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작품마다 독특한 미장센을 선보이는 웨스 앤더슨 감독은 <개들의 섬>에서도 화려한 영상미를 선보인다.

매 작품마다 독특한 미장센을 선보이는 웨스 앤더슨 감독은 <개들의 섬>에서도 화려한 영상미를 선보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웨스 앤더슨 감독의 치밀한 영상 미학은 가끔 강박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로 잰듯한 중앙 대칭, 신마다 각기 다르게 준비돼 있는 알록달록한 컬러 팔레트, 정형화된 트래킹 샷은 애니메이션 영화 <판타스틱 Mr. 폭스>부터 실사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까지 단 한 번도 어긋나지 않은 웨스 앤더슨만의 철칙이다. 각 쇼트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모두 그려놓고 작업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교한 그의 영화는 그 기술이 곧 시나리오요, 기술이 곧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이후 4년 만의 신작 <개들의 섬>은 예외다. 이 앙증맞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핵심은 그 어떤 미장센이나 장치가 아니라, 웨스 앤더슨 본인의 취향과 애정이 최우선이다. 그 사랑의 대상은 두말할 것도 없이 개, 그리고 일본 문화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일본 사랑이 그대로 드러난 영화

 <개들의 섬>은 단순히 영화 배경이 일본일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오마주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개들의 섬>은 단순히 영화 배경이 일본일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진지한 애정과 오마주를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감독은 지난 11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개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고백한 바 있고, 굳이 배경을 20년 후 미래 일본으로 선정한 이유도 "간단하다. 일본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엄격한 규칙으로 그려지던 웨스 앤더슨의 그림책 세상에 이처럼 유례없는 개인의 기호가 적용된 것은 처음이다.

엄격한 스타일에 '덕질'까지 더해진 이 영화는 웨스 앤더슨의 일본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일본인 캐릭터들은 오직 일본어로만 말하고 그를 통역하는 과정은 TV 자막, 동시통역 등 철저히 간접적이다. 특유의 정방향 구도와 함께 최대한 단출한 색상 구성은 살아 움직이는 우키요에(일본 에도 시대의 판화 양식)를 연상케 한다.

실제로 영화 곳곳에서 인물들은 우키요에 화풍으로 묘사되며, 다다미 방과 신사 문화, 소소한 전통 문양과 메이지 시대의 고전적 포스터를 혼합한 미래 도시의 풍광은 물론 일본 사회 특유의 폐쇄성과 집단성에 대한 풍자까지, 디테일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개들의 섬>에서 쓰레기 섬의 떠돌이 개 '치프'가 새 주인 '아타리'를 따르게 되는 과정은 방랑 사무라이들의 로망을 담은 고전 일본 무협을 연상케 한다.

<개들의 섬>에서 쓰레기 섬의 떠돌이 개 '치프'가 새 주인 '아타리'를 따르게 되는 과정은 방랑 사무라이들의 로망을 담은 고전 일본 무협을 연상케 한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스토리라인은 더 노골적인 오마주다. 고양이 가문과 개 가문의 대결로부터 내려온 유례 깊은 개 차별의 역사는 일본 전국 시대 혹은 막부 내의 권력 다툼 역사를 절묘하게 참고했다. 버려진 개들을 찾아 쓰레기 섬으로 날아온 고바야시 시장의 양자 아타리와 그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경호견 스파츠, 떠돌이 개 치프의 구도는 사무라이 시대의 대하 사극으로 치환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심지어 영화 초기 썩은 음식을 두고 대립하는 구도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신의 애니메이션 판 재림이다.

일본 사랑이 영화 배경을 설정한다면 개 사랑은 감독의 취향임과 동시에 의도를 보다 명확히 한다. '개 열병' 바이러스를 핑계로 모든 개들이 하루아침에 쓰레기 섬에 버려지게 되는 상황은 비극적이나 직접 점토로 빚은 강아지들은 역설적으로 천진하며 용감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그 강아지들을 억압하려는 어둠의 세력이 야쿠자와 시민 단체, 군경을 확보하여 여론을 선동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저항의 표시다. '인간의 오랜 벗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하이쿠(일본의 짧은 시)의 여운이 깊다.

영화가 보여준 오마주들, 그러나 애정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

 웨스 앤더슨의 개 & 일본 사랑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개들의 섬>은 분명 즐겁지만 불편한 점도 분명하다.

웨스 앤더슨의 개 & 일본 사랑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개들의 섬>은 분명 즐겁지만 불편한 점도 분명하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요약하자면 <개들의 섬>은 웨스 앤더슨의 '덕심'과 넓어진 시각을 담은 앙증맞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특유의 개성은 역시 유례없는 치밀함으로 정확히 조율되어 있으며, 곳곳의 오마주와 유머로 유쾌한 재미까지 의도한다. 그러나 감독의 '이 애정 어린 시선'은 오히려 영화를 선뜻 추천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 불편함을 예로 들어보자.

만약 서양의 어떤 감독이 한국을 너무도 사랑해 2040년 서울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자. 영화의 모든 신은 김홍도와 신윤복, 조선 후기 민화 스타일이며 모든 등장인물들은 한복을 입고 태권도를 하며 김치를 버무린다.

개를 좋아하는 유서 깊은 양반 가문이 청와대에 집권해 독감 핑계를 대며 남해 근처 무인도로 고양이들을 모두 쫓아내는데, 고양이들을 구하는 데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영웅은 버블 헤드에 풍선껌을 씹는 미국 유학생이다. 인물들의 한국어 대사는 구글 번역기로 돌린 듯 엉성하고 오직 고양이들만 영어로 말을 한다. 과연 이것이 '애정'에서 비롯된 작품일까? 감독 본인의 '한국 문화 사랑'은 그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취한 편견 어린 시선이 아닐까?

<개들의 섬>이 보여주는 애정을 거짓이라 할 순 없다. 웨스 앤더슨은 그 누구보다 개를 사랑하고 일본 문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방법은 철저한 서양의 시각과 서양의 잣대다. 시각적 유희를 즐기다가도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이런 시선을 우리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부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https://brunch.co.kr/@zenerkrepresent/20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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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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