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 추가 시간에만 두 골을 더 내주며 사우디 아라비아 선수들은 완전히 주저앉았다. 월드컵 개막전에서 개최국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에 어려운 경기 양상을 예상하고 뛰었지만 무려 다섯 골을 내주며 완패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심각하게 무너졌는지를 생각해보면 강팀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 임하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명심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체르체소프 스타니슬라프 감독이 이끌고 있는 러시아가 한국 시각으로 15일 오전 0시 모스크바에 있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8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A조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개막전에서 5-0 완승을 거뒀다.

수비 조직력의 중요성

'안돼!'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러시아 페도르 스몰로브가 사우디 골키퍼 압둘라이 알무아오프와 공을 다투고 있다.

▲ '안돼!' 1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개막전 러시아-사우디 아라비아 경기. 러시아 페도르 스몰로브가 사우디 골키퍼 압둘라이 알무아오프와 공을 다투고 있다. ⓒ 연합뉴스


결과는 어느 정도 사우디 아라비아가 밀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도저히 넘보기 힘들다는 축구장의 상징적인 점수판 5-0이 나올 줄은 몰랐다. 대회 직전 디펜딩 챔피언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1-2까지 따라붙은 사우디 아라비아였기에 개막전부터 놀라운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수비 조직력이 형편 없었기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FIFA가 제공하는 경기 후 자료에 따르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공 점유율(사우디 아라비아 60%, 러시아 40%)과 패스 성공률(사우디 아라비아 86%, 러시아 78%)에서 오히려 앞섰다. 그런데 기회가 왔을 때 골을 만들어내는 결정력에서도 모자랐다.

이는 스웨덴과의 첫 경기(18일 오후 9시, 니즈니 노브고로드)를 준비하고 있는 한국대표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우디 아라비아도 분명히 좋은 득점 기회를 측면에서 열었다. 21분, 골문 앞으로 몸을 날리며 헤더 슛을 시도하는 골잡이 알 샬라위를 겨냥한 왼쪽 크로스가 날카로웠지만 러시아 센터백 쿠테포프가 간발의 차로 걷어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56분에도 오른쪽 측면에서 알 브라이크의 얼리 크로스가 러시아 골문 앞을 지나가면서 득점 기회를 잡았지만 알 샬라위와 타이사르 알자삼 두 선수 모두가 그 공을 터치하지 못했다. 그만큼 러시아 수비수들의 위치 선정이나 1:1 대인 방어 능력이 효력을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러시아의 골 장면들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비 조직력이 얼마나 허술한가 알려준 셈이다. 대회 첫 골은 경기 시작 후 12분 만에 나왔다.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왼쪽 측면에서 코너킥 세트 피스 2차 기회에서 오른발로 정확한 크로스를 올려줘 유리 가진스키의 헤더 골을 이끌어냈다. 사우디 아라비아 미드필더 타이사르 알자삼이 유리 가진스키와의 몸싸움에서 너무나 쉽게 나가떨어지는 허술함을 보였다.

이는 프리킥, 코너킥, 스로인 등 세트 피스 기회가 왔을 때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가르쳐주는 것이었고, 위험 지역에서 상대 팀 체격 조건이 좋은 선수를 따라붙는 1:1 방어의 기본을 일깨워주는 것이기도 했다.

43분에 러시아의 추가골이 나왔다. 미드필드 오른쪽 지역에서 반대편으로 역습이 전개되는 흐름이 매끄러웠다. 역습을 전개하면서 더 좋은 공간을 파고들 수 있는 넓은 시야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준 명장면이었다.

러시아 플레이 메이커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로만 조브닌에게 연결해준 공을 곧바로 왼쪽으로 돌아들어가고 있는 데니스 체리셰프에게 밀어주었고 체리셰프는 자신을 향해 슬라이딩 태클을 시도하는 사우디 아라비아 두 선수를 보기 좋게 따돌리고 왼발 슛을 시원하게 꽂아넣었다. 여기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수비 조직력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또 확인할 수 있었다.

수비수 둘이 한꺼번에 몸을 날리면 커버 플레이는 더이상 불가능하다. 모하메드 알부라이크와 오마르 하우사위가 바로 그 둘이었다. 풀백 알부라이크의 슬라이딩 태클은 적절했다. 하지만 커버 플레이를 조직적으로 펼쳐야 하는 센터백 오마르 하우사위까지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플레이 메이커 골로빈의 정확한 킥 실력을 보라

러시아는 후반전에도 사우디 아라비아보다 효율적으로 소중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공 점유율이나 패스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모자란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기회를 만들었을 때 얼마나 정확한 연결과 확실한 마무리가 뒷받침 되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을 가르쳐준 셈이다.

러시아의 실리 축구 중심에 플레이 메이커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서 있었다. 그의 영향력은 첫 골 어시스트, 두 번째 골 연계 플레이, 세 번째 골 어시스트, 다섯 번째 골 득점(1득점 2도움)이라는 놀라운 기록으로 입증했다. 한 마디로 러시아의 개막전 승리 일등 공신인 셈이다.

골로빈의 정확한 오른발 킥 실력은 가진스키의 선취골 크로스 어시스트와 71분에 만든 아르톰 주바의 헤더 추가골 크로스 어시스트로 검증되었으며 후반전 추가 시간 4분에 나온 그림같은 오른발 직접 프리킥 감아차기 골에서 확실한 마침표를 찍었다.

플레이 메이커로서의 연계 플레이 능력과 크로스의 정확성, 세트 피스로 찍는 확실한 마무리 능력까지 유능한 선수 하나가 러시아의 실리 축구를 대변한 셈이다.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골로빈의 다재다능함을 보면서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골로빈 닮은꼴을 한국 대표팀에서 한 선수로 꼽을 수는 없다. 미드필더는 물론 센터백 역할까지 맡을 수 있는 기성용이 연계 플레이 측면에서 먼저 떠오른다. 오른발 크로스의 정확성은 키다리 골잡이 김신욱의 높이를 빛낼 수 있는 풀백 이용에게 어울린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대표팀도 기성용과 이용을 중심으로 정확한 연결을 이루어내는 실리 축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려 다섯 골을 내주며 사우디 아라비아 수비수들이 드러낸 허술한 조직력을 한국 대표팀도 남의 일로 두지 말아야 한다. 러시아 센터백들은 몇 차례 위기 상황에서 사우디 아라비아 간판 공격수들을 조직력으로 잘 묶어버렸는데 사우디 아라비아 수비수들은 위험 지역 1:1 몸싸움에서 쉽게 밀려 넘어졌고 효율적인 커버 플레이도 펼치지 못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후반전 추가 시간이 되면서 사우디 아라비아 선수들은 체력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아르톰 주바의 헤더 패스를 받은 데니스 체리셰프의 멋진 왼발 하프발리슛도 압권이었지만 그 앞에서 어정쩡하게 거리를 준 것이 화근이었다. 종료 직전에도 공격형 미드필더 타이사르 알자삼이 체력에 부담을 느끼며 따라가지 못해 저지른 반칙으로 다섯 번째 프리킥 골까지 내준 사례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섯 골이 일방적으로 터졌다고 해서 전반적인 경기력에 큰 차이가 드러났다기보다는 기본적인 수비 조직력의 완성도 차이와 간판 선수 2~3명의 개인 능력 차이에서 확실하게 격차가 생겼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꿈의 그라운드인 월드컵 개막 경기가 남긴 교훈들이 사흘 뒤 한국 대표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기다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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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2018 러시아월드컵 A조 결과(15일 오전 0시, 루즈니키 스타디움-모스크바)

★ 러시아 5-0 사우디 아라비아 [득점 : 유리 가진스키(12분,도움-알렉산드르 골로빈), 데니스 체리셰프(43분,도움-로만 조브닌), 아르톰 주바(71분,도움-알렉산드르 골로빈), 데니스 체리셰프(90+1분,도움-아르톰 주바), 알렉산드르 골로빈(90+4분)]
- 관중 수 : 7만8011명

◇ 주요 기록 비교
유효 슛 : 러시아 7개 - 사우디 아라비아 0개
코너 킥 : 러시아 6개 - 사우디 아라비아 2개
공 점유율 : 러시아 40% - 사우디 아라비아 60%
패스 성공률 : 러시아 78%(240/306개) - 사우디 아라비아 86%(442/511개)
뛴 거리 : 러시아 118km - 사우디 아라비아 105km
경고 : 러시아 1개 - 사우디 아라비아 1개
파울 : 러시아 22개 - 사우디 아라비아 10개
축구 월드컵 러시아 사우디 아라비아 신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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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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