀 풀이 보인다. 친구에게 이름을 물어본다. 옥녀꽃대란다. 이름도 참으로 이쁘다. 산중에서도 인터넷으로 소통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단다.

소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아내는 올라타고 이랴이랴 하면서 신나한다. 기가 막히긴 하나 웃고 만다. 아무도 없는 산중이라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개오름 산자락에는 쇠파이프로 울타리가 쳐져 있다. 아래 평지는 사유지다.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 개오름 개오름 산자락에는 쇠파이프로 울타리가 쳐져 있다. 아래 평지는 사유지다.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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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래쪽에 쇠파이프로 울타리가 쳐져 있다. 울타리 안쪽은 사유지다. 농작물을 경작하고 있었다. 길따라 고사리가 얼핏얼핏 보인다. 하나씩 꺾는다. 길이 위로 올라간다. 그 아래쪽에 억새풀과 찔레나무가 엉켜 있다. 이런 곳이 고사리 천국이다. 요즘 제주도 산중에 떼지어 다니는 고사리족이 이곳을 놓쳤는지 고사리가 지천에 널려 있다. 

풀이 없는 양지바른 곳의 고사리는 키가 작다. 좋은 고사리는 찔레 덩쿨 아래나 억새풀 가운데 있는 키 크고 똥똥한 고사리다. 한 곳을 다 꺾고 장소를 옮기려다 뒤돌아 보면 또 보인다.

고사리를 꺾다 보면 엉뚱한 데로 가 있는 경우가 있다. 고사리가 있는 곳으로 자꾸 가게 되기 때문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꺾다 일어서 보니 아내가 없어졌다. 아내는 딴 길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도 없으니 고함쳐 불러 찾는다.

평지의 고사리는 꺾기 쉽다. 찔레나무 숲의 고사리는 힘들다. 온갖 자세가 다 나온다. 요가를 따로 할 필요 없다. 요즘 유행하는 요가 전갈자세도 알게 모르게 수없이 취한다.

고사리로 시장바구니 두 개를 가득 채웠다. 개오름 올라가 오름 감상은 뒷전이고 고사리만 실컷 꺾었다. 봄에 오름 올라가면 으레 나타나는 현상이리라. 고사리는 5월말까지 꺾는다.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 오름을 오른다면 우린 고사리를 얼마나 꺾을 수 있을까?

오름 올라가기, 조금 힘들다. 고사리 꺾기, 아주 힘들다. 땀에 옷이 다 젖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람찬 하루였다"고 합의한다.

태그:#개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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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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