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동계올림픽 때마다 한국 빙상은 끊임없는 파벌 논란과 여러 잡음에 시달렸다. 이미 2006년부터 세간에 알려진 파벌 문제의 중심에는 '빙상연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는 전명규 교수가 증인 자격으로 출석했다. 국감 현장에서는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쇼트트랙 대표팀 내부에서 벌어졌던 심석희(21·한국체대) 폭행 사태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질의하는 손혜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에게 질의하고 있다.

▲ 질의하는 손혜원 의원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증인에게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혜원, 조재범 편지 공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빙상연맹에 질의하던 중 조재범 전 코치의 옥중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 손혜원, 조재범 편지 공개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빙상연맹에 질의하던 중 조재범 전 코치의 옥중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심석희를 폭행했던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의 옥중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전명규 교수가 '한체대 소속 선수인 심석희가 최민정(20·연세대) 등의 선수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조 전 코치를 압박했고, 결국 폭행까지 벌어졌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감 질의에서 전명규 교수는 폭행 혐의 등에 대해 부인했다.

그러나 이어 공개된 녹취록의 목소리가 본인이라고 인정했다. 녹취록에는 폭행 사건 이후 심석희 선수가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지만 전교수가 이를 막았다는 내용, 폭행 피해 선수들이 "정신 병원에 갈 만큼" 압박해야 한다는 발언 등이 담겨 있었다.
 
10년 넘게 뿌리 뽑지 못한 한체대 파벌

2006년부터 빙상계 파벌에 대한 문제는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때였다. 원래 쇼트트랙 대표팀은 총괄 감독의 지도 아래 남자 대표팀을 맡는 코치와 여자 대표팀을 맡는 코치 각 한 명씩을 두고 운영된다. 그러나 토리노 올림픽 당시 쇼트트랙 대표팀은 한체대와 비한체대로 나뉘어 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자대표팀의 에이스였던 안현수(현 빅토르안)가 여자 대표팀과 함께 훈련하는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토리노 올림픽에서 안현수는 3관왕에 올랐지만 이후에도 이런 문제는 계속됐다. 급기야 올림픽 직후 열렸던 세계선수권에서는 '다른 파벌의 선수를 넘어뜨리라'는 등의 코치의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12년 전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안현수와 진선유라는 대스타가 금메달 6개를 쓸어 담았지만, 한국 쇼트트랙 내부에서는 곪아 있던 파벌의 문제가 터진 대회로 남고 말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는 코치가 국가대표선발전에서 순위 담합을 주도하고 특정 선수에게 올림픽 출전 양보를 강요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당시 해당 선수들은 이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 12년간 여러 번 파벌 다툼 문제가 불거졌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결국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이어진 셈이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올해까지도 전명규 교수는 대표팀 코치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선수 압박을 지시했다. 그 여파로 조 전 코치가 심석희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한빙상경기연맹(아래 빙상연맹)은 "심 선수가 독감에 걸렸다"는 말로 덮으려고 했다가 오히려 일을 더욱 키우고 말았다. 당시만 해도 '심석희 폭행 파문'은 조 전 코치와 심 선수 사이에서만 벌어진 일로 알려졌지만, 대회 후 약 8개월이 흐른 지금 결국 이 문제에도 전명규 교수가 관여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전 교수의 외압 논란은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도 있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팀추월 경기는 마지막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선수의 기록이 기준이 되는 경기다. 그러나 올림픽 당시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는 노선영 선수가 뒤처진 상태에서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먼저 결승점을 통과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노선영 왕따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노선영 선수 역시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팀추월 남녀 대표팀이 12월 이후 한 차례도 함께 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와 합동 감사를 통해 전명규 교수가 한국체대 선수들만을 대상으로 별도 훈련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전 교수는 1990년대 초중반 대표팀 코치로 활약하면서 왕년의 스타 김동성을 비롯해 수많은 쇼트트랙 선수들을 배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파벌 다툼을 이끌어 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결국 오늘날까지 이어진 파벌 논란에 전명규 교수가 관여한 정황이 평창 올림픽 이후로도 계속 나오고 있다.
 
'빙상 손 뗀다'고 한 전 교수, 과연 빙상계 달라질 수 있을까

전 교수는 23일 국정감사 현장에서 "앞으로 빙상과 관련한 직을 맡지 않겠다"며 빙상 쪽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전 교수의 행보를 살펴보면 과연 그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4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봐도 그렇다. 전 교수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빙상연맹 부회장직을 맡았는데, 당시 남자 쇼트트랙은 올림픽에서 12년 만의 노메달에 그쳤다. 전 교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안현수(현 빅토르안)는 러시아로 귀화해 올림픽 3관왕에 올랐다. 그러면서 전명규 교수는 당시 성적 부진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러나 불과 약 3년 만에 슬쩍 다시 빙상연맹에 복귀해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관여했다는 정황이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됐다.
  
국감 출석한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있다.

▲ 국감 출석한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 전명규 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산업개발, 태권도진흥재단, 대한장애인체육회에 대한 국정감사에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최근 빙상연맹은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일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됐으며, 대한체육회 측은 빙상연맹을 위한 관리위원회를 만들고 9명의 위원 명단을 공개했다. 김영규 현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가 위원장을 맡았다. 그동안 빙상계에 쌓인 비리를 뿌리 뽑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요신문> 보도(2018년 7월 17일 "전명규의 '보이지 않는 손', 빙상연맹 또 움직일까")에 따르면 외부위원으로 선정된 인물들 중 일부가 전명규 교수의 최측근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빙상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돼도 전 교수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 교수가 빙상계를 떠나겠다고 밝혔지만 과거의 행적과 그동안의 일을 돌이켜 봤을 때 이 말을 과연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역대 최다 메달을 획득하며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가능성과 기적을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영광이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종목들을 관할하고 선수 권익에 힘써야할 연맹은 제 기능을 못하고 사실상 마비 상태라는 것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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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빙상연맹 전명규 평창동계올림픽 심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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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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