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사망했다. 건조한 이 표현 이면엔 많은 사람들의 비통함이 생략돼 있다. 남겨진 산 사람들은 죽음을 이해할 순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고,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애도하면서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야 한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 CGV에서 언론에 선공개 된 영화 <살아남은 아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진정한 애도에 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제목처럼 영화는 자신의 아들이 익사하면서까지 구해낸 또래 친구 기현(성유빈)을 바라보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밀도 높게 그렸다.

특별한 말 걸기

 영화 <살아남은 아이> 관련 사진.

영화 <살아남은 아이> 의 한 장면. ⓒ 아토


아들의 흔적이 보이기에 내심 반가우면서도 목숨과 맞바꾼 남의 자식이라는 양가감정이 성철(최무성)과 미숙(김여진)에게 존재한다. 영화 초반은 기현에게 노골적으로 적대심을 드러내는 미숙과 그런 아내 몰래 기현을 자신의 일터로 출근시키며 기술을 가르치는 성철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부부,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호의를 불안한 기색으로 받아들이는 기현 사이의 긴장감만이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또 다른 진실을 내내 압축시키며 세 인물 사이에서 묘하게 뒤바뀌는 감정의 진폭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배우 김여진이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안 하고 싶었다. 살아남은 아이가 있으면 못 살아남은 아이가 있으니까"라며 극의 무거운 분위기를 걱정했듯, 영화의 소재 자체가 무거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살아남은 아이>의 진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한 장면을 위해 성철과 미숙, 기현은 저마다 괴로워하거나 때론 웃고 웃으며 달려왔다.

연출을 맡은 신동석 감독의 첫 장편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지만 죽음이 생각보다 일상적 일이더라. 죽음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있고 저 역시도 그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라며 신 감독은 "그 전의 삶과 후의 삶이 달라졌다"라고 언론시사회에서 고백했다. <살아남은 아이>는 죽음이라는 화두를 파고든 감독의 실제 모습이 일부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죽음과 그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을 떠올리는 방식은 매우 섬세하다. 마치 큰 슬픔을 겪은 사람에게 섣불리 위로의 말을 던지지 않고 끈기를 갖고 마음을 다해 바라봐주는 느낌이다. 이 때문에 마지막 장면이 크게 슬프거나 우울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배우 김여진은 자신의 역할을 두고 "큰 도전이었다. 글이나 기사가 아닌 연기로서 어떤 것으로도 위로되지 않는 슬픔의 전달자 역을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를 포함해 최무성, 성유빈은 각각 자신의 캐릭터가 품고 있는 특별한 애도감을 온몸으로 표현해내려 했다.

어떤 숙제들

 영화 <살아남은 아이> 관련 사진.

영화 <살아남은 아이> 촬영장 모습. 신동식 감독과 배우들이 모니터 화면을 보고 있다. ⓒ 아토


지난 부산영화제에 공개됐을 당시처럼 언론시사회에서도 이 영화를 세월호 참사에 빗댄 질문이 이어졌다. 충분히 이미지적으로 연상될 수는 있지만, 감독과 배우 이하 제작진들은 그 지점을 가장 경계했음을 이미 밝혔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렇게 생각을 못 하고 썼다. 세월호 참사 외에도 우리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억울하게 놓인 적이 많았다. 그런 일들을 볼 때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하고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분개했었는데 그런 마음이 아마도 이 시나리오의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를 쓴 뒤 지인들과 배우들도 세월호 말씀을 하셔서 정말 조심하며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이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아닌 작은 위로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김여진님도 그 말씀을 해주셨다. 성철과 미숙, 이 부부가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대상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저 역시 그 말에 더욱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다." (신동석 감독)


감독과 배우의 말처럼 쉽게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이라면 함께 애도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다른 의미로 애도의 다양성을 보이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애도의 진정성에 있어서는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이 영화로 우리 사회의 성숙한 애도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만하다.
 영화 <살아남은 아이> 관련 사진.

영화 <살아남은 아이> 의 한 장면. ⓒ 아토


한 줄 평 : '살아남은 아이', 올해 살아남아야 할 영화
평점 : ★★★★(4/5)

영화 <살아남은 아이> 관련 정보

연출 : 신동석
출연 : 최무성, 김여진, 성유빈
제작 : 아토ATO
배급 : CGV아트하우스, 엣나인필름
해외배급 : 화인컷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3분
개봉 : 2018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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