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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사고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공개했다. 학생들은 교과 성적과 자기소개서를 들고 경쟁의 기로에 선다.
 민사고가 자기소개서 항목을 공개했다. 학생들은 교과 성적과 자기소개서를 들고 경쟁의 기로에 선다.
ⓒ 김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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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시즌... 정신없는 국어 교사들 

고3 교실은 2학기가 시작되는 8월 중순부터 9월 초까지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아이들과 교사 모두 자기소개서와 교사 추천서 등을 챙기느라 정작 해야 할 교과 수업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9월 중순 즈음에 대학마다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마감되기 때문이다.

아이들마다 자신의 자기소개서를 손봐달라고 교무실을 부리나케 찾아오는 시즌이기도 하다. 대개 고3 국어 교사들의 몫이지만, 그렇다고 국어 교사들이 많게는 백 명도 넘는 아이들의 그것을 다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이 교과나 담임 여부와 상관없이 교사들을 찾는 이유다.

말 그대로 자신을 소개하는 글일 뿐인데도, 아이들은 자기소개서 쓰는 걸 무척이나 버거워한다. 지난 고등학교 시절을 되새기며 담담하게 쓰면 되는데, 머리와 가슴 속 경험들을 글로 옮기는 걸 무척 힘들어한다. 한 아이는 그냥 글이 아닌 말로 녹음해서 제출하라면 좋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글쓰기의 중요성은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강조되고 있지만, 정작 학교에선 선언적 의미일 뿐 별다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저 국어과 교사의 오랜 잡무들 중 하나로 치부될 정도다. 정시 비중이 어떻게 바뀌든 선다형 수능이 존재하는 한 고등학교에서 글쓰기 교육은 언감생심이다.

사실상 EBS 수능 교재가 교과서를 대신하는 현실에서 글쓰기 교육이 끼어들 틈은 없다. 아울러 기존 교사들의 역량 부족 탓도 크다. 글쓰기라면 교사들도 두려워한다. 갓 부임해 온 젊은 동료교사조차 글쓰기 역량보다 단순 암기능력과 선다형 문항에 대한 감각이 임용시험의 당락을 결정한다고 말할 지경인데, 나이 든 교사들임에랴.

사실 대학입시에서 많은 아이들이 수능 위주의 정시를 바라는 건, 학생부 종합전형(학종) 등 수시보다 공정하다는 인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정시가 입시를 준비하는 데 훨씬 수월하다는 이유를 대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 다른 걱정 없이 3년 동안 오로지 문제집만 반복적으로 풀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 어려운 미적분과 기하벡터 문제도 척척 풀어내면서, 자기소개서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냐?"
"수학 문제야 계속 풀다보면 요령이 생겨 답이 보이지만, 글 쓰는 건 정해진 공식도 없고 유형을 파악하기 힘들잖아요. 분명한 정답이 없는 건 질색이에요."

아이들의 '황당한' 답변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이미 십여 년 동안 문제풀이에만 익숙해진 탓에, 그들은 선다형 문제의 정답을 고르는 것만이 공부인 줄로 안다.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공부하라'는 말에, 초등학생도 고등학생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가방이나 책상에서 참고서나 문제집을 꺼낸다.

혹, 그 말에 장난감 블록이나 만화책, 소설책 등을 꺼낸다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적어도 대학입시 때까지는 공부란 문제집을 푸는 것이고, 성취도는 오로지 계량화된 시험 점수로만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도 그렇게 배웠고, 그들이 자녀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불문율이다.

여러 교사들의 노력이 더해진 '합작품'

아이들의 엉성하기 짝이 없는 자기소개서를 읽노라면, 교사로서 대신 써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빨간 펜으로 틀린 표현을 고치고 문맥을 다듬다보면, 마치 교사의 자기소개서인 양 처음과는 아예 다른 느낌의 글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자기소개서가 '자소설'이 되는 과정이 이럴 것이다.

대학에서 굳이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입시에 반영하겠다면, 지금의 방식으론 안 된다. 일정한 기한을 정해두고 인터넷에 입력하게 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필연적으로 '자소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장담하건대, 교사든, 부모든, 타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순수한' 자기소개서는 없다고 보면 된다.

하긴 대학에서도 자기소개서가 대부분 과장된 내용을 담고 있다며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마다 자기소개서를 '참고'만 할 뿐 '반영'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입시에 목매단 수험생 처지에서 '참고'와 '반영'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실제로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지원했는데 외려 내신 성적이 낮은 아이가 합격한 경우를 왕왕 접하는데, 굳이 이유를 찾으려다보니 자기소개서가 마음에 걸리는 거다. 그런 경험들이 누적되면서 '참고'만 한다는 말에도 온 힘을 쏟게 되는 것이다. 한 아이는 지난 한 달 내내 자기소개서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지난 달 발표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에서도 자기소개서는 용케 살아남았다. 글자 수를 축소한다지만, 그 정도로 아이들과 교사의 부담이 줄어들 것 같진 않다. 글을 '짧고 굵게' 쓰는 게 더 어려운 일이고 보면, 자기소개서를 감쪽같이 대필해주는 곳이 더 활개를 칠지도 모를 일이다.

해마다 겪는 일이라 대수로울 건 없지만, 자기소개서는 본의 아니게 대학입시 하나에 고등학교 교육이 황폐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전락했다. 당장 어떻게든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아이들과,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부모의 욕망이 '자소설'의 숙주다. 제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명문대에 합격시키려는 교사들의 바람 또한 자기소개서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자기소개서는 상위권 아이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옵션으로 변질됐다. 특히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최상위권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는 여러 교사들의 정성과 노력이 더해진 '합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계량화된 시험 점수로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의 재능과 열정을 반영하고자 도입된 학종이 상위권 아이들을 위한 전형일 뿐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이유다.

대학입시에서 학종을 폐지하고 수능 위주의 정시로 일원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자소설'에 대한 자조에다 생활기록부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며 학교의 내신 성적마저도 믿을 수 없다는 주장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최근 일선 학교의 시험지 유출과 성적 조작 사건이 언론에 연일 오르내리면서, 학종 반대 여론이 더욱 확산되는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학종을 폐지하고, 수능 위주로 대학입시를 개편한다는 건 명백한 퇴행이다. 과거 학종을 도입하고 수능 비중을 낮춘 건 문제풀이 수업으로 점철된 교실을 바꿔보려는 고육지책이었다.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재의 수능 체제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이기도 했다.

수능 점수가 높은 아이가 인성이 좋고 유능한 인재라고 등치시킬 순 없다. 우리 교육의 목표가 공동체에 기여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수능이 그 역할에 충실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점수와 등급으로 확연해지는 수능이 공정할지는 몰라도 교육의 본령과는 동떨어져있다는 이야기다.

기실, 인성과 창의성을 선다형 문항의 수능으로 판별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 백 보 양보해서, 공정할지는 몰라도, 교육적이지는 않다. 오로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수십 만 아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상황에서, 전가의 보도인 양 공정함만 따져 묻는 게 한가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글쓰기의 중요성 깨닫게 해 

요컨대, 학종이 밉다고 수능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요즘 아이들을 두고 '새로운 인류'라고 부르는 마당에, 적어도 미래세대를 길러내는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구관이 명관'일 수 없다. 어쩌면 학종이냐 수능이냐가 아니라, 대학입시가 교육의 본령인 양 여기는 천박한 인식을 버리지 못하는 한 백년하청일지도 모른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자기소개서는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자소설'로 가는 길만 차단할 수 있다면, 자기소개서를 쓴다는 건 학교교육의 고갱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역량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이니만큼 글자 수를 축소할 게 아니라 늘리는 게 더 교육적일 수 있다.

사족 하나. '학종은 음서제고 수능은 과거제'라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 듯하다. '불공정한 학종과 공정한 수능'이라는 단순명료한 비유다. 인터넷에 도배되다시피 하더니, 요즘 들어서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과연 그렇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일찍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인 성호 이익은 과거제를 노비제, 게으름, 미신 등과 함께 조선 사회를 무너뜨릴 '좀(蠹)'으로 규정했다. 당시 온갖 불법과 편법이 횡행하는 등 과거제가 문란해졌다는 기록이 곳곳에서 보인다. 거친 비유일지언정, 과거제도 당대의 사회적 환경과 운영에 따라 얼마든지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제든 대학입시든 공정한 시험제도라는 건 애초 환상에 불과하다. 학벌구조와 승자독식의 시스템을 손보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동서고금을 통한 역사의 교훈이다. 고3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를 첨삭지도 하다 말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여기까지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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