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샤잠! >의 한 장면

영화 < 샤잠! >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즈코리아

 
마블의 슈퍼 히어로 <캡틴 마블>은 원조가 아니다? 생뚱맞은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진짜 <캡틴 마블>은 따로 존재했었다. 적어도 코믹스 상에선 말이다. 

DC, 마블뿐만 아니라 1930~1940년대 전후로 미국에선 몇 개의 코믹스 전문 출판사들이 존재했다. 그 중 포셋 코믹스라는 업체는 독자적인 인기 캐릭터로 한때 양대 업체를 위협하기도 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캡틴 마블>(1939년 첫 출간)이었다.

평범하고 별 볼 일 없는, 우리로 치면 중2 정도에 불과한 소년 빌리 뱃슨이 마법사로부터 초능력을 부여받고 성인 슈퍼 히어로로 활약하는 내용을 담았던 코믹스 시리즈는 한때 슈퍼맨, 배트맨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만화의 일부 내용에 대해 DC 측에서 유사하다는 이유로 소송을 벌이면서 <캡틴 마블>의 운명은 180도 뒤바뀌게 된다. 

무려 10년 이상 장기간의 재판이 벌어지면서 포셋 코믹스는 1953년 DC 측에 대해 배상 및 판매 중지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법원의 최종 판결이 이뤄진다. 지리한 법적 다툼을 겪으면서 <캡틴 마블>은 잊혀진 슈퍼 히어로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이후 1967년 마블 코믹스는 이름은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의 <캡틴 마블>을 코믹스로 만들어 논란을 야기한다.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포셋 코믹스 측이 만화 타이틀에 대한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는 주인이 없었던 <캡틴 마블>의 이름은 마블 측이 뜬금없이 등록에 성공하는 '봉이 김선달' 같은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1972년 DC코믹스가 포셋코믹스의 모든 판권을 인수했지만 <캡틴 마블>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마블의 소유로 이어지게 되었다. 같은 해 DC는 원조 <캡틴 마블>은 주인공이 변신할때 외치던 주문인 '샤잠'을 새 이름으로 채택하고 리부팅, 현재에 이르고 있다.

10대의 이야기+가족 코미디로 마련한 DC의 돌파구
 
 영화 < 샤잠! >의 한 장면.

영화 < 샤잠! >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즈코리아

 
우여곡절이 많았던 원작의 파란만장했던 과거사 못지않게 DC의 최근 영화들은 롤러코스터급 행보를 보여준 바 있다. <저스티스 리그>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기대 이하 반응과 <원더우먼> <아쿠아맨>의 대성공이 번갈아 이어졌다. 하지만 디씨의 위상은 마블 앞에서는 한 없이 초라하기만 하다. 게다가 <슈퍼맨> <배트맨> 등과 달리, <샤잠!>은 미국 이외의 지역에선 '누구?'라는 소리가 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무명 히어로 아니던가?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없는 각국의 영화팬들을 사로잡기엔 쉽지 않은 워너와 DC는 무게감 있는 액션 오락물 대신 다른 방식의 접근법을 택했다. 10대, 그리고 가족 중심의 코미디 영화로 극장가의 틈새 시장을 노리고 나섰다. 세련된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1960~1970년대 초창기 TV 히어로물에서나 볼 법한 촌스러운 주인공의 의상만으로도 웃기는 영화가 바로 <샤잠!>이다.

이른바 '중2병'스러운 주인공 빌리 뱃슨(애셔 엔젤, 재커리 레바이 분)에게 코미디는 가장 놀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준다. 주문을 외쳐 어른이 되었지만 정신 연령은 그대로라는 설정에서 빚어지는 각종 우스꽝스러운 사건+사고는 기존 DC 영화들과는 차별되는 <샤잠!>만의 장점으로 다가온다. 

놀이공원 기계 '졸타'에게 소원을 말한 후 어른이 된 소년의 이야기를 그렸던 톰 행크스의 출세작 <빅> 히어로 버전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샤잠!>은 소년-어른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재미적인 측면으로 활용한다. 성인 관객의 눈높이에선 과도한 설정 및 유치하게 비칠 수 있다는 약점도 존재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발빠른 전개로 이를 만회한다.

피보다 진한 가족애... 기존 히어로물과의 차별화
 
 영화 < 샤잠! >의 한 장면.

영화 < 샤잠! >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즈코리아

 
극 중 주인공 빌리는 고아로 여러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사고를 치는 일이 다반사다. 새로운 집에서도 그는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 대신 밖으로만 겉돌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샤잠!>은 기존 히어로 영화들과는 다른 가족애를 보여준다. <배트맨>, <스파이더맨>에서도 부모를 잃은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샤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비록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한 지붕 밑에서 끈끈한 유대감을 이어가는 위탁 가정 속 소년, 소녀들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토대로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을 담았다. 그러면서 영화는 자칫 흔하디 흔한 슈퍼 히어로물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이밖에 <샤잠!>은 은근슬쩍 DC 코믹스 히어로들에 대한 징표들을 극 중 배치해 영화에 대한 흥미를 덧붙여준다. 아쉽게도 <샤잠!>은 현재 진행 중인 <저스티스 리그>의 세계관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극 중 히어로 마니아인 소년 프레디 (잭 딜런 그레이져 분)을 통해 슈퍼맨과 관련된 데일리 플래닛 신문 기사, 배트맨의 무기 등을 하나 둘씩 보여주면서 <샤잠!> 역시 DC 군단의 일원임을 관객들에게 인식시켜준다. 

또한 감독 데이빗 F. 샌드버그의 전작 <라이트 아웃>과 슈퍼맨 TV시리즈물 <스몰빌> 등에 출연한 배우들이 단역 혹은 목소리 출연 등으로 힘을 보탰는데 이들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한편 영화에는 다른 마블, DC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쿠키 영상이 등장한다. 이제는 웬만한 관객들도 이들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이를 놓치고 먼저 극장문을 나서지 않길 바란다. 특히 1개의 쿠키 영상은 향후 제작될 수 있는 2편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jazzkid)에도 수록되는 글입니다.
샤잠 DC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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