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궐' 김성훈 감독 영화 <창궐>의 김성훈 감독이 23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창궐' 김성훈 감독 영화 <창궐>의 김성훈 감독이 23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김성훈 감독은 지난해 남북 최초의 공조 수사를 다룬 영화 <공조>로 781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감독' 계보에 이름을 더했다. 화려한 액션물 안에 유려하게 담아낸 코믹함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든 만큼, 차기작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그가 택한 건 좀비물, 영화 <창궐>이었다. 

영화 <창궐>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야귀(夜鬼)가 창궐한 조선으로 돌아온 왕자 강림대군 이청(현빈 분)과, 혼란을 이용해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병조판서 김자준(장동건 분)의 혈투를 그린 작품이다.  

좀비물은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장르. 하지만 <창궐>은 배경으로 조선시대 궁궐을 택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장소와 시대. 그는 왜 이런 곳으로 좀비를 데려왔을까? 23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훈 감독은 "'사극'과 '좀비물'이라는, 이질적인 두 장르를 하나로 잘 연결할 수만 있다면 근사한 그림이 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시작은 조선시대가 배경인 크리처물을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근사한 조선 궁궐의 모습을 담고 싶었고, 저는 그게 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밤에 활동하는 귀신, '야귀'가 만들어진 거죠. 여기에 하나하나 살을 붙이다 보니 지금의 영화 <창궐>이 만들어졌어요.

사실 '사극'과 '좀비물'이라는 것이, 각각의 소재로 봤을 때 엄청나게 독특하진 않잖아요. 하지만 이 둘이 결합된다면 신선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보는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이 두 소재의 만남 자체가 이질감을 주면 어쩌나 고민도 많았죠. 내내 어려움이 많았던 영화였어요."


인조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이유 
  

 영화 <창궐>의 한 장면.

영화 <창궐>의 한 장면. ⓒ NEW

 
영화는 가상의 왕 이조(김의성 분)가 왕인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조는 인조를, 강림대군은 봉림대군을, 김자준은 김자점을 모티브로 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조선'이라는 배경을 택한 이상,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시대적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기본 베이스가 필요했어요. 그게 조선 중기, 인조 시대였죠. 조선 말기를 제외한다면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였다고 생각했거든요. 왜란과 호란을 겪었고, 여러 가치관과 제도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었잖아요. 그런 배경 속에서 '야귀'라는 혼돈이 더해진다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사람들은 어땠을까, 이런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어요."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존재 야귀는, 쉽게 '좀비'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부산행>의 좀비와는 조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빛이 사라지면 활동 능력을 잃는 <부산행>의 좀비와 달리, <창궐>의 야귀들은 햇볕을 견디지 못한다. 김성훈 감독은 "'밤에 활동하는 귀신'이라는 설정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뱀파이어, 좀비 등 여러 장르물 속 크리처의 특징을 조합했다"고 설명했다. '야귀'를 표현할 때 '좀비'라는 표현을 콕 집어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면서 말이다. 

<창궐>의 야귀와 <부산행>의 좀비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창궐>을 보며 <부산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직 우리 영화계에서 '좀비물'은 흔치 않은 장르고, 많은 대중이 <부산행>으로 좀비물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창작자에게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김성훈 감독은 "<부산행>의 성공과 흥행에 기대 <창궐>도 만들어질 수 있었다"며 웃었다.

"엄청난 흥행을 거뒀고,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장르를 멋지게 개척한 영화니 비교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야기를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두 작품은 이야기의 목표나 구성이 조금 달라요. 일반적인 좀비물은 좀비 바이러스에 의해 파괴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죠. 그런 의미에서 <창궐>은 좀비물보다는 재난 영화 포맷에 가까워요. 남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냐 없냐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생존' 그 자체가 아니라, '막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에 이 영화 연출을 맡게 되기도 했고요."  

현빈, 그리고 장동건 
  

 영화 <창궐> 스틸 사진.

영화 <창궐> 스틸 사진. ⓒ NEW

 
김성훈 감독은 전작 <공조>에 이어, <창궐>의 주인공으로 다시 한번 현빈을 택했다. 한 배우와 연달아 작품을 한다는 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강림대군 이청 역할에 현빈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일단 <공조> 작업하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확인은 안 해봤지만 현빈씨도 즐거웠다고 믿고요. (웃음) 영화라는 건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만드는 일이고, 그만큼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로 잘 뭉쳐지느냐가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책임감도 있고, 든든함도 있는 현빈씨와의 작업은 즐거운 일이었죠. 

무엇보다 <공조>로 친해지면서 알게 된 게, 현빈씨가 굉장히 유쾌하고 발랄하고 귀엽다는 거였어요. 이런 부분이 이청과 잘 어울렸고, 이런 부분을 관객분들께도 보여드리면 좋지 않을까 싶어 제안했죠. 현빈씨도 흔쾌히 응해줘서 기분 좋게 함께 했어요." 


김성훈 감독의 캐스팅에서 눈에 띄는 점은 '의외성'이다. <공조> 전까지 배우 현빈에게 '액션'을 상상한 이가 얼마나 될까. 이번 <창궐>도 마찬가지다. 권력욕과 야망이 들끓는 절대 악 김자준 역에, 영원한 미남 배우 장동건이라니. 김 감독은 "소의 눈망울을 가진 배우를 원했다"며 웃었다. 

"김자준이라는 인물은 현재 왕의 여러 문제점을 알고, 새 세상을 만들고 싶다, 개혁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돼요. 어찌 보면 시작은 순수하고 좋은 의도였던 거죠. 본질적으로는 착한 사람이지만, 점점 자기 욕망과 권력욕에 잠식되면서 변질되죠. 김자준을 '절대 악'이라고 표현한 건, 그 시작이 누가 봐도 합당하고 순수했기 때문에 스스로도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끝까지 가죠. '사실은 순수했어' 이런 걸 표현하기 위해 '소의 눈'을 가진 분을 원했는데, 장동건 선배랑 되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장동건 선배의 눈빛은 끝까지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였어요. <공조>에서 현빈씨를 캐스팅했던 것도, 전통적인 북한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깨고 싶다는 바람과 사연 있는 눈빛을 원했기 때문이었어요."
 


직설적인 메시지, 하지만 해석 경계하는 이유   
 

'창궐' 김성훈 감독 영화 <창궐>의 김성훈 감독이 23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창궐' 김성훈 감독 김성훈 감독은 "변화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이정민


"이게 나라냐",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됐나 싶다"는 대사, 궁궐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들고 달려온 백성들의 모습. 영화는 곳곳에 지난 국정 농단 사태와 촛불 시위를 떠올리게 만드는 설정과 대사를 담았다. 하지만 김성훈 감독은 앞선 기자간담회에서 "그저 오락물로 즐겨 달라"며 메시지에 대한 해석을 경계했다. 은유나 해석의 영역으로 남겨두기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택했음에도 말이다. 감독의 이런 답변이 허무했다는 소감을 전하자, 김성훈 감독은 "변화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것"이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내가 이러려고 왕이 됐나'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의 관용 어구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왕을 표현할 수 있는 분량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왕에게 더 이상 희망을 느낄 수 없다, 왕의 자격이 없는 사람이구나, 라는 걸 표현하기에 아주 좋은, 짧고 임팩트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게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는 조선이 싫고, 조선에 머물기 싫었던 왕자 이청을 붙잡아 세운 민초들이라는 거였어요. 이 사람들은 대단한 사명감이라기보다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당연히 지켜야 하니까 지키고 있는 거거든요. 이런 행위가 이청을 붙잡았고, 이청은 이들과 함께 하면서 변화하죠.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왼손에 든 횃불이 아니라, 오른손에 든 낫과 도끼였어요. 이청과 백성들은 행위로서 만나게 되는 거예요. 이청을 붙잡아 세운 것도, 이청이 보여준 것도, 그에 응답한 것도 결국은 각자의 실행이에요. 그게 제가 이 영화에 표현하고 싶었던 판타지였어요. 우리를 구원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변함으로서 타인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 청나라에서 온 히어로를 기다린 게 아니라, 백성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만든 희망... <창궐>은 내가 변하면 전부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분 좋게 극장을 나가시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영화예요."

 

'창궐' 김성훈 감독 영화 <창궐>의 김성훈 감독이 23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창궐' 김성훈 감독 <창궐>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독일·호주·홍콩 등 4대륙 19개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 이정민

 
오는 25일 개봉을 앞둔 <창궐>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독일·호주·홍콩 등 4대륙 19개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해외 관객들은 <창궐>을 보며 인조 시대도, 촛불 정국도 떠올리지 않고, 오롯이 '오락용'으로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김성훈 감독은 국내외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기대된다고 했다.  

"우선 <창궐>은 야귀 역할을 해주신 분들을 포함해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좋은 영화예요.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경험일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조선에 나타난 야귀 떼를 시원하게 물리치는, 한 폭의 시원한 동양화 같은 액션을 보신다면 통쾌함과 즐거움도 느끼실 거예요. 그것만 즐겨주셔도, 극장에 앉아 계시는 2시간 1분이 아깝지 않을 겁니다. 즐겁고 유쾌하게, 기분 좋게 나갈 수 있는 영화로, 잘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주혁, 그리고 김태우... "그립고, 고맙다"

고 김주혁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공조>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김주혁은 <창궐> 소원세자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총 3회차의 분량 중 1회차 촬영만을 마친 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고, 그 자리는 그의 벗인 김태우가 대신했다. 제작진은 엔딩 크레디트에 김주혁과 김태우의 이름을 나란히 적는 것으로 애도의 마음을 전했다. 

"그동안 삶과 죽음을 직렬 구조로 생각해왔어요. 영화 스토리처럼, 쭉 살다 보면 그 끝에 죽음이 있다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구나, 병렬이구나, 언제든 삶이 죽음으로 넘어갈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죠. 40대 중반에,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도록 가르쳐 준 것도 형인 거죠. <공조>로 처음 만났으니 그리 오래된 인연도 아닌데, 자주 보고 싶고, 그리워요.  형이 멋지게 만들라던 <창궐>을 끝내서일 수도 있고, 형의 기일이 다가와서일 수도 있고요." 

김주혁을 향한 그리움과 애틋한 마음을 전하던 감독은, 김주혁을 대신해 영화를 채워준 김태우에 대한 고마움으로 말을 이었다. 

"주혁이 형에 대한 마음은 제 감정이고 제 이야기예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운 이유는, 결국 영화를 잘 채워주신 김태우 선배님 때문이에요.

선배님이 안 계셨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세트는 지어져 있고, 소원세자 장면을 찍어야 하는 날짜인데 제가 아무것도 못해서 결국 세트를 없앴어요. 하지만 제작진 누구도 제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 못했죠. 저도 방법이 없었어요. 그때 김태우 선배님이 도와주고 싶다는 연락을 해주셨어요. 그제야 저도 '그래 해야지' 하고 정신 차릴 수 있었거든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쉽지 않은 일이셨을 텐데... 주혁이 형에 대한 그리움만큼, 김태우 선배님에 대한 고마움도 커요. 

전 이 모든 일이 기적 같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라는 사람이 한국에서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거든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오늘까지 왔고, 주혁이 형을 통해 사람의 소중함, 살아있음의 소중함을 깨달았어요." 

 

창궐 김성훈 현빈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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