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때가 있다. 감독의 엔트리 또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에서 자만이 느껴질 때.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패배를 기록했다. 17일 인도네시아 반둥의 시잘락하루팟 스타디움에서 열린 말레이시아와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E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대한민국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인도네시아 23세 이하 축구대표팀에게 패배를 기록했다. 15일 경기 이후 2일 만에 경기를 치른다는 점에서 로테이션 가동이 예상되었다. 문제는 그 로테이션 대상에 골키퍼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U-23 남자대표팀 와일드 카드 황의조

U-23 남자대표팀 와일드 카드 황의조 ⓒ ⓒ 대한축구협회


황의조가 넣고 조현우가 막고... 공식 깨지자 문제 발생하다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감바 오사카의 공격수 황의조의 발탁이었다. U-23 대표팀 감독인 '김학범 감독의 성남 시절 제자인 황의조가 인맥으로 발탁되었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 강현무와 송범근이라는 각각 포항과 전북이라는 K리그 상위권 팀에서 주전으로 뛰는 골키퍼가 두 명이나 있음에도 월드컵 스타 조현우를 굳이 발탁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따랐다. 이에 대한 김학범 감독의 설명은 명확했다.

한국이 아시아 수준의 무대에서 발목을 잡혀 금메달을 못 땄던 이유는 골을 못 넣어서였지 많이 먹혀서 그랬던 게 아니다. 그러니 최전방에서 확실하게 골을 넣어줄 공격수가 필요하다. 또 상대가 어쩌다 한두 번 역습 기회가 생기는데 이때 확실하게 막아줄 키퍼가 필요하다. 이런 그의 발언은 첫 경기에서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황의조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골을 넣어줄 수 있는 공격수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증명하였고 조현우는 수비의 핵심 김민재의 교체 이후 수비에 균열이 생기자 발생한 상대의 역습을 막아내며 클린시트로 경기를 마무리하였다.

말레이시아전에서 김학범 감독은 로테이션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와일드 카드로 기용한 주전 수문장 조현우 대신 전북의 주전 키퍼 송범근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 선택은 2실점을 가져왔다. 특히 2번째 골 같은 경우에는 판단에 있어 최악의 미스를 저지르면서 약체 말레이시아에게 2실점이나 허용하고 말았다. 황의조의 경우 스트라이커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골을 성공시키며 제몫을 해주었으나 송범근은 패배의 빌미를 자초하고 말았다.

아시안 게임의 경우 1분이라도 경기를 뛰어야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 김학범 감독은 골키퍼라는 특수한 포지션 때문에 송범근을 출전시킬 타이밍을 재야만 했고 조별리그 2번째 약체 말레이시아와의 경기를 택했다. 선택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송범근은 경기력으로 감독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꿔놓았다.

 U-23 남자대표팀 선수단

U-23 남자대표팀 선수단 ⓒ ⓒ 대한축구협회


황희찬, 김민재, 김정민... 기대했던 황금세대의 아쉬움

이번 U-23 아시안 게임 대표팀의 경우 꽤나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다. 황희찬과 이승우는 월드컵 멤버로 뽑힐 만큼 기량을 인정받았고 김민재는 부상으로 월드컵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성인 국가대표팀 핵심 수비수이다. 황현수는 강팀 FC서울의 주전 수비수이며 김정민은 황희찬과 같은 찰스부르크로 이적한 후 2부팀인 리퍼링에서 뛰는 선수로 제2의 기성용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김진야, 나상호, 이진현 등 각자 소속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로 팀을 구성하면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황현수, 김진야, 김정민, 황희찬 등 기대주들이 좋지 못한 경기력을 선보이면서 실망을 안겨주었다. 특히 황희찬의 경우 소속팀 찰스부르크의 주전이라는 점, 지난 시즌 팀을 유로파리그 4강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소속팀에서 골을 넣고 있다는 점, 황소 같은 저돌적인 움직임이 인상적이라는 점에서 아시아 무대에서는 좋은 모습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첫 경기부터 프리킥 골을 제외하면 찬스를 많이 놓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번 말레이시아 전에서도 좋지 못한 모습을 선보이며 골 결정력 문제를 드러냈다.

이는 황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FC서울의 주전수비수이지만 가끔 집중력이 부족한 플레이를 선보여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번 세대의 경우 김봉길 감독이 이끌 당시 2018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부진한 경기력과 4강 탈락으로 비판을 받았다. 김학범 감독은 당시 멤버에서 많은 선수들을 바꾸었으나 이번 말레이시아 전에서 부진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새로운 황금세대에 대해 기대감을 품었던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U-23 남자대표팀 김학범 감독

U-23 남자대표팀 김학범 감독 ⓒ ⓒ 대한축구협회


김학범 감독의 전술에 대한 아쉬움

김학범 감독이 첫 경기였던 바레인 전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가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바레인은 10백을 불사하는 수비축구를 선택하지 않았고 허약한 수비라인은 단조로운 공격 패턴에도 허무하게 뚫렸다. 첫 경기를 너무 쉽게 이겼기 때문일까. 두 번째 경기에서도 김학범 감독은 공격적인 선택을 하였고 이는 10백을 택한 말레이시아에게 뒷공간을 허락하였다. 김학범 감독은 선수 엔트리를 발표하면서 이번 대회의 전술로 공격적인 쓰리백을 선보이겠다 말하였다. 그는 양쪽 윙백을 윙어처럼 쓰는 전략을 선보였는데 이번 말레이시아 전의 경우 수비의 핵심 김민재 역시 포어 리베로처럼 기용되었다.

문제는 이런 공격적인 전술에서 10백을 뚫어낼 세밀함이 엿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황희찬은 투박했고 김정민을 비롯한 미드필더진의 패스는 부정확했다. 크로스 역시 좋지 못했다. 황의조가 전방에 고립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였다. 투박하고 부정확한 플레이로 상대에게 허락된 역습 상황에서 김민재의 전진으로 인해 황현수에게 수비 부담이 가중되었고 확실한 선방이 가능한 조현우 대신 출전한 송범근은 허무하게 실점을 허용했다. 김학범 감독은 수비에 충실하지 못했는데 이는 한국이 전부터 아시아권 약체 국가들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이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했던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의 경우 고(故) 이광종 감독의 축구 스타일이 큰 힘을 발휘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공격력은 답답하지만 기본적으로 수비를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경기를 진행하기에 토너먼트 같이 승리가 중요한 대회에서는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상대를 약체라 여기고 지나치게 공격을 강조하는 축구는 골이 들어가지 않을시 역습 한 방에 무너질 확률이 높다. 자만이 느껴지는 세밀하지 못한 공격 위주의 전술이 결국 말레이시아 전 패배를 가져오면서 토너먼트를 어렵게 만들었다.

 U-23 남자대표팀

U-23 남자대표팀 ⓒ ⓒ 대한축구협회


손흥민과 이승우의 활용, 전술적으로 강해질 대표팀

이번 말레이시아전의 아쉬움 중 하나는 손흥민 그리고 이승우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손흥민은 압도적인 스피드로 뒷공간을 파고드는 선수이기에 10백으로 나선 말레이시아 전에 해답으로 어울리지 않는 선수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장점 중 하나는 정확한 슈팅 능력이다. 빈틈이 생기면 확실하게 한 방을 해줄 수 있는 선수다. 이승우의 경우 저돌적인 움직임과 함께 공격의 세밀함을 더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여기에 나상호 역시 공격적인 유연함을 더해줄 수 있는 카드다.

아직 김학범 감독은 손흥민과 이승우 카드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지 않고 있다. 조별예선이라는 점에서 체력안배에 신경 쓰고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골 결정력을 증명한 황의조에 손흥민, 공격적인 유연함을 더해줄 이승우와 나상호가 조합을 이룬다면 상대의 10백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 김학범 감독의 학범슨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전술적으로 유연한 감독이다. 한 번 실패를 경험한 만큼 똑같은 전술적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또 말레이시아 전의 경우 골키퍼의 문제도 패배에 크게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조현우의 투입은 수비적인 안정감을 더해줄 것으로 생각한다. 혼자 힘으로 1~2골은 막아낼 수 있는 키퍼이기에 상대의 몇 안 되는 공격기회를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다. 여러모로 말레이시아 전은 안 그래도 성인 국가대표팀 외국인 감독에 대한 기대에 반하는 벤투 감독의 선임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은 한국 축구를 더 어둡게 만들었다. 수없이 반복되었던 전술과 정신적인 자만이 결국 패배로 연결되는 과정이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토너먼트에서 중요한 건 결국 승리다. 기회가 있을 때 확실하게 넣어주고 위기가 왔을 때 확실하게 막아야만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가 약체라는 자만과 어쨌든 이기겠지라는 낙관은 버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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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브런치, 블로그와 루나글로벌스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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