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 음악을 맡은 호소노 하루오미 감독.

영화 <어느 가족> 음악을 맡은 호소노 하루오미 감독. ⓒ 호소노 하루오미


언제나 그랬듯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의 대가 그룹인 곤티티(Gontiti), 2000년대를 대표하던 록밴드 쿠루리(Quruli), 감미로운 일렉트로니카를 선보여왔던 카츠히코 마에다(프로젝트 팀인 World's End Girlfriend로 잘 알려져 있음) 등이 각각의 작품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현재 상영 중인 <어느 가족>에는 말 그대로 명장이 참여했다. 1970년대 록밴드 해피앤드를 통해 일본 록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호소노 하루오미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을 두고 심사위원장 케이트 블란쳇은 "평소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 속에서 간과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를 상기시킨다"며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이 조화롭게 삽입되어 어시스트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서면을 통해 호소노 하루오미 감독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 대본을 쓸 때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을 들으며 작업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 대본을 쓸 때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을 들으며 작업했다. ⓒ 연합뉴스


바람과 같은 음악 

베이시스트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후 사카모토 류이치,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일렉트로니카 그룹인 YMO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은하철도의 밤>,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메종 드 히미코> 등은 그의 음악을 통해 생기를 얻은 대표적 작품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전부터 호소노 하루오미와의 작업을 희망하며 존경과 지지를 보내고 있었고, 그 바람이 이번에 성사됐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이번 영화의 각본을 쓸 때부터 호소노 하루오미의 음악을 들었고,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했을 때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각본을 완성한 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각 신마다 호소노 하루오미의 예전 음악들을 예시로 표시해 세심하게 소통했다는 후문이다.

"음악을 의뢰받았을 때는 <만비키 가족>(일본 원제목)이라는 제목도 아닌 가제가 붙은 상태였다. 처음 만났을 때 감독님은 제게 '작은 편성', 그리고 '바람과 같은' 음악을 제안했다. 전부터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음악이 필요한 장면을 매우 적게 줄여 주었기에 제한된 기간 내에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각 신에는 일종의 이미지 제안 식으로 음악이 삽입돼 있었는데 제가 예전에 참여했던 작품의 음악이었다. 그 덕에 (영화의) 이미지를 파악하기가 수월했다.

영화가 완성됐을 때 고레에다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미지 음악을 먼저 삽입해서 제안하는 일의 장단점에 대해서 감독님이 항상 고민하고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작곡가로서도 괴로운 부분이기도 한데, 이번에는 (편집본에) 제 음악이 들어가 있었고, 덕분에 원활히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어느 가족> 스틸컷

<어느 가족> 스틸컷 ⓒ 티캐스트배급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가족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왔음을 호소노 하루오미 감독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어느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받은 직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음악이 영화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 있다. <어느 가족>과 음악의 관계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선율보다는 울림이 영화를 더 잘 보조해준다"며 말을 이었다.

"영화의 가편집본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생활감이 강했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결과, 이야기에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고 일종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사실 제 음악 활동의 기본은 선율과 리듬을 중심으로 한 팝 음악이다. 그렇기에 직업적인 영화음악 작가는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팝 음악엔 개성이 강하게 나오는 게 당연한데 현대 영화에선 음악가의 주장이 지나치게 강하면 (영화를) 방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선율보다는 울림이 영화를 더 잘 뒷받침해준다. 그 점에 주의하면서 음악을 만들었다. 그렇게 접근한 결과 공기 진동이 잘 드러나는 나일론 현의 기타를 많이 사용했다. 소리를 길게 늘이고 싶을 땐 만돌린 등을 사용한 트레몰로 기법(연속적으로 음을 여러 번 떨리듯 반복해서 들려주는 기법)이 최적이다."


가족의 본질을 발견하다

호소노 하루오미 감독은 <어느 가족>에서 일종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배우 릴리 프랭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슈퍼마켓 절도 장면은 릴리 프랭키의 분위기에 맞춰 원래 맘보 느낌의 음악을 넣었으나, 스스로 곡을 파기해 버리기도 했다.

"릴리 프랭키씨의 독특한 존재감을 생각하며 밝은 느낌의 음악을 준비했었는데 그 맘보 느낌의 음악이 너무 나간 것 같았다. 그래서 파기했고, 이후 이야기의 핵심인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 감성에 맞춰 기타 선율의 음악을 만들었다. 감독님이 마음에 들어하셨다. (영화 중반 등장인물들이) 열차를 타고 바다로 가는 장면이 있는데 첫 장면에서 파기한 곡과 같은 맘보 느낌의 음악을 그때 살려서 넣었다."

가족이 아닌 가족의 이야기. 이것이 호소노 하루오미가 생각하는 <어느 가족>에 대한 감상이었다. "경범죄를 통해 인물들이 생활해 가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본질적인 가족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그는 "패전 후 일본의 어디에서든 있을 법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빈곤에 지지 않는, 어떤 의미에서 활기찬 생활의 리얼함에 압도됐다"고 덧붙였다.

"변화와 도전은 음악의 숙명"

 <어느 가족> 스틸컷

<어느 가족> 스틸컷 ⓒ 티캐스트배급


인터뷰 과정에서 그가 참여한 영화들을 열거한 뒤 물었다. 밴드 멤버로서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서 다양한 경력을 가진 그는 영화음악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있을까. <은하철도의 밤> 등에선 원작자와 감독의 세계를 훌륭하게 구현해냈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음악은 이야기, 캐릭터와의 결합도가 뛰어나다.

"<은하철도의 밤>은 미야자와 겐지(원작 동화작가)께 헌정하는 음악이라는 색깔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음악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였고 특히 옛날 영화에는 훌륭한 선율의 음악이 많았기 때문에 OST 음반을 꼭 구해서 소장했다. 최근에는 선율을 들려주는 영화는 자취를 감추고, 이른바 '극중음악'(극중 흐르는 배경 반주 음악)이라고 하는 오케스트라에 의한 음악이 작품에 울려 퍼지는 게 주류가 되고 있다. 그런 OST 음반을 사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역설적으로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한 영화엔 음악이 없거나, 있어도 인상에 남지 않는 경우가 있더라. 저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무(無)'에 가까워져 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그는 변화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록에서 일렉트로니카, 앰비언트 계열의 음악까지 보폭을 넓혀올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는 "변화는 음악이 가진 운명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지구상의 이곳저곳에서 날마다 훌륭한 음악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20세기는 보물과도 같은 음악의 보고(寶庫)가 되었다. 그런 음악을 만나고 자극을 받는 게 제 양식이 된다. 그리고 변화나 도전은 음악이 가진 숙명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어느 가족>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음악 활동을 이어나간다. 2011년 <호소노바> 이후 솔로 앨범이 없었는데 마침 올 하반기부터 개인 작업을 시작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덧붙여 동료인 사카모토 류이치처럼 한국영화(<남한산성>)에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사카모토와는 오랜만에 만났었다. 지난 6월에 런던에서 만났다. 타카하시 유키히로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우리끼린 서로의 작품을 듣는 게 더 중요해서 음악에 대한 얘긴 별로 안 한다. 한국영화는 존경하고 있다. 특히 누아르를 좋아한다. 한국음악은 전통적인 걸 좋아한다. 예전에 가야금을 조금 공부한 적이 있다.

(한국영화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능하면 고통을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저답게 작업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국영화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영화음악은 주어진 프레임 속에서 자유롭게 만들 수가 있다. 솔로 음악은 그 프레임이 영화와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것이므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올해 후반은 그 개인적인 앨범 제작을 하는 시기에 들어갈 예정이다."

어느 가족 호소노 하루오미 고레에다 히로카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