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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라 하면 우리는 '예술을 만드는 사람'을 떠올린다. 원고지를 빼곡하게 채운 소설, 질감이 살아있는 유화, 필체가 살아있는 악보 같은 것들이 '예술'이고 예술가는 그 예술을 만드는 사람일 것 같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생이 예술이지' 혹은 '참 예술적으로 살다 갔지'라고 평하기도 한다. 우리가 말하는 예술가란 '천재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람'인가 혹은 '예술적인 삶을 살다 간 사람'일까?

황현산 작가 산문집 <사소한 부탁>을 읽으며 나는 그의 생각이 참으로 '일상적인 예술'이라 느꼈다. 황현산 작가는 문학평론가로 <우물에서 하늘보기>와 <밤이 선생이다>와 같은 작품을 썼으며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보들레르의 <악의 꽃> 같은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의 번역과 비평은 그 세계의 밖에 있는 내가 평하기에는 주제 넘다. 다만 그의 산문집을 보며 나는 예술과 밥벌이 사이에서의 줄타기를, 현실과 이상의 조율을, 두 발을 땅에 꽉 붙들고 서 있는 이의 노하우를 배웠다.

밤 산책을 하며 무심히 던지는 것 같은 그의 이야기들은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철학서처럼 난해하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에서 거대담론을 끌어와 결국 체제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그가 매일 부딪히는 일상을 바탕으로 했으되 철마다 재래시장을 돌며 상인들과 악수를 하는 정치인들처럼 가식적이지 않았다. 현실 정치에 말을 덧붙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차분히 분노하는 법을 배웠다.

 황현산 <사소한 부탁>
 황현산 <사소한 부탁>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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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탁>에 나오는 산문들 중 '진정성의 정치', '악마의 존재방식', '어느 히피의 자연과 유병언의 자연', '어떤 복잡성의 이론'에서는 세월호 사건, 쌍용자동차 사태, 용산참사 등을 비롯한 한국 정치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대통령은 그동안 통일 '대박'을, '원수' 규제를, 해경 '해체'를 말하였다. 대통령은 감정의 동의를 얻기보다는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 파도에는 격렬한 출렁임이 있을 뿐 깊이가 없다. '진정성'이 어떻게 정의되건 그것은 한 인간이 제 마음 깊은 자리에서 끌어낸 생각으로 자신을 넘어서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에만 확보된다. (2014.5.31.)" p.76

"물론 나는 악마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악마만이 저지를 일을 이 땅의 사람들이 저질렀다는 사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악마의 처사였다면 악마의 연구로 끝날 텐데, 그것이 우리의 죄이니 우리는 이제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나 자신을 용서하지 말고 리본을 달건 촛불을 들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 p.72

현실 정치에 대해 말을 아끼지 않는 것과 흘러넘치는 분노를 정제하지 못하고 담는 것은 다르다. 그의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그의 말대로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었을까?

일상 속의 철학

얼마 전 마트에서 '동물복지계란'을 사다가 '복지'라는 말에 아연한 적이 있었다. 물론 '닭장'만 한 곳에 갇혀 24시간 밝은 불 아내 끊임없이 알을 낳는 닭의 그것을 먹고 싶진 않다. 하지만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에게 '복지'라는 말은 또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고 채식에 실패한 경험이 생각나며 스스로에 대한 환멸이 일었다. 먹지도, 안 먹지도 못하는 이중성의 인간! 그때 황현산 작가의 이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축제의 음식을 먹는 자는 마땅히 두 손을 적셔야 한다." p. 125

<사소한 부탁>에 실린 산문들 중에는 이렇게 무심히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철학을 잡아내는 글도 보였다. 예술적 예민함이 아니고서야 너무 익숙해져 눈치채지 못하고 스쳐 갔을 이야기들. '오리찜 먹는 법'에서 황현산 작가는 만주 어디에선가 먹는다는 오리찜 요리법에 대해 말하며 우리가 먹는 음식에서 우리를 소외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논한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자신이 살해한 생명들과 자기가 먹는 음식 사이에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려는 우리가 두렵다."p. 125
 
 황현산 <사소한 부탁>
 황현산 <사소한 부탁>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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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산문집의 또 다른 특성은 현실을 단단히 붙든 예술이라는 점이다. 예술가라 하면 이상적인 사람, 혹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 제 밥그릇 못 챙겨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밥벌이의 귀중함을 아는 것 같다. 세상이 선악으로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든지 풀어가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 노력이 우리의 인간성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듯하다.

'예술가의 취업' 편에서 작가는 예술가을 괴롭히는 것은 1만 시간을 연습해야 하는 고통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주변 사람에게 설득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예술도 밥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니 밥벌이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직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중략) 정장을 하고 4대 보험 직장에 출근하는 것만이 취업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다. (2013. 12. 7)" p.52

언어가 우리의 사고다

<밤이 선생이다>를 비롯해 <사소한 부탁>을 읽다 보면 작가가 참으로 언어학 전공자답다는 생각이 든다. 황현산 작가는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맥만 짚어도 환자의 아픈 곳을 알아내는 노련한 의사처럼 '언어'에 담긴 사고를 척척 풀어낸다. ''여성혐오'라는 말의 번역론'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 낱말로 붙여 써야 할 '여성혐오'라는 말은 영어의 '미소지니'나 프랑스어의 '미조지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중략) 불행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그 불행을 책임져야 할 사람을 찾아내고 싶어한다. 탓할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불행은 지금 눈앞에 닥친 불행보다도 더 고통스럽다. (중략)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잘나가는 여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한다. 그리고는 다시 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여성혐오의 혐의를 둘러써야 하느냐고 묻는다. 물론 그 혐오는 혐오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설명을 거치고 나면 말은 얼마나 힘을 잃는가. 여전히 바뀌지 않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직장의 여성 동료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심지어는 만나지도 못할 여자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실상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한다." p.180

'방언과 표준어의 변증법'에서도 언어에 담겨있는 우리의 편협한 사고를 지적한다. 방언과 연결되어 있는 은밀한 정서가 표준어의 틀 안에서 표준화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와 방언을 포섭하지 않는 표준어의 규정에 대한 폭력성에 대해 말한다.
"토론은 고백을 끌어안아야 토론이고 표준어는 방언을 포섭해야 표준어다. 강원도에 가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곤드레밥을 고려엉겅퀴밥이라고 부를 수 없듯이, 곤반불레된장국을 별꽃된장국이라고 고쳐말할 수는 없다. (중략) 공공의 언어는 게으를 수 없다. (2013. 10.12)"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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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시대의 예술가들이 (일부 혜택받은 이들을 제외한다면) 위대한 것은 그들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는 것뿐 아니라 그 아름다움을 위해 일상을 버티어 내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우리는 누구나 예술적으로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작은 고민에도 세상의 철학은 담겨있고 사소한 결정에도 우리는 위대해질 수 있다. 
"한 사회에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있다. 한 인간의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린 슬픔은 이 세상의 역사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일이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다 읽었을 때는 새벽 2시였다. 웅웅거리는 냉장고 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책의 아름다움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잠시 한숨을 돌리는 그 순간. 책 속에 푹 젖었다가 물을 털며 나오는 그 순간에 있다. 공중으로 떠오른 문장들이 차분히 머릿속으로 가라앉는다. 황현산 작가는 별세했지만 <사소한 부탁>은 그의 유작으로 남아 여전히 독자에게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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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