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들에게는 비활동 기간이 가족 및 주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휴식을 취하며 새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저녁마다 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던 야구 팬들에게 겨울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야구 팬들이 규모가 크지 않은 겨울의 친선경기나 자선야구 같은 이벤트에도 의외로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그렇게 외로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야구 팬들에게 작년 11월 15일 반가운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수 년 간 KBO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중계했던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호주 프로야구 리그에 참가하는 질롱코리아의 경기를 생중계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시즌이 끝난 후 야구에 목 말라 있던 팬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32경기를 치른 현재 질롱 코리아는 한국 야구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질롱코리아는 32경기에서 6승 26패(승률 .188)로 사우스웨스트지구는 물론 호주리그 8개 구단 중에서도 독보적인 최하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질롱코리아 선수단에는 과거 KBO리그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던 선수들도 다수 포함돼 있어 야구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호주 프로야구의 한국 구단 질롱 코리아는 KBO리그 원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떠올리게 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호주 프로야구의 한국 구단 질롱 코리아는 KBO리그 원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를 떠올리게 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 질롱코리아 홈페이지 화면 캡처

 
단장 박충식-감독 구대성-에이스 김진우로 출발했던 질롱코리아

질롱코리아는 2018년 5월 호주의 빅토리아주 질롱을 연고로 창단한 호주 프로야구의 7번째 구단이다. 한국인들로 구성된 해외 야구팀으로 일본 독립리그의 서울 해치에 이어 두 번째. 사실 호주 프로야구는 미국과 일본, 한국처럼 한 시즌에 140경기 이상 소화하는 장기리그가 아닌 11월부터 1월까지 팀당 40경기를 치르는 '준프로' 리그에 가깝다.

질롱코리아에 대한 한국 팬들의 관심은 초대 사령탑으로 한화 이글스와 KBO리그의 전설 구대성 감독이 선임되면서 크게 늘어났다. KBO리그에서 67승214세이브를 기록하고 2010년 은퇴한 구대성 감독은 호주로 건너가 2015년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호주에서도 세 번의 세이브왕을 차지했던 구대성이 감독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호주의 프로팀을 이끌게 된 것이다. 여기에 질롱코리아의 초대단장은 한국시리즈 15회 완투의 주인공 박충식이다.

질롱코리아는 작년 9월 17일 창단 멤버를 뽑기 위한 트라이아웃을 실시했는데 최대 25명을 선발하는 트라이아웃에 무려 200명의 참가자가 몰리며 성황을 이뤘다. 그 중에는 퓨처스리그 3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던 LG트윈스 출신의 장진용과 덕수고 시절 대통령배 타격왕을 차지하며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했던 길나온(개명 전 길민세) 등 야구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도 꽤 포함돼 있었다.

KBO리그 시즌이 끝난 후 선수단 정리가 이뤄지면서 질롱코리아에는 빅네임(?)들이 본격적으로 추가됐다. 특히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탈삼진왕에 올랐고 1군에서 네 번이나 두 자리 승수를 따냈던 김진우(전 KIA 타이거즈)는 그야말로 격이 다른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었다. 김진우는 작년 kt 위즈에서 활약했던 고창성처럼 호주리그에서 건재를 보인 후 KBO리그 복귀를 타진하겠다는 계획으로 질롱코리아 입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경남고 시절 이상화(kt)와 함께 원투펀치를 형성했고 2006년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 우승멤버로 활약했던 잠수함 이재곤도 질롱코리아에 합류했다. 이재곤은 군에서 전역한 2010년 8승3패 평균자책점 4.14를 기록하며 전통적으로 잠수함 투수가 부족했던 롯데 자이언츠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나름대로 준수한 1군 경력을 가진 김진우와 이재곤은 트라이아웃에서 선발된 장진용과 함께 질롱코리아의 선발 트로이카로 활약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ERA 8.74-32경기 30삼진... 우울한 투타 성적

질롱코리아는 중심타선으로 활약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한화 출신 김경언이 개인 사정으로 팀에 합류하지 못했지만 시카고 컵스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는 권광민이 임대 형식으로 합류했다. 그 밖에 포수 임태중과 한성구, 내야수 김승훈, 외야수 이용욱, 임종혁 등도 프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본 결과 질롱코리아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김진우가 부상으로 개막 4연전에 나서지 못한 질롱코리아는 장진용, 이재곤, 길나온이 등판한 시드니 블루삭스와의 4연전에서 전패를 당했다. 6경기 만에 시즌 첫 등판한 김진우는 1.2이닝 6실점(5자책)으로 조기 강판됐고 이재곤은 다음날 5이닝 동안 4개의 홈런을 맞으며 무려 17실점(15자책)을 기록했다. 1-21로 패한 지난 6일 애들레이드전에서는 투수가 부족해 야수가 3명이나 등판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투수들의 개인 기록을 살펴 봐도 질롱코리아는 정상적인 프로팀의 기록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화 출신 김병근이 2승 평균자책점 4.34, 에이스 역할을 하는 장진용이 3승 4패 ERA 4.53을 기록하고 있을 뿐 나머지 선수들은 기록을 보기가 민망한 수준이다. 한 때 KIA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진우가 1승 6패 ERA 8.74, 야구에서 투수로 전향한 길나온이 6패 ERA 11.71,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을 갈아치운 이재곤도 5패 1홀드 ERA 12.58에 달한다.

타자 쪽도 상황이 썩 나은 것은 아니다. 질롱코리아는 작년까지 NC다이노스에서 활약했던 플레잉코치 최준석(타율 .300 5타점)을 제외하면 3할 타자가 1명도 없다. 컵스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는 권광민이 4홈런 16타점으로 그나마 자존심을 세워주고 있지만 권광민도 32경기에서 30개의 삼진을 당하고 있다. 길나온과 류기훈이 1타수 1안타로 '10할 타율'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방출된 선수에게 새로운 기회의 무대를 만들어 준다는 취지는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질롱 코리아는 10월 29일 최종 엔트리를 발표한 후 한 달의 훈련 시간도 채 갖지 못한 채 곧바로 시즌에 돌입했다. 심지어 숙식만 제공될 뿐 연봉은 지급되지 않아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야구 팬들에게 '겨울야구'라는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거라 기대했던 질롱코리아는 매우 힘겨운 창단 첫 시즌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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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호주 프로야구 질롱 코리아 구대성 감독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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