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스트 미션> 포스터

영화 <라스트 미션>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라는 거장의 배경을 굳이 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90세의 이스트우드가 주인공 얼 스톤을 직접 연기하는 것 자체가 충분히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동진 평론가가 이 영화에 대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 영화다'라고 한 것처럼, 그가 프레임 안에서 보여준 것은 삶이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특별히 심각하거나 무겁지도 않다. 심플한 세팅 속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마치 90년의 시간 동안 그 캐릭터의 삶을 살아온 듯한 인물의 리얼리즘이다. 

그렇다 보니 이 영화 <라스트 미션>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라스트 미션'으로서 전하는 유언이나 회고록, 혹은 자서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90세 노인인 그가 하려는 이야기에는 자신이 이뤄놓은 것보다는 놓치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겸허한 성찰,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조언들이 들어있다. 

클린트이스트 우드 세대의 조언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컷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컷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얼의 대사에서 현시대에서 민감하게 작용하는 차별적 용어를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그 세대의 관습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영화에서 자신과 그의 세대를 포장하지 않는다. 가식 없는 목소리로 회한처럼 털어놓는 노장의 메시지가 어떻게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을까.  

얼의 인생은 꽃에게 온전히 바치는 헌사였다. 단 하루, 혹은 단 며칠만 만개하고 사라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온당한 헌사. 그래서 그는 꽃에 최선을 다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고, 그 외의 것들은 가족이라도 밀려났다. 그는 가족에게도 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경제적 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딸의 결혼식조차 참석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가족들은 그에게 등을 돌린 지 오래였다. 평생을 헌신해온 일마저 정리하자 얼은 완전히 혼자가 된다. 

오직 손녀 지니(타이사 파미가)만이 그를 응원해 줄 뿐이다. 꽃을 재배하는 단순한 지혜를 통해 그는 배웠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 소중한 것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눈앞에 피어있는 꽃의 가치는 알았지만, 그의 가족 또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소중한 가치라는 건 일찍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던 그에게 마약 운반이라는 일거리가 주어진다. 그가 맡는 양이 다른 누구보다 많을 정도로 여러 번을 성공적으로 운반한 그였지만, 보상으로 받는 돈을 확인하며 얼은 한 번도 떨지 않은 적이 없다. 경찰에게 발각될 뻔한 고비를 겪으면서도 계속해서 운반을 자원하는 그는 그 돈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치 있는 일을 한다. 손녀의 결혼식에 꽃과 술을 대접하고, 사라질뻔한 참전 용사 회관의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는 등이다. 

하지만 떠나간 가족의 마음은 물질로 쉽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가 만나는 젊은이마다 돈으로 시간은 살 수 없다고, 가족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계속해서 조언하는 것은 그의 삶을 통해 깨달은 진심 어린 충고다. 그 간단한 말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 그런 그조차 마지막 기회에 이르러서야 일이 아닌 가족을 선택한다. 

평범한 진리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컷

영화 <라스트 미션> 스틸컷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아내 메리(다이앤 위스트)의 임종을 끝까지 함께하는 모습에 그제야 딸 아이리스(앨리슨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에게 마음을 연다. 가족의 곁에 어쩌면 너무 늦게 돌아온 그는 아이리스의 말처럼 'late bloomer'다. 한국어 자막으로는 '대기만성'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늦게 피는 꽃'이라는 영어 표현이 더 좋다. 인생도 꽃처럼 피고 진다. 지는 삶을 되돌아보는 노인이 우리 인생에도 피워야 할 순간이 있음을, 그 소중한 순간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임을 그의 삶으로 역설하는 것이다. 

위대한 진리라고 하는 말의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말로는 너무 단순해서 지키기 어려운 것도 삶을 열어 보여줄 때는 그 삶의 무게만큼 전달되어오는 것들이 있다. 함께하는 시간을 이제야 가지게 되어 미안하다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 주변 인물들에게 건네는 얼의 사죄가 그를 기다린 시간만큼 묵직하게 다가온다. 죄스러움을 내려놓은 얼은 감옥에서 다시 꽃을 심는다. 

그렇게 많은 꽃을 심었어도 그의 삶에서 꽃을 피워내기는 참 어려웠기에, 꽃을 심는 그의 얼굴에서 진중함이 엿보인다. 어떤 꽃은 빨리 피지만 어떤 꽃은 늦게 핀다. 생애 마지막, 짧은 순간 꽃을 피워도 괜찮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시간만큼 더 많은 간절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소중한 시간을 꽃피우라.' 세월을 눌러 담아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이스트우드의 단순한 가르침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라스트 미션 클린트 이스트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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