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아벨

배우 류아벨이 영화 <샘>으로 올 연말 관객들과 만난다. ⓒ 에스팀엔터테인먼트

 

교통사고 후 안면인식 장애가 온 남자 두상(최준영) 주위를 서성이는 한 여자(류아벨)가 있다. 사람을 제대로 못 알아보는 그를 두고 여자는 연애 코치를 한다든가 때론 성추행으로 신고한다고 협박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영화 <샘>은 배우 류아벨의 장기가 십분 녹아 있는 작품이었다. 극중 여자는 두상의 취약점을 알기에 목소리 톤이나 머리 모양만 살짝 바꿔가며 이야기 곳곳에 등장한다. 어찌 보면 일인다역이다. "교통사고로 받은 합의금이 두상에게 있다는 걸 알고 처음엔 그의 가방을 노렸는데 어쩌다 보니 우연히 또 만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라며 류아벨은 작품에 담긴 특별한 멜로 코드를 설명했다.

선물처럼 다가온 작품

사실 <샘>은 3년 전 촬영한 작품. 2년이 지나 전주영화제에 초청됐고, 오는 29일에야 정식 개봉하게 됐다. 일반 관객과 만나기까지 3년이 걸린 셈. 류아벨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전주에서도 반응이 좋았고, 지금의 배급사에서 관심을 가져주셨다"며 개봉 과정이 하나의 선물 같은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작품에 들어갈 때 솔직히 일인다역이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준비할 시간이 촉박했거든. 초고에선 엄청 방대한 이야기이고 너무 추상적으로 보여서 거절했는데 어느새 제가 출연이 확정됐더라(웃음). 감독님과 제 캐릭터가 정말로 관객을 속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녀가 한 명인지 세 명인지 모호했으면 좋겠다는 점에 방점을 두고 연기했다. (극중 일본인으로 나오는 장면에서) 그녀가 일본 사람 연기를 할 때도 완전 일본인처럼 보이진 않는다. 웃는지 우는지 모르는 표정, 두상을 놀리는 건지 동정하는 건지도 헷갈리게 하고 싶었다

처음엔 그녀도 살기 위해 두상에게 접근했다고 봤다. 그래서 돈도 떼먹으려 한 거지. 영화에선 그녀에 대한 힌트가 많지 않은데 밤에 나가서 일하고, 동네 친구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두상을 괴롭히던 동네친구가 그녀에 대해 걸레라고 표현할 때 두상이 한 방 먹이잖나. 그러면서 두상을 꽤 괜찮은 사람 같다 생각하게 됐고, 자신이 하는 일로 뭔가 미안한 감정도 갖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속물적 이유로 접근했던 남자가 알고 보니 순수함으로 가득한 사람이었고 그 지점에서 여자는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샘>이 독특한 멜로라고 홍보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류아벨 역시 그 지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영화 <샘>의 한 장면.

영화 <샘>의 한 장면. ⓒ 모토

 
"우리 영화에 <어린 왕자> 이야기가 나오듯 사랑은 일종의 길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두상을 두고 주변에선 너무 어수룩하다고 걱정하지만 그녀를 대할 때 딱히 이름이나 나이 학교 등을 안 묻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잖나. 그런 그녀 모습에 길들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류아벨은 영화에 얽힌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서너 명의 고등학생들이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배우들에게 관심을 보였고, 류아벨은 자신의 SNS에 이들을 찾는다면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엄청 유명한 배우로 알았는지 다리 위에서 환호하고 그랬는데 3년 전이니 아마 지금은 성인이 됐겠지. 제가 유명하지 않아서인지 그 글을 못 읽은 것 같다(웃음). 이미 그때 일을 잊었을 수도 있고. 사실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고, 추운 날씨에 그들이 우리 현장을 따라다니면서 환호하고 그랬다. 덕분에 NG는 많이 났지만 그 장난기 있는 소녀들 에너지가 우리 영화랑 맞는 느낌이 들더라. 그때 힘을 많이 얻었다."
 
 배우 류아벨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당시 현장에서 환호하던 이들을 찾고 있다.

배우 류아벨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리며 당시 현장에서 환호하던 이들을 찾고 있다. ⓒ 류아벨

 
10년여의 기록
 
 배우 류아벨

"우리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에스팀엔터테인먼트

 
스스로 스타 배우가 아니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공으로 치면 이미 그는 10년여의 경력이 있는 나름 '중견'이다. 최근엔 '류아벨 배우전'이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인디스페이스를 빌렸다. 굉장히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언제든 예매해서 오실 수 있게 넉넉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서울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독립영화전용관이기도 하고, 시간대도 맞았다. 절반이라도 채우면 많이 오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이 와주셨다. 지방에서 오신 분도 계셨다. 정말 제가 뭐라고 감사하면서 부끄럽기도 했다. 제가 나오는 단편 4편을 줄줄이 상영한 단편전이었는데 그게 뭐라고 다들 와주셨다. 진짜 제가 언제까지 연기로 관객들을 만날지 모르지만 현장에서 한숨을 쉴 때도 온 정성을 다해서 표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 류혜영과 함께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이지만 시작은 우연이었다. 본래 영화음악을 하고 싶어서 고등학생 시절 영화공부를 했다던 그는 당시 뮤지컬 교사가 일주일만에 퇴직하는 바람에 연기를 경험하게 됐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영화음악에 관심이 생겼다. 음악은 그전부터 하고 있었거든. 피아노도 그렇고 재즈, 클래식 등 가리지 않았다. 어렸을 땐 최고의 세션맨(연주자)을 꿈꾸기도 했다. 원래 그 나이엔 꿈이 자주 바뀌니까(웃음). 사람이 보통 텍스트 혹은 이미지로 뭔가를 기억하잖나. 전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미지와 음악이 맞아떨어질 때 너무 통쾌하더라. 그래서 영화음악에 빠지게 됐다. 

사실 지금 제가 연기를 정말 잘한다면 음악 공부를 하고 싶을 텐데 연기엔 끝이 없는 것 같다.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늘 창피하고 모자람을 느껴 관객분들 만나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걸 어찌 채울지 고민하다 보니 10년이 지나갔다. 정말 다른 일을 고민할 틈이 없었다. 오히려 20대 때가 힘들었지. 그때 제 좌우명이 실험과 도전이었거든. 지금 생각하면 다신 못할 것처럼 여러 가지를 시도했었다. 당연히 벽에 부딪히거나 공격받기도 했지. 제풀에 쓰러지기도 했고. 나름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웃음)."

 
 배우 류아벨

"연기를 시작하고 나서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늘 창피하고 모자람을 느껴 관객분들 만나기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걸 어찌 채울지 고민하다 보니 10년이 지나갔다. 정말 다른 일을 고민할 틈이 없었다." ⓒ 에스팀엔터테인먼트

 
그렇게 좌충우돌의 20대를 지나 그는 어느 덧 서른 초입을 걷고 있다. 이름 역시 류선영에서 새롭게 아벨로 개명했다. "전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라틴어로 생명력을 뜻한다"면서 그는 "10년 전부터 연기를 꾸역꾸역 공부해온 게 인생의 챕터 1이라면 이제 두 번째 라운드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뭔가 새롭게 다잡고 싶은 마음도 있고 여러 의미가 있다. 이제 한눈 팔 수가 없다(웃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연기 쪽은 여전히 어렵고 변화 또한 빠르더라. 요즘 요가를 배우고 있는데 집중력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훈련을 하고 있다." 

하루에 영화 한 편씩은 챙겨볼 정도로 영화광인 그에게 연말에 보기 좋은 작품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반사적으로 <샘>이 나왔다. "정말 뻔한 말이 아니라 처음 말씀드리는 건데 겨울에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 중 유쾌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감할 수 있게 하는 작품같다"는 이유였다.  

그의 말마따나 모두가 알지만 잊어버린 경험들, 그 순수한 사랑의 상태를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류아벨 최준영 연말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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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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