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키즈> 한 장면

<스윙키즈> 한 장면 ⓒ NEW

 
한국전쟁 당시 10만 명이 넘는 포로를 수용됐던 거제포로수용소는 남쪽에 만들어진 제2의 전선이었다. 전쟁을 주도했던 미국은 포로 송환방식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남북이나 3국을 선택할 수 있는 이른바 자유송환원칙을 주장했다. 자유세계의 우월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무조건적인 고국 송환 원칙을 주장하는 인민군 포로들이나 중국군 포로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였다. 미국의 자유송환원칙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구분 지어 놓은 거제도포로수용소 안의 대립을 격화시켰다. 포로수용소가 또 다른 전선이 된 이유였다.
 
미군이 주도하는 송환심사에 반발한 공산권 포로들은 이를 항의하던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빚었고, 수용소를 경비하던 미군의 발포로 희생자가 생겨난다. 이 과정에서 수용소장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포로들에게 납치된 수용소장은 미군의 잘못을 인정하고 풀려났으나 해임됐고, 새로 급히 부임한 신임 소장은 이에 따른 보복으로 탱크를 앞세워 포로들의 저항을 진압한다.
 
포로수용소에서 탭댄스를? 상상력이 만들어낸 판타지
 
 <스윙키즈> 한 장면

<스윙키즈> 한 장면 ⓒ NEW

 
영화 <스윙키즈>에는 명시적인 시점 언급은 없으나, 1952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북한에 수용된 국군과 미군 포로들이 제네바 협약에 따라 인도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비해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은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일으킨다. 이런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싶었던 미군 수용소장은 분위기 전환을 꾀해 보려 한다. 브로드웨이 출신 미군 병사를 활용해 포로들로 구성된 댄스팀을 만들어 공연에 나서려는 것의 영화의 출발이다.
 
사실 하루에도 포로들 간의 대립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살벌한 거제포로수용소에서의 탭댄스는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옛 자료 속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탈춤을 추는 사진 한 장이 출발점이 됐지만,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곳에서 포로들이 공연을 위해 탭댄스를 함께 춘다는 자체는 비현실적이다. <스윙키즈>를 일종의 판타지 영화로 보게 되는 이유다.
 
그러나 그 상상력 덕분에 긴장 속 생과 사가 갈리기도 했던 수용소라는 공간이 주는 무거움은 상당히 해소된다. 이념 대립과 크고 작은 갈등이 이어지던 어두운 공간이 춤과 노래를 통한 흥겨움으로 치장되고, 그러면서 평온한 세상을 기대하게 만들고 전쟁의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경직되고 음험한 수용소의 풍경이 묘사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극 중 수용소라는 공간에서, 더구나 친공과 반공이 대결하는 구도에서 상대를 향한 경계와 적대감 속에 온갖 음모와 술수가 난무한다. 하지만 춤이라는 매개가 작용할 때는 다르다. 서로가 섞일 때 모든 게 조화가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춤을 추는 동안에는 적개심보다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요구하면서 갈등을 풀어낸다. 그렇지 않고서는 모두 함께 추는 춤이 제대로 될 리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빛을 발한다. <스윙키즈>는 춤과 노래 등 단순 오락적 요소가 강하지만, 이 요소에는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감독의 의중도 담겨 있다. 포로수용소와 탭댄스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요소를 상상력을 발휘해 서로 엮은 이유는 현란한 춤과 음악으로 전쟁을 통해 대립하는 세상에 분노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춤으로 전쟁의 상처를 위로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갈구하는 마음을 표현해 내고 싶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이념'에 대한 분노, 춤을 통해 뛰어넘다 
 
 <스윙키즈> 한 장면

<스윙키즈> 한 장면 ⓒ NEW

 
"빌어먹을 이념 따위!"
 
<스윙키즈>에서 가장 귀에 박히는 말 중 하나이면서, 춤을 통해 뛰어넘고 싶었던 대립의 철조망이기도 하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 어느 순간 사람들의 갈등을 조장하고 전쟁을 만들어 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평화롭게 각자 평범하게 술집에서 노래 한 자락 뽑으며 세상사를 이야기할 수 있었을 사람들은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다.
 
영화 속 인물들은 '빌어먹을 이념'에 대한 분노를 춤을 통해 대리해서 발산시킨다. 그래서 그 춤 속에는 전쟁이 만들어낸 설움과 아픔, 아쉬움, 고통스러운 감정 등이 혼재돼 있다. 그렇지만 흥겹게 춤을 추는 순간 만큼은 모두 무마되고 함께 녹아든다. 
 
영화에서 댄스팀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국적 '남·북·미·중'은 지금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들이다. 남·북·미·중의 군인들이 민간인 통역사 여성과 함께 서로에 대한 불신을 잠시 내려 놓고 한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한반도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총부리를 내려놓고 함께 춤추며 소통할 수 있는 세상. 전쟁의 비극과 아픔을 춤으로 녹인 것은 최근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는 과정에서 춤과 노래가 곁들인 문화공연으로 교류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한국전쟁 상황을 환기시키는 감독의 연출방식은 <스윙키즈>가 춤과 음악이 가미된 오락영화보다는 반전(反戰)영화임을 강조하는 반전(反轉)이라는 점에서 강렬하다. '이념이라는 악당'을 향해 총 대신 춤으로 맞서려는 시도는 다소 무모해 보이지만,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는 계속돼야 할 도전이기도 하다.  
 
스윙키즈 도경수 박혜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