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0시(한국 시각)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트린 일본 혼다 게이스케(오른쪽) 선수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5일 오전 0시(한국 시각)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H조 세네갈과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터트린 일본 혼다 게이스케(오른쪽) 선수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AFP


아시아축구의 영원한 라이벌 한국과 일본의 희비가 러시아월드컵에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조별리그에서 스웨덴과 멕시코에 2연패를 당하며 탈락 위기에 놓인 반면,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1승 1무로 조 공동 선두를 차지하며 16강행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일본은 25일(이하 한국시각)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 위치한 예카테린부르크 아레나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2-2로 비겼다. 일본은 앞서 콜롬비아와의 1차전에서 2-1로 승리한 바 있다. 세네갈(승점 4)-콜롬비아(승점 3)와 16강진출을 놓고 혼전 중인 일본은 아직 최종전까지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마지막 상대인 폴란드가 2연패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며 동기부여를 잃었다는 것도 일정상 유리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일본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에 성공한 팀으로 꼽힌다. 일본은 월드컵 개막을 불과 두달 앞두고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하며 자국 출신의 니시노 아키라 감독을 선임하는 초강수를 뒀다. 보통 월드컵이 열리는 4년 주기로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던 일본축구계로서는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월드컵 직전 감독 경질한 일본이 선전한 이유

각오 밝히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바히드 할릴호지치 일본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7일 오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각오를 밝히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 앞두고 일본 축구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된 할릴호지치 전 감독 ⓒ 연합뉴스


할릴호지치 감독이 일본 축구계 및 선수들과의 불화, 평가전에서의 부진으로 여론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기는 했지만 4년 전 브라질 대회에서 알제리의 16강 진출을 이끄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던 지도자였기에 더욱 의외의 선택으로 여겨졌다. 자국 내에서도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니시노 감독의 현장 공백기에 대한 우려, 고령화되고 보수적인 구성으로 회귀한 선수단 구성에도 의문 부호가 붙었다. 간판 공격수 오카자키 신지가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부상을 당하는 악재도 있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자국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낮고 축구열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은 한국과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일본은 첫 경기부터 강호 콜롬비아를 잡아내는 이변을 연출하며 보기 좋게 세간의 전망을 뒤집었다. 초반부터 콜롬비아의 카를로스 산체스가 핸드볼 파울로 퇴장당하며 일본이 페널티킥과 수적 우위를 등에 업는 행운도 따랐다. 그러나 변수를 감안해도 일본의 경기력은 충분히 승리할 자격이 있었다는 평가였다.

세네갈과의 2차전은 일본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충분했다. 일본은 두 차례나 먼저 리드를 빼앗기고도 연달아 동점골을 만들어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4년 전 브라질 대회에서 한번 실점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와르르' 무너지던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결과였다.

할릴호지치 전 감독 체제에서 찬밥 대우를 받던 혼다 게이스케 같은 노장들이 월드컵에서 영웅으로 부활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혼다는 세네갈 후반 교체 투입하여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하며 일본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축구인생 첫 월드컵 무대를 밟으며 그동안 저평가받았던 니시노 감독의 노련한 용병술에 대해서도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아시아 팀 중 유일하게 16강 '청신호' 밝힌 일본

 일본 타카시 이누이 선수가 25일(한국 시각)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진행된 세네갈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슈팅 후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일본 타카시 이누이 선수가 25일(한국 시각)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진행된 세네갈과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슈팅 후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이미 일본이 확보한 승점 4점은 이번 대회에 출전한 아시아 5개국(호주 포함)을 통틀어 가장 좋은 성적이다. 일본이 만일 폴란드마저 넘고 16강 진출을 확정짓게 된다면 2010년 남아공 대회 이후 8년 만이자 2002년까지 포함하여 3회 진출이 된다. 아시아국가 중 조별리그를 3회나 통과한 팀은 아직까지 없었다.

현재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을 제외하면 다른 팀들은 모두 16강 진출을 장담하기 힘들다. 사우디는 이미 탈락이 확정됐고 호주도 내용은 선전했지만 1무 1패로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란은 1승 1패를 기록 중이지만 3차전이 강호 포르투갈전이다. 2연패를 당한 한국은 최종전에서 월드컵 우승국 독일을 상대한다. 현재로서는 일본만이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통과할 가능성도 높다.

니시노 감독과 마찬가지로 자국 감독이자 구원투수로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신태용 한국대표팀 감독은 벼랑 끝에 몰려있다. 한국이 2연패를 당하며 월드컵 탈락 위기에 몰리자 신태용 감독의 전술과 팀 운영을 둘러싼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일본보다 훨씬 어려웠던 죽음의 조편성, 최종명단 발표를 앞두고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본선 2경기 연속 PK 허용 같은 불운들도 있었지만 신태용 감독의 리더십 역시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불과 월드컵을 두달 앞두고 지휘봉을 잡은 니시노 감독에 비하여 신태용 감독은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물론 최고의 팀을 만들기에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월드컵 개막이 임박한 시점까지도 확실한 베스트11이나 플랜 A조차 확정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트릭' 발언으로 인한 논란 등 기행에 가까운 수많은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정작 월드컵 본선무대에서는 실속도 색깔도 찾아보기 힘든 축구를 보여주며 많은 팬들이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성적보다 뼈아픈 부분, '특유의 색채' 잃어버린 한국 축구

만일 독일과의 최종전마저 패배하게 된다면 한국축구는 1990년 이탈리아 대회 이후 28년만에 승점 1점도 획득하지 못하고 3전 전패로 대회를 마감하게 된다. 4년 전 브라질 대회에서 '의리축구' 논란으로 몰락했던 홍명보호를 뛰어넘는 참사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으로는 최종전에서 월드컵 우승국 독일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반응은 거의 없다. 신태용 감독이 월드컵이 끝난 후 지휘봉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신 감독 개인으로서도 오점이지만 무엇보다 지난해 히딩크 복귀 논란 등에서 보듯 국내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이 다시 한번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뼈아프다.

[월드컵] 돌파 시도하는 문선민 (로스토프나도누=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문선민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돌파 시도하는 문선민 지난 23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로스토프나노두 로스토프아레나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에서 문선민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로서는 격세지감이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월드컵 본선 최다 진출국이자 최고의 성적(2002년 4위)을 올렸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일본과 함께 동반으로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게 된 1998년 이후로도 함께 조별리그를 통과하거나 떨어진 적은 있지만 적어도 일본보다 저조한 성적을 기록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더구나 이번 러시아월드컵 조추첨에서 두 팀이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조편성의 희비가 엇갈린 것을 감안하면 국내 팬들로서는 더욱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두 팀의 결정적인 차이는 결국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보여줬느냐에서 갈렸다. 일본은 감독 교체를 감수하면서 특유의 패스와 점유율 축구로 회귀하여 대성공을 거뒀다. 반면 한국은 성적 부진으로 교체된 슈틸리케 감독의 뒤를 이어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체력-압박-투지 등으로 요약되는 한국축구만의 전통적 강점을 잃어버린 것이 뼈아팠다. 특정 선수-감독만의 문제를 떠나 2002 세대의 반짝 성공에 도취된 이후 한국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색깔을 잃어버린 축구계 전체가 책임을 치러야 할 대가였다. 극과 극의 처지에 놓인 한국과 일본 축구가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유종의 미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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