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한국과 바레인의 16강 연장전. 골을 성공한 김진수가 환호하고 있다. 2-1 한국 승리. 2019.1.23

22일 오후(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라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한국과 바레인의 16강 연장전. 골을 성공한 김진수가 환호하고 있다. 2-1 한국 승리. 2019.1.23 ⓒ 연합뉴스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톱시드를 배정 받았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월드컵에서 3번 혹은 4번 포트를 배정 받았다. 수준 높은 지역예선을 통과한 유럽과 남미, 혹은 아프리카의 강호들과 대결을 하는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대부분 수비 위주의 소극적인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보다 약하거나 전력이 비슷한 팀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시안컵으로 넘어오면 한국의 입장은 전혀 달라진다. 역대 아시안컵 랭킹에서 이란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는 한국은 매 대회마다 언제나 톱시드를 배정 받는다. 당연히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은 '비겨도 성공'이라는 전략으로 밀집 수비를 통해 한국의 공세를 막으려 한다. 한국이 필리핀, 키르기스스탄, 바레인 등 상대적으로 약체로 꼽히는 팀들에게 의외로 고전하는 이유다.

한국은 지난 22일 바레인과의 2019 아시안컵 16강전에서도 연장까지 가며 크게 고전했다. 한국이 자랑하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황의조(감바 오사카), 황희찬(함부르크SV)로 이어지는 공격진은 바레인의 수비에 막혀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승부차기를 준비해야 할 거라 생각했던 연장전반 막판 한국의 막힌 혈을 뚫어준 선수가 있었다. 연장 전반 홍철(수원삼성)과 교체 투입돼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트린 김진수(전북현대)가 그 주인공이다.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5 아시안컵에서 맹활약한 '포스트 이영표'

2000년대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왼쪽 측면 수비수는 단연 '초롱이' 이영표(KBS 축구해설위원)였다. 이영표는 3번의 월드컵을 포함해 A매치에만 127경기에 출전했고 네덜란드의 PSV아이트호벤, 영국의 토트넘, 독일의 브루시아 도르트문트 등 유럽의 명문팀들을 두루 거쳤다. 2002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전 박지성의 골과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골든골을 어시스트한 선수 역시 이영표였다.

하지만 이영표는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한국은 이영표의 뒤를 이어 2010년대를 이끌어 갈 새로운 왼쪽 풀백을 구해야 했다. 한국은 홍명보 감독(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이 이끈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윤석영(FC서울)에게 왼쪽 측면 수비수 자리를 맡겼다. 하지만 윤석영은 연령별 대표팀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성인 대표팀에서 폭발시키지 못하며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렇게 이영표의 빈자리를 느끼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유망주가 바로 독일 TSG 1899 호펜하임 소속의 김진수였다. 김진수는 K리그에서 뛰지 않고 2012년 경희대를 중퇴하고 J리그의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왼쪽 풀백으로 맹활약하며 한국의 무실점 금메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김진수가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카타르와의 8강전을 앞둔 23일 오전(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알 와슬 축구 아카데미에서 회복훈련 도중 정승현과 대화하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김진수가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카타르와의 8강전을 앞둔 23일 오전(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알 와슬 축구 아카데미에서 회복훈련 도중 정승현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진수는 이듬해 열린 2015년 아시안컵에서 한국 대표팀 선수 중 유일하게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출전하면서 이영표의 후계자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비록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힐패스 실패로 결승골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애초에 김진수의 활약이 없었다면 한국이 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2015 아시안컵에서 김진수가 보여준 활약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김진수는 독일에서의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친구 손흥민과 달리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순조롭게 적응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대표팀에서도 점점 입지가 줄어 들면서 홍철, 박주호(울산현대) 등 포지션 경쟁자들에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결국 김진수는 2017년 1월 전북으로 이적하면서 일본과 독일로 이어졌던 5년 간의 해외 생활을 마무리했다.

4년 전 아픔 남은 김진수, '16강 영웅'으로 만족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김진수의 K리그 이적은 성공적이었다. 김진수는 2017년 29경기에 출전해 4골5도움을 기록하며 K리그 클래식 베스트11에 선정됐다. 김진수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9연속 월드컵 출전에 기여했다. 물론 '이영표의 유일한 후계자'로 불리던 시절 만큼은 아니었지만 월드컵을 앞두고 신태용 감독의 측면 수비수 걱정을 덜어 주기에 충분한 활약이었다.

하지만 김진수는 작년 3월 북아일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무릎내측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신태용 감독은 김진수를 예비엔트리에 포함시키며 회복을 기다렸지만 김진수는 끝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김진수가 빠진 한국은 스웨덴전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박주호마저 부상을 당하며 김민우(상주상무)와 홍철로 대회를 치렀고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수술 이후 7개월에 걸친 긴 재활 끝에 작년 10월 그라운드에 복귀한 김진수는 작년 10월 대표팀의 호주 원정 멤버에 포함됐다. 파울루 벤투 감독 부임 후 처음으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비록 호주 원정에서 경기 출전 기회는 잡지 못했지만 벤투 감독의 눈도장을 찍은 김진수는 박주호, 김민우 등 월드컵 멤버들을 제치고 아시안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됐다.

김진수는 조별리그 필리핀전과 중국전에 선발 출전했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바레인과의 16강에서는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선발 투입된 홍철이 무모한 얼리 크로스로 기회를 무산시켰고 김진수는 연장 전반 6분 경기에 투입됐다. 연장에 주어진 마지막 교체 카드를 수비수를 바꾸는데 쓴 벤투 감독의 선택이 다소 의아하기도 했지만 김진수는 연장 전반 추가시간 멋진 다이빙 헤더골로 한국을 8강으로 이끌었다.

김진수는 4년 전 아시안컵 결승 연장전에서 안정적이지 못한 힐패스를 시도하다가 호주에게 결승골을 헌납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아시안컵 우승을 바라는 태극전사들의 마음은 한결 같겠지만 김진수에게는 '한국 축구의 숙원'이라는 대외적인 명분 외에도 또 하나의 개인적인 간절함이 있는 셈이다. 16강전 결승골을 통해 자신감을 한껏 끌어 올린 김진수가 남은 경기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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