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홈런왕과 세 번의 올스타, 2004년 내셔널리그 신인왕, 2006년 내셔널리그 MVP에 빛나는 라이언 하워드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거포였다. 하워드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 45개 이상의 홈런을 쏘아 올렸는데 4년 연속 45홈런은 전성기 시절의 앨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조차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다(물론 베이브 루스는 6년 연속 45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통산 382홈런 1194타점을 기록한 하워드도 선수 생활의 말년은 썩 화려하거나 명예롭지 못했다. 하워드의 전성기 시절 엄청난 파워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은 2010년 하워드에게 5년 1억2500만 달러(한화 약 1430억 원)의 장기계약을 안겨 줬다. 그리고 하워드는 장기계약이 시작된 2012년부터 거짓말처럼 부진에 빠졌고 은퇴하기 직전 세 시즌 동안에는 시즌 타율 .230조차 넘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하워드가 은퇴 직전까지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는 2500만 달러의 높은 연봉 때문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연봉은 곧 기회이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연봉이 높은 선수들은 꾸준한 출전기회를 보장 받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특별한(?) 선수들도 나왔다. 평균자책점 무한대의 트레버 로젠탈(워싱턴 내셔널스)과 49타수 무안타 신기록을 작성한 크리스 데이비스(볼티모어 오리올스)다.

오승환도 넘보지 못한 '광속 마무리'가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 잡는다?

KBO리그에서 277세이브, 일본 프로야구에서 80세이브를 기록한 '돌부처' 오승환(콜로라도 로키스)은 2016 시즌을 앞두고 내셔널리그의 명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1+1년 525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을 지배했던 아시아 최고의 마무리 투수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마자 마무리로 낙점 받지 못했다. 세인트루이스에는 '광속 마무리' 로젠탈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빅리그에 데뷔한 로젠탈은 3년 차가 되던 2014년부터 풀타임 마무리로 활약하며 2014년 45세이브, 2015년 48세이브를 기록했다. 제 아무리 오승환이 한·일 양국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투수라 하더라도 빅리그에서 2년 동안 93세이브를 기록한 20대 중반 젊은 마무리의 자리를 빼앗을 순 없었다. 하지만 셋업맨으로 시즌을 시작한 오승환은 로젠탈이 6월까지 2승 3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5.00으로 부진한 틈을 타 마무리 자리를 차지했다.

2017년 선발 투수로의 변신이 실패로 돌아간 로젠탈은 셋업맨으로 활약하다가 그 해 8월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고 일찍 시즌을 접었다. 2018년까지 로젠탈의 복귀가 불투명해지자 세인트루이스 구단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로젠탈을 방출했고 로젠탈은 작년 한 해 동안 '무적'신세로 재활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부상에서 회복한 로젠탈은 작년 11월 워싱턴과 계약기간 1+1년 총액 최대 2200만 달러의 좋은 조건에 계약했다.

워싱턴은 작년 시즌 맥스 슈어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태너 로어크(신시내티 레즈) 같은 좋은 선발진을 보유하고도 불펜 난조로 많은 역전패를 당하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따라서 한 때 내셔널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으로 군림했던 로젠탈 영입을 통해 불펜 강화를 노렸다. 하지만 로젠탈이 이보다 더 나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진에 빠지면서 워싱턴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매우 커졌다.

로젠탈은 9일(이하 한국시각)까지 워싱턴이 치른 9경기 중 4경기에 등판했지만 9명의 타자를 상대로 아직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잡아내지 못했다. 피안타가 4개, 볼넷이 4개, 몸 맞는 공 하나로 7실점. 평균자책점은 무한대다. 여전히 시속 158km의 빠른 공을 던지지만 제구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진작 마이너리그 강등, 혹은 방출이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성적이지만 700만 달러(한화 약 80억 원)의 연봉이 로젠탈을 아직 '빅리거'로 버티게 하고 있다.

'49타수 무안타'의 데이비스, 2년에 걸친 침묵
 
 볼티모어 오리올스 크리스 데이비스가 9일(한국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오리올 파크 앳 캠던 야즈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홈경기에서 아웃되자 헬멧을 집어 던지고 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크리스 데이비스가 9일(한국시각)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오리올 파크 앳 캠던 야즈에서 열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홈경기에서 아웃되자 헬멧을 집어 던지고 있다 ⓒ AP/연합뉴스

 
야구에서는 투수의 컨디션이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시즌 초반에 유난히 좋은 타격감을 보이는 선수가 있다. 물론 이와 반대로 시즌이 끝나는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시즌 막판에 유난히 강해지는 타자도 있다. 하지만 두 시즌에 걸쳐 49타수 무안타라는 1900년 이후 메이저리그 최다 연속 타수 무안타 기록을 쓴 크리스 데이비스의 부진은 시기를 가리지 않는다.
 
사실 데이비스는 통산 .237의 낮은 타율에도 메이저리그 투수들이 두려워 하던 강타자였다. 2013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엄청난 장타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5년에는 홈런왕(47개)과 삼진왕(208개)을 동시에 차지하기도 했다. 약점이 많은 타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단 걸리면 넘어가는 무시무시한 힘을 갖추고 있어 투수들이 매우 상대하기 싫은 유형의 타자였다.

데이비스가 2015년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하자 볼티모어 구단은 2016시즌을 앞두고 데이비스에게 7년 1억61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규모의 계약을 안겨줬다. 데이비스가 만36세가 되는 2022년까지 연평균 23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스런 액수였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데이비스가 아메리칸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서 볼티모어의 타선을 이끌어 준다면 썩 아깝지 않은 계약이었다.

하지만 데이비스 계약이 볼티모어의 판단미스였다는 걸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데이비스는 2015년 47개였던 홈런이 2016년 38개, 2017년 26개로 하락하더니 급기야 작년 시즌에는 타율 .168 16홈런 49타점으로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출루율(.243)은 물론 장타율(.296)도 3할이 채 되지 않는 답이 없는 추락이었다. 특히 데이비스는 작년 시즌 마지막 5경기에서 2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볼티모어 구단은 올해 데이비스의 반등을 기대했지만 작년 시즌 막판의 부진은 올 시즌 더 깊은 늪으로의 추락을 향한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데이비스는 올 시즌 개막 후 9경기에서 28타수 무안타로 자신의 기록을 49타수 무안타로 늘렸다. 이제는 데이비스에게 시즌 첫 안타를 허용하는 투수가 누가 될 지 궁금할 지경. 볼티모어에게 더욱 끔찍한 사실은 올 시즌을 포함해 데이비스에게 2022년까지 무려 9200만 달러의 연봉(한화 약 1천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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