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을지로에 재개발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을지면옥'이 철거 위기에 놓였을 줄은 몰랐다며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냉면집이 아니다. 세운상가를 둘러싼 을지로 일대의 역사와 오늘의 문제를 조명하고자 한다. - 기자 말

(* 지난 기사 '을지로 하면 을지면옥?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http://omn.kr/1h5ke)에서 이어집니다)

 
필자의 2012년 영상작품 중 한 장면. 이 영상을 찍기 위해 영하 수십도의 대류권을 지나 성층권에 도달한 후 안전하게 낙하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대부분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만들었다.
 필자의 2012년 영상작품 중 한 장면. 이 영상을 찍기 위해 영하 수십도의 대류권을 지나 성층권에 도달한 후 안전하게 낙하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했다. 대부분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만들었다.
ⓒ 최황

관련사진보기

 
"을지로와 청계천에서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다."

단순히 과장된 농담조의 시쳇말이 아니다. 을지로에 있는 아무 공업소에 무작정 들어가 인공위성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그때부터 기막힌 네트워크가 가동된다.

당신은 "OO모타에 가서 모터 사고, 저쪽 길 건너에서 센서를 사고, △△상사에서 태양광 전지판이랑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와요. 그러면 내가 알루미늄 프레임으로 본체를 만들어다 줄테니까"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실제로 기자는 지난 2012년, 을지로를 돌아다니며 촬영 장비를 제작했다. 장비를 헬륨풍선에 날려보내 '우주'를 촬영하기도 했다.
    
끈끈한 네트워크로 '작품' 만드는 을지로

이 네트워크는 을지로가 대규모 공업단지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 특징이다. 규모가 큰 공장들은 개인 단위의 소량 주문은 웬만해선 받지 않는다. 스케줄에 따라 쉬지 않고 가동해야 하는 기계를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을지로의 소규모 공업사들은 이런 작은 단위의 일을 서로의 협력을 통해 곧잘 수행한다. 각종 장인들로 구성된 5만 명에 이르는 을지로 종사자들이 촘촘한 네트워크를 가동시킨 결과물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예술가들에게 을지로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업실이다. 
 
을지로와 예술을 검색하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을지로와 예술을 검색하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 구글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서울의 문화예술 현장에 을지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이를 위해 기자는 직접 '예술 종사자들의 을지로-청계천 이용에 관한 설문'이라는 제목으로 구글 설문지를 만들어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13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설문에 답했다. 또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2017년 한 해동안 재단이 지원한 창작기금 사용 내역'을 받아 분석해 봤다.

설문을 살펴보면, 총 1345명 중 97.5%에 해당하는 1311명이 '을지로와 청계천에 형성된 제조업 단지를 이용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중 64.4%에 해당하는 865명은 '작업과 관련된 일을 할 때마다 이용한다'고 답했다.

이곳 '을지로'만의 장점을 묻는 말에는 68%에 해당하는 891명이 '소통', '모여있는', '한번에', '인프라', '집중된'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응답자가 네트워크가 을지로만의 장점이라고 꼽은 것이다.
 
예술가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종사자 1345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예술가를 비롯한 문화예술계 종사자 1345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 최황

관련사진보기

 
예술은 을지로와 함께 큰다
   
서울문화재단 측에서 제공받은 자료를 보면 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과 회화만을 다루는 작가를 제외한 모든 작가들의 지원금 사용 내역에는 '을지로'에 있는 공업사나 재료상의 상호가 등장한다.

작가의 성향이나 작품의 주제, 참여하는 전시의 성격에 따라 제작되는 작품의 모양이나 소재가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특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2014년에 창작지원금을 지원받은 A작가는 순수 작품 제작비로 약 154만 원을 사용했다. 그는 을지로의 60년된 공구상인 '평안상사'를 비롯해 조명, 전기회로 제작, 유리 등 총 13군데의 업체에서 재료를 구입하거나 작품에 필요한 장치 등을 제작했다. A작가가 을지로에서 사용한 금액은 100만원 정도. 제작비의 64% 수준이다.

B작가의 경우는 지원금 중 작품 제작비로 300만 원가량을 썼는데, 그중 을지로 17개 업체에서 150만 원가량을 사용했다. 2018년에 지원받은 C작가는 제작비로 사용한 400여만 원 중 을지로 6개 업체에서 150여만 원을 사용했고, 같은 해에 지원받은 D작가는 작품 제작에 사용한 190여만 원 중 82만 원을 을지로의 4개 업체에서 사용했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 제작의 절반 정도를 '을지로'와 함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은 매년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한다. 해마다 많은 예술가들이 지원금을 받고, 많은 돈이 을지로의 제조업 단지에서 사용된다.
 서울문화재단은 매년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한다. 해마다 많은 예술가들이 지원금을 받고, 많은 돈이 을지로의 제조업 단지에서 사용된다.
ⓒ 최황

관련사진보기

서울문화재단에서 2014년에 창작 지원금을 받은 A 작가가 제출한 지원금 사용내역 중 작품 제작비로 사용된 내역. 64%에 가까운 지원금을 을지로에서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서울문화재단에서 2014년에 창작 지원금을 받은 A 작가가 제출한 지원금 사용내역 중 작품 제작비로 사용된 내역. 64%에 가까운 지원금을 을지로에서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 최황

관련사진보기

   
을지로를 없애면서 문화 예술을 논한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첫 임기를 시작한 2011년 10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문화'나 '예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뉴스를 약 2600 건 이상 만들었다.

하루에 한 번 이상 '예술'과 관련된 뉴스를 만들어낸 셈이다. 얼마 전엔 한 언론사를 통해 도시재생에 대해 "살릴 것은 살리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철거할 것은 철거하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작가 K씨는 2019년 현재 서울의 문화재단이나 서울시립미술관 등 서울시와 관련된 기관을 통해 창작 지원을 받고 있다. 그는 을지로에 대해 "미술관이나 공연장, 문화재단이나 어떤 기관이 문화와 예술의 인프라라면 을지로 역시 같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프라"라면서 "서울에서 을지로를 없애고 문화와 예술을 논하겠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강조하지만, 냉면은 이곳에서 철저하게 부수적인 것이다. 철거는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 다음 기사 계속됩니다, 바로가기 클릭, http://omn.kr/1h5mz)

태그:#을지로, #문화, #예술, #재개발, #박원순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