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 메인 포스터

영화 <증인> 메인 포스터 ⓒ 롯데컬처웍스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증인>이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극장가 입소문 흥행을 이끌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20일 100만 관객을 넘어선 <증인>은 21일 7만7607명의 관객을 더 모으며 누적 관객수 110만6231명을 기록했다. 1400만을 기록하며 흥행 독주 중인 <극한직업>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지만 개봉 8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증인> 역시 기세를 무시하긴 어렵다.

영화 <증인>은 현실을 좇아 대형 로펌에 들어간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자폐아인 지우(김향기 분)를 이용하려다 '진실'을 알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증인>은 사망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 '자폐아'였다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그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인간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러한 면모가 관객에게 매력으로 작용하면서 입소문 역주행을 낳지 않았나 싶다.
 
 영화 <증인> 한 장면

영화 <증인> 한 장면 ⓒ 롯데컬처웍스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증인>은 한 마디로 '이해'에 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에 관한 이야기로 점철된다. 다만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주인공 순호가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만나는 것 역시 그 시작은 의뢰인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는 각자가 처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표면에 드러난 데이터만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재판 역시 '증거재판주의'다. 모든 사실은 '드러난' 증거에 입각해 해석된다. 법정에서 변호사와 검사가 다투는 것은 결국 '누가 더 증거를 잘 이용해 주장을 펼치는가'의 싸움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 증거를 만드는 데 너무 골몰하느라 본질을 잊어버리는 데 있다.     

영화 속에서도 이 문제는 점점 덩치를 키우며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 변호사 순호와 검사 희중(이규형 분)이 다퉜던 쟁점도 노인이 살해당했느냐, 아니면 자살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유일한 목격자 지우가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문제는 '지우의 증언능력이 효력이 있느냐', 더 나아가서는 자폐아가 비장애인과 같을 수 있는가의 문제로 변질되고 만다.
 
 영화 <증인> 한 장면

영화 <증인> 한 장면 ⓒ 롯데컬처웍스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증거가 본질을 흐리는 일'이 꼭 자폐아 지우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주인공 순호 역시 질환에 걸린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야 하는 자신의 사정이 있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표면'은 그저 이상을 포기하고 이익으로 돌아선 속물, 나이 때문에 사랑조차도 포기한 인간으로 비춰질 뿐이며 그 스스로도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해'는 이익을 위해서만 추구된다. 타인을 돕고자 했던 순호의 이상과 그러기 위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일했던 경험은 이제 대형 로펌의 이미지 세탁 용도로만 쓰인다. 그의 본질이 겉을 꾸미는 화려한 경력에 소모되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순호가 지우를 이해하려는 것도 처음엔 '승소'라는 구체적 이익을 위해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자주 묘사되는 '표정' 역시 그렇다. 본래 표정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감정을 숨기는 데 쓰인다.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겉으로 드러난 증거가 그 본질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엉뚱하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에 서툰 지우로 인해 균열이 생기고 만다.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비장애인인 우리는 이상해 보이고 자폐아 지우가 옳은 것처럼 느껴진다. 지우는 자신의 생각을 잘 숨기지 못한다. 그래서 걸러내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마구 뱉어낸다. 우리는 '외연'에 집중하느라 이 사실이 낯설게만 다가온다.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지우에게 순호가 '상대방의 말을 다 듣고 전화를 끊는 거야'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통화를 하는 이유는 상대와 대화하기 위해서지,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우는 지우의 방식대로 상대와 효과적으로 교감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순호는 지우와 소통하면서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이 어딘가 이상해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영화 <증인> 한 장면

영화 <증인> 한 장면 ⓒ 롯데컬처웍스 (주)롯데엔터테인먼트

  
실로 우리의 삶도 그렇다. 열심히 살고 또 행복하려고 사는데, 어느새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져 간다. 죽도록 돈을 버는데 정말 죽겠다 싶을 때도 있다. 돈을 벌려고 살아가는 것인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인가 그 경계도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나는 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도달하고 만다.     

"자폐아가 아니었으면 좋았을텐데요."
"자폐아가 아니면 지우가 아니잖아요."  
   

<증인>은 여기에 꽤 세련된 해답을 내놓는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건 우리를 정의하는 외피 때문이 아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남고 증명하는 방법을 배웠을 뿐,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경쟁, 승부, 승리의 가치에 집착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도외시하게 만드는 사회의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러나 본질은 껍데기가 아니다. 출세를 못하면 어떤가. 변호사가 아니면 어떤가. 나이가 많으면 어떤가. 나는 행복한가, 사랑하는가, 즐거운가. 우리가 정작 질문해야할 질문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영화 속에서 지우가 말하는 '좋다'의 의미는 중의적이다. 실로 지우의 질문은 당신이 '좋은' 사람인지,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지 상대에게 묻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증인>은 시종일관 우리가 진짜 질문해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우리 자신에게 깨우쳐준다. 그리고 그 질문의 방향을 잘 잡았다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도 알려준다. 가까운 행복도 찾지 못하면서 저 멀리 떨어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증거는 해답을 위해 필요할 뿐, 우리는 우리에게 산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영화 <증인>은 말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경민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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