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 캐릭터로 이미지가 굳어진 권아솔 입장에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독설 캐릭터로 이미지가 굳어진 권아솔 입장에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 로드FC

 
국내 종합격투단체 로드FC의 52번째 넘버 시리즈가 화제 속에서 막을 내렸다. 2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매치업이 가득했다.

'다게스탄의 사자' 샤밀 자브로프(34·러시아)와 '타잔' 만수르 바르나위(26·프랑스)의 100만불 토너먼트 결승전은 시종일관 치열한 공방전이 거듭되며 지켜보던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빠트렸다. 3라운드에서 터진 무시무시한 니킥을 앞세워 만수르가 KO승을 거두기는 했으나 레슬링 압박을 바탕으로 자브로프가 보여준 맷집과 근성도 빼어났다. 전체적 경기 내용 역시 매우 재미있었던지라 결승전에 걸맞는 멋진 승부였다는 평가일색이다.

태권 파이터로 유명한 홍영기(35·팀 코리아MMA)는 브루노 미란다(29·브라질)에게 1라운드 TKO로 무너졌지만, 잘 싸웠다는 극찬을 받았다. 미란다는 라이트급 최상위 파이터중 한명이다. 이광희, 정두재, 김승연 등 쟁쟁한 국내 선수들을 줄줄이 격파하며 '코리안 킬러'라는 별명까지 얻은 바 있다. 때문에 매치업이 잡혔을 당시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미스매치라는 혹평까지 터져 나왔다. 객관적 전력에서 미란다가 너무 앞서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홍영기는 미란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로블로라는 변수가 작용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홍영기는 초반부터 과감하게 치고나가며 미란다를 당황시켰다. 원거리에서 태권도식 발차기를 날리고 거리가 좁혀졌다싶은 순간 클린치를 통해 미란다의 카운터를 경계했다. 그런 가운데 클린치 상황서 미란다의 니킥이 급소를 강타했고 홍영기는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 휴식 시간이 있었으나 홍영기는 로블로의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를 속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치와 킥을 연거푸 적중시키며 다운을 빼앗는 등 두 차례나 미란다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대이변이 만들어지나 싶었다. 하지만 미란다의 니킥 반격에 홍영기는 충격을 받고 쓰러졌고 쏟아지는 파운딩 세례 속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말았다. 로블로의 영향이 컸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아쉬운 승부였다.

'무호흡 파이터' 김승연(30)은 80kg 계약체중 경기에서 기노주(34)를 1라운드 7초 만에 TKO로 잡아내며 손쉬운 승리를 챙겼다. 당초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예상보다도 더 쉽게 경기가 끝났다. 1라운드 공이 울리기 무섭게 오른손 펀치를 정타로 터트리며 다운을 뺐었고 이후 무차별 파운딩을 통해 경기를 끝냈다.
 
권아솔, 이제는 증명이 필요하다!
 
만수르의 우승으로 결말이 지어진 '100만불 토너먼트 결승전'은 이제 마지막 승부만을 남겨놓고 있다. 당초 발표한 대로 우승자는 라이트급 챔피언 권아솔(33·팀강남/압구정짐)에게 도전할 자격을 얻고 파이널 매치를 펼치게 된다.

이에 대한 국내 격투 팬들의 반응은 처음부터 좋지 않았다. '도대체 권아솔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이기에 토너먼트 우승자와 붙는 것이냐', '토너먼트에 참가한 선수들 중에 권아솔보다 강해보이는 선수들이 여러 명 있는데, 끝판왕이라는 별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등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물론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권아솔은 특유의 입담과 악동 캐릭터를 통해 로드FC에서 활약하기 이전부터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했다. 이후 상품성에 기량을 더해 단체를 대표하는 파이터로 거듭났다. 그런 상황에서 100만불 토너먼트가 열렸고 권아솔에 대한 관심은 커졌다. 로드FC를 잘 모르는 일반 팬들도 권아솔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을 정도다. 권아솔의 국내 인지도는 어지간한 해외 스타 파이터 이상이다.
 
 100만불 토너먼트 결승전 우승자 만수르 바르나위

100만불 토너먼트 결승전 우승자 만수르 바르나위 ⓒ 로드FC

 
권아솔은 자신의 캐릭터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경기장 안팎에서 수시로 상대를 도발하는 것은 물론 SNS를 통해 망언에 가까운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단순히 상대를 비난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로드FC를 비롯한 국내 단체를 넘어 세계 최고 무대인 UFC를 깔아뭉개는 등 빅마우스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열성 팬은 물론 안티 팬도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권아솔과 로드FC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권아솔이 총대를 메고 로드FC를 홍보하고 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시간이 지날수록 혹평이 쏟아지고 있는 로드FC가 꾸준하게 국내 최고 단체로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권아솔의 역할이 절대적인 것이 사실이다.

토너먼트 결승전을 앞두고 권아솔은 만수르보다 자브로프를 응원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기자회견을 비롯 계체량 행사에서도 어김없이 자브로프를 응원하며 "빅토리 샤밀!"을 외쳤다. 이는 특정 선수에 대한 감정보다는 나름대로의 큰 그림(?)에서 기인한 행동으로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브로프의 사촌동생은 UFC 라이트급 챔피언 '독수리(The Eagle)'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1·러시아)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사촌형을 돕기 위해 함께 국내에 입국했다. 이런 기회를 놓칠 권아솔과 로드FC가 아니다. 이미 권아솔은 지난 2017년 '로드FC 40' 공식 계체 현장에서 자브로프의 코너맨 자격으로 자리를 함께했던 누르마고메도프를 도발한 바 있다.

당시 권아솔은 뜬금없이 "너는 누구냐?"며 누르마고메도프에게 시비를 걸었다. 자신과 같은 체급에서 세계 최정상급으로 통하던 누르마고메도프를 모를 리 없었다. 이른바 도발성으로 건드려 본 것이다. 이에 누르마고메도프는 실소를 터트리며 "나도 당신을 모른다"는 말로 되받아쳤다.

이번에는 달랐다. 권아솔은 또다시 설전을 주고받으려했으나 누르마고메도프는 걸려들지 않았다. 연이은 도발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미소와 함께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그렇지 않아도 '악명 높은(Notorious)' 코너 맥그리거(31·아일랜드)와의 불미스런 사건으로 복잡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소모전을 원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어찌됐든 자브로프가 이겼다면 권아솔과 로드FC는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반응이 없다 해도 계속해서 이름값 높은 누르마고메도프를 물고 늘어지는 이른바 '물귀신 마케팅'이 가능했다. 로드FC측으로서는 UFC 라이트급 챔피언과 조금이라도 엮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만수르의 승리로 인해 이 같은 시나리오는 물거품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파이터간 상성에서도 더 나쁘다는 분석이다. 권아솔은 정교한 테크니션이라기보다는 테이크다운 디펜스에 능한 터프가이 타격가에 가깝다. 체급 내 최강자로 꼽혔던 쿠메 타카스케(34·일본), 사사키 신지(39·일본) 등을 꺾었던 배경에는 권아솔의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권아솔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레슬링 훈련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브로프와 격돌했을 경우 좋은 승부가 예상됐던 이유다.

반면 만수르는 다르다. 183cm의 큰 키에 긴치를 바탕으로 다양한 스탠딩 화력을 자랑한다. 순수하게 타격만으로 정면승부가 가능한지라 권아솔의 장점인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별반 의미가 없어지는 스타일이다. 전진 압박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가다 빈 틈이 보인다 싶으면 펀치, 킥, 니킥 등을 쏟아 부으며 전천후로 상대를 맹폭격한다. 어디 그뿐인가. 그라운드 상황에서의 서브미션 공격에도 일가견이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토너먼트 기간 내내 '끝판왕'으로 홍보됐던 권아솔 입장에서는 승리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 말만 앞세우는 선수가 아닌 기량이 동반된 캐릭터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타이밍이다. 난적과 충돌하게 된 권아솔의 향후 행보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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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불 토너먼트 우승자 권아솔 하빕 만수르 권아솔 만수르 우승 하빕 사촌형 다게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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