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캡틴 마블>은 <어벤져스3: 인피니티 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두 영화는 모두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부각시켜 독선적인 통제에 대항하는 히어로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각각의 영화 속에서 인물들 간의 관계를 살피듯이 두 영화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캡틴 마블'이란 단어는 새로운 히어로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킨다. 그 기대감의 충족 여부와 상관없이 우주를 종횡무진하는 마블의 비행은 자유와 통제에 대해 생각케 한다.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영화 <캡틴 마블>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뇌과학·인공지능, 불안한 미래

누군가가 '나'의 과거를 말끔히 지우고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고통스러운 과거를 잊게 해주려는 선의라 해도 선뜻 동의하기 쉽지 않건만, 그런 좋은 의도도 아니다.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크리족의 전사 비어스(브리 라슨 분)는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게 과거가 세탁된 처지이다. 크리족의 전사라는 사실만 알 뿐,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비어스는 알 수 없는 꿈에 시달리고 사령관 욘 로그(주드 로 분)로부터 감정을 절제하라는 충고를 끊임없이 듣는다.

지구인 캐롤 댄버스가 크리족 비어스로 되었다가 잃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은 통제와 자유라는 큰 명제 안에서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할지 생각해 보게 한다. 그 과정은 뇌 과학이 곧 도달할 미래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삭제하거나 조작하는 등의 뇌의 통제는 가까운 미래에 가능한 과학 기술 중 하나로 예상된다. 하나의 우주처럼 느껴지는 인간의 뇌가 가진 비밀을 푸는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었으며 진행 중이다. 캐롤처럼 의도적으로 기억상실증이 유발되고, 단순한 기계 조작만으로도 마치 영화처럼 누군가의 기억이 스크린에 재생되는 날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지구인이었던 비어스는 '슈프림 인텔리전스'에 의해 크리족 전사로 다시 태어났다. 이 과정에 비어스의 의지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못한다. 비어스의 기억에 대한 통제는 어떠한 고뇌나 죄의식없이 이루어진다. 비어스는 필요에 따라 시스템의 일환으로 변환되어 수용되며, 비어스 개인의 역사는 할라의 목적에 부합할 때만 유의미하다. 비어스는 통제자의 요구대로 움직이는 체스판 위의 말과 같은 신세이다. 모종의 의도로 진실이 조작되기도 하는 현재를 고려할 때, 뇌 과학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인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가능한 미래일 수도 있다.

크리족 행성 수도 할라는 인공지능 슈프림 인텔리전스가 지배하는 곳이다. 할라는 슈프림 인텔리전스에 의해 정교하게 통제된다. 인공지능의 통제대로 지배층의 목적에 알맞게 조작된 캐롤은 비어스가 되어 원래 자신이 하려던 일과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된다. 인공지능의 통제 하에 인간은 수단으로 전락해 도구화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추구하는 우주의 질서를 위해 비어스는 이용되지만, 비어스에게 제공되는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기에 캐롤이라면 하지 않았을 임무를 수행한다.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너무 많은 영화 등 콘텐츠에서 보여줬기에,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 세계는 이미 고정된 미래처럼 느껴진다. 능률과 효율에 있어서 인간은 인공지능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인간의 약점을 보완해 인공지능을 만들어낸 인간은 자신이 만든 기계의 능력을 경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처럼 효율이 떨어지는 인간은 인공지능에 밀려 도태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영화처럼 인공지능에 의한 전면적인 지배는 아직 불가능하지만, 인간은 점점 더 인공지능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할라의 세계는 그리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으나 재현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들지 않는다. 기술을 선점한 누군가의 이기심과 오판으로,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이 세계를 지배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에 의해 인간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시스템은 위력적이며 위협적이다. 영화 <캡틴 마블>에 신인 듯 군림하는 슈프림 인텔리전스와 그에 복종하는 집단은 인공지능과 관련한 미래에 고민을 던진다.

도달 가능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현재의 상황 중 부정적인 부분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과학의 성과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측면으로만 기능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용하는 자의 목적과 쓰임새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인간의 의지를 조종하게 될 수도 있는 뇌 과학의 미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발된 기술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이 다를 뿐, 그 미래는 사실 현재진행형이다. 슈프림 인텔리전스와 같은 지배층이 진실을 조작하고 개인을 수단화하는 것은 극단적인 미래인 동시에 부분적으로 현재이다.

스크럴족은 슈프림 인텔리전스와 크리족에 의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멸족의 위기에 처한다. 스크럴족이 처한 상황은 자연스레 현재의 난민 문제와 연결된다. 생존을 위협받으며 떠도는 난민은 폭력적인 지배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떠난 난민들의 안타까운 모습은 이기적이면서 난폭한 지배가 야기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현재의 문제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발달된 뇌과학과 인공지능이 함께하는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캡틴 마블>은 지구 밖의 다른 행성을 그려내지만 현재를 투영해 지금, 그리고 미래에 발생할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인간, 존재 자체가 대안

비어스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캐롤의 기억은 완전히 삭제되지 않는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알 수 없는 꿈들의 반복은 비어스를 불안하게 한다. 욘 로그는 캐롤이 획득한 힘을 비어스로 통제해 이용하기 위해 감정 절제를 요구한다. 자신이 누구인가하는 비어스의 자연스런 의문을 욘 로그는 임무 수행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비어스 스스로 버리게 만들려 한다. 영화 <캡틴 마블>은 조작과 통제가 야기할 불안한 미래에 대한 대안을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성에서 찾는다.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비어스의 집중은 비어스가 원래의 자신을 되찾게 하는 동기가 된다. 억제된 기억은 정체성 추구라는 본질의 문제에 더욱 천착하게 한다. 자신이 살아가고, 자신이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갖지 못한 비어스는 그 해답을 끊임없이 찾으려 할 수밖에 없다.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기계가 아닌 인간이 가진 고유한 본성이며 조작과 통제에 대항하는 출발점이 된다. 지금의 자신을 이루는 맥락을 확인할 수 없는 비어스는 늘 흔들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슈프림 인텔리전스는 비어스의 기억에 의지해 구체화된다. 슈프림 인텔리전스를 구체화하는 과정은 기계의 한계를 드러낸다. 감정이 없는 시스템은 효율을 추구하나 인간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한다. 슈프림 인텔리전스는 인간의 감정과 기억에 의존해 그 형상을 만들어낸다. 감정을 읽지 못하는 시스템은 억제시킨 인간의 기억이 감정과 연결되어 형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힘을 쓰지 못한다. 비어스의 감정을 충분히 인식했다면, 굳이 슈프림 인텔리전스가 로슨 박사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 감정을 분별할 수 없기에 비어스의 혼란을 야기할 기억을 선별해 재생을 억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물론 미래의 기술은 이러한 기계의 한계를 극복해낼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다양한 반응 양상들이 데이터화 된다면 감정이 없더라도 감정을 읽어낼 시스템이 구축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감정은 고유하면서도 모방되기 어려운 것이다. 감정은 개인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형성되며 표현된다. 계측하기 어려운 정도의 데이터를 축적하더라도 기계는 그를 통해 어떤 느낌을 생성해내지 못한다.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인간의 경우, 감정과 연결되어 저장된 특정한 기억들은 어떤 경우에 특별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통제되지 않은 감정은 본래 개인이 지닌 힘보다 더한 힘을 분출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 힘은 감정을 가지지 못한 기계가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때로 통제되지 못한 감정은 약점이 되기도 하나 감정은 인간의 힘을 증폭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억과 연결된 감정이 촉발시킬 힘은 기계적인 통제의 원칙을 벗어날 것이다. 감정은 슈프림 인텔리전스와 같은 독선적인 인공지능의 지배와 통제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스크럴족은 현실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는 인간 복제 기술을 떠올리게 한다. 상대가 변신한 스크럴족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마주 선 서로는 질문을 해야만 한다. 스크럴족은 복제 대상의 외모는 완벽하게 복제하나 기억은 최근의 것만을 복제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한 개인을 누군가로 규정하기 위해서는 외양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더 중요함을 의미한다. 현존한 지금까지 한 개인이 보낸 시간들은 기억을 만들고 감정을 남기며 성격을 형성한다. 시공간의 온갖 경험과 기억들이 총합된 한 개인의 정신은 누군가를 특정하는 고유한 것이다.

지구로 오게 된 비어스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다. 그녀가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많은 기록들과 그녀를 기억하는 친구는 비어스가 캐롤이었음을 증명한다. 캐롤은 혼자가 아니었다. 캐롤의 기억은 누군가의 기억이기도 하다. 캐롤의 주위엔 캐롤을 비어스가 아닌 캐롤로 인식하게 하는 수많은 사연들이 있었다. 삭제되거나 통제되기 어려운 캐롤의 무수한 관계들과 기억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던 비어스가 자신을 캐롤로 인식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개인과 개인들로 연결되어 이루어진 관계의 망은 조작과 통제의 대항마가 된다. 개인의 기억은 누군가에게 어딘가에서 공유된다. 캐롤을 비어스로 만들려던 고도의 기술은 '나'와 '너'가 연결한 '우리'의 망에 의해서도 실패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캐롤은 더이상 불안하지 않다. 캐롤이 흔들렸던 것은 통제되지 않는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비어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흔들렸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캐롤은 더이상 불안하지 않다. 조각난 이름표의 흔적이었던 비어스는 잊혀졌던 나머지 부분을 확인하면서 캐롤이 된다.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통제, 그리고 자유

자유로운 개인을 억압하는 통제는 사실 실생활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어린 시절 캐롤은 주변으로부터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규정하는 말을 끊임없이 들었다. 실패하고 좌절한 그녀를 다독이기 보다는 비난하는 말들을 쏟아내는 기억들에 캐롤은 괴롭다. 위기의 순간, 찾아오는 기억의 잔상들은 그녀의 발목을 붙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고정적인 범주에 넣고 통제하려는 주문을 이겨낸다. 분노로 반짝이는 눈빛을 쏘아내며 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은 절제되지 않은 감정이 야기하는 자기 극복의 순간을 보여준다. 분노하는 인간은 통제에 대항한다. 인간의 감정은 강제와 억압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억을 되찾은 캐롤과 마주한 욘 로그는 외부로부터 획득한 캐롤의 힘을 내려 놓고 자신과 대결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자신을 이기면 그녀를 인정하겠다고 말한다. 자신의 방식대로 캐롤을 다시금 통제하려는 욘 로그의 의도를 캐롤은 가뿐하게 날려 버린다. 미리 만들어진 합의되지 않은 규칙에 그녀는 종속되지 않는다. 지배층의 통제를 벗어난 캐롤은 그들의 제시하는 기존의 규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지배층의 목적에 부합하여 개인을 수단화하려는 조작과 통제는 수용될 수 없다. 그러한 규칙에 과감히 탈피한 자유로운 개인을 캐롤은 보여준다.

다수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부분적인 통제는 필요하다. 합리적인 목적을 가진 통제는 대부분 수용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통제와 조정에 순응한다. 자기 의지로 순응을 선택했다면 자신의 행위에 의문을 가지지 않거나 덜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수용되는 통제는 인간의 자유로운 발상을 저해하거나 발전을 침해하지 않는다. 진실을 조작하고 합의되지 않은 독선적인 통제를 위해 기꺼이 자유를 포기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영화 <캡틴 마블>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자신을 되찾은 캐롤은 이제 누군가의 의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우주를 종횡무진한다. 광속의 힘을 가진 '캡틴 마블'의 활공은 통제되지 않은 개인의 자유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우주 공간을 제뜻대로 날아다니는 캐롤은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를 상징한다. 비록 몸은 한계를 가졌으나, 인간의 정신과 감정은 통제될 수 없는 자유로운 추상이다. 비록 하늘을 날거나 눈에서 레이저를 뿜지 못해도 우리의 정신은 마블의 자유로운 활공처럼, 자유 그 자체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양선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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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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