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 하나은행 팬들에게는 금지어가 됐지만 하나은행의 역사는 '첼시 리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12년 신세계 쿨캣을 인수해 창단한 하나은행은 세 시즌 연속 하위권에 머물며 기존 구단과의 격차를 실감해야 했다. 그렇게 다른 팀들의 승리 자판기로 전락하던 하나은행은 2015년 189cm의 큰 신장을 자랑하는 혼혈 선수 첼시 리를 영입했다.

할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국내 선수로 인정 받은 미국 대학농구 1부리그 출신의 빅맨 첼시 리는 하나은행의 약점이었던 센터로 활약하며 2015-2016 시즌 득점, 리바운드, 야투상을 독식했다. 하나은행도 첼시 리와 함께 한 첫 시즌 단숨에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2016년 첼시 리가 한국계라는 걸 증명한 서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하나은행은 2015-2016 시즌 준우승 기록을 몰수 당했다.

'첼시 리 사태'로 힘든 시간을 보낸 하나은행은 이후 두 번의 시즌에서 3할대의 승률에 머물며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나은행은 그 사이 팀의 간판 선수였던 김정은(우리은행 위비)과 염윤아(KB스타즈)가 차례로 팀을 떠나면서 백지은과 고아라를 제외한 선수단 전원이 1990년대 출생의 젊은 선수들로 채워졌다. 과연 패기의 하나은행은 팀 인수 후 7년 만에 첫 봄 농구의 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외국인 선수에 실망? 강이슬 잠재력 폭발로 위안
 
 강이슬은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터로 자리 잡았다.

강이슬은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터로 자리 잡았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2005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으며 하나은행의 전신 신세계에 입단했을 때부터 하나은행을 대표하는 선수는 언제나 김정은이었다. 김정은은 입단하자마자 신인왕과 BEST5를 독식하며 WKBL을 대표하는 포워드로 떠올랐고 4번이나 득점왕을 차지하며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하나은행의 자존심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14년부터 종아리, 무릎 등의 부상에 시달리며 코트를 비우는 시간이 늘었고 여자농구 최고의 포워드라는 자리도 김단비(신한은행 에스버드) 등 후배들에게 내주고 말았다. 결국 김정은은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어 고향과 가까운 아산을 연고로 하고 있는 우리은행으로 이적했다. 다른 유니폼을 입은 김정은을 상상한 적이 없는 하나은행에게도 김정은의 이적은 상당히 난감한 일이었다.

하나은행은 작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빅맨 이사벨 해리슨(192cm)과 자즈몬 과트미(188cm)를 지명했다. 해리슨은 WNBA 샌안토니오 스타즈에서 주전 센터로 활약할 만큼 좋은 기량을 갖췄고 과트미 역시 기술은 다소 투박하지만 신장과 파워를 겸비해 골밑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선수였다.

1순위 외국인 선수 해리슨은 득점 6위(15.7점)와 리바운드 3위(11.2개), 블록슛 4위(1.06개)를 기록하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리그 최정상급 활약을 펼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엘리사 토마스, 다미리스 단타스 등에 비해 크게 돋보이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해리슨이 가장 화제가 됐던 순간은 지난해 12월 10일 우리은행의 외국인 선수 나탈리 어천와와 난투극을 벌였을 때였다.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가운데 '토종 에이스' 강이슬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지난 시즌 35경기에 모두 출전한 강이슬은 득점5위(15.9점,국내 선수 1위), 3점슛 1위(101개), 3점 성공률 1위(41.1%), 자유투 성공률 2위(88%), 스틸 5위(1.54개, 국내 선수 3위)로 맹활약했다. 2016-2017 시즌까지 아주 뛰어난 슈터 유망주에 불과(?)했던 강이슬은 지난 시즌을 통해 리그 정상급 포워드로 성장했다.

유망주 위주로 구성된 선수단, 박신자컵 우승 상승세 이을까
 
 무릎 부상으로 3년 가까이 고생한 신지현은 이번 시즌 확실한 부활을 노린다.

무릎 부상으로 3년 가까이 고생한 신지현은 이번 시즌 확실한 부활을 노린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지난 시즌 4승31패에 머물렀던 KDB생명 위너스(현 OK저축은행 읏샷)가 일찌감치 시즌을 포기한 가운데 하나은행은 실질적인 지난 시즌 최하위 팀이었다. 신세계를 인수한 후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한 하나은행이기에 봄농구에 대한 갈망은 그 어떤 팀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이제 '첼시 리 사태'로 홍역을 치른 후 세 번째 시즌을 맞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성적을 내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하나은행은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92cm의 센터 샤이엔 파커를 지명했다. 파커는 WKBL 경력은 없지만 중국과 폴란드 등 해외리그에서 활동한 경험이 비교적 풍부한 선수다. WNBA 4년 차이기도 한 파커는 올해 시카고 스카이에서 경기당 평균 19.7분을 뛰며 10득점 5.8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하나은행의 국내 빅맨진이 약한 만큼 골밑에서 파커의 활약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은행의 최대 강점은 젊고 풍부한 가드진에 있다. 안정된 경기 운영을 자랑하는 신인왕 출신의 김이슬과 신지현, 빠르고 저돌적인 돌파가 돋보이는 김지영, 투지가 넘치는 서수빈은 저마다 고유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선수도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주전과 벤치 멤버의 역할을 구분해 주고 그에 맞는 플레이를 펼치도록 판을 깔아 주는 것은 이환우 감독이 해야 할 역할이다.

김정은의 보상선수로 하나은행 유니폼을 입고 지난 시즌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친 박신자컵 MVP 김단비의 역할도 더 커질 전망이다. 강이슬과 함께 슈팅가드부터 스몰 포워드 자리를 오가던 염윤아가 FA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185cm의 좋은 신장을 가진 백맨 유망주 이하은도 팀 내 비중을 더욱 키울 필요가 있고 FA 영입 선수 고아라는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백지은과 함께 '언니'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하나은행은 지난 9월 젊은 선수들 위주로 출전하는 박신자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나은행은 박혜진(우리은행)이나 박지수(KB) 같은 거물을 잡진 못했지만 지난 몇 년 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꾸준히 유망주들을 수집하며 젊은 선수단을 구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들이 유망주의 껍질을 벗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하면 하나은행도 머지 않은 시간 안에 강팀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물론 하나은행의 도약이 이번 시즌이 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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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2018-2019 WKBL KEB하나은행 강이슬 샤이엔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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