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렸던 UFC225 대회는 화려한 대진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요엘 로메로의 계체 실패로 미들급 타이틀전이 논타이틀 계약체중 경기로 진행됐지만 두 체급의 타이틀전이 동시에 잡혔고 홀리 홈이나 CM펑크 같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선수들이 대거 출전했다. 이 때문에 메인카드에 출전하는 게 당연했던 스타 선수들이 무료로 방영되는 언더카드로 밀리기도 했다.

주목을 덜 받는 무대에서 싸우게 된 것이 허탈했을까. 언더카드에 배치된 스타 선수들은 대거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헤비급의 알리스타 오브레임은 커티스 블레이즈에게 3라운드 KO로 무너졌고 페더급의 리카르도 라마스는 머사드 벡틱에게 판정으로 패하며 생애 첫 연패를 당했다. 드미트리우스 존슨 외에는 적수가 없다던 플라이급 랭킹 1위 조셉 베나비데즈도 앤서니 페티스의 동생 서지오 페티스에게 덜미를 잡혔다.

하지만 이날 가장 큰 이변은 라이트 헤비급 경기에서 나왔다. 한때 무패의 전적으로 챔피언까지 등극했던 왕년의 강자가 UFC 전적 4승 2패에 라이트 헤비급 데뷔전을 치르는 신예 앤서니 스미스에게 단 53초 만에 KO로 무너진 것이다. 어느덧 UFC에서만 5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옥타곤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슈가' 라샤드 에반스가 그 주인공이다.

무패의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두 번의 타이틀전 패배 후 장기 부상

 에반스의 척 리델전 크로스 카운터 KO승은 UFC 명장면 영상에서 빠짐 없이 등장한다.

에반스의 척 리델전 크로스 카운터 KO승은 UFC 명장면 영상에서 빠짐 없이 등장한다. ⓒ UFC.com 화면 캡처


대학 시절 NCAA 디비전1에서 활약하며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던 에반스는 2004년 종합격투기에 데뷔해 내리 5연승을 거둔 후 UFC의 선수 육성 프로그램 TUF 시즌2에 참가했다. 에반스는 헤비급 선수로는 다소 작은 신장(180cm)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레슬링 실력을 바탕으로 TUF 시즌2 우승을 차지하며 UFC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UFC와 계약 후 다시 라이트 헤비급으로 돌아간 에반스는 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척 리델과 티토 오티즈가 양분하던 라이트 헤비급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실제로 2008년 9월엔 그림 같은 카운터 펀치로 리델에게 호쾌한 KO승을 거두며 라이트 헤비급의 판세가 바뀌었음을 선언했다. 에반스는 그해 연말 포레스트 그리핀을 KO로 누르고 무패의 전적으로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에반스의 봄은 길지 않았다. 2009년 5월에 열린 '무패 파이터'끼리의 타이틀전에서 료토 마치다에게 실신 KO로 무너진 것이다. 에반스는 타이틀을 빼앗긴 후에도 티아구 실바, 퀸튼 잭슨, 티토 오티즈, 필 데이비스 같은 강자들을 차례로 제압하며 정상급의 기량을 과시했다. 하지만 에반스는 뛰어난 기량과 별개로 테이크 다운에 이은 레슬링 압박으로 상대를 눌러 승리를 따내는 지루한 경기 스타일 때문에 격투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진 못했다.

에반스는 2012년 4월 한때 팀 동료였던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존 존스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당시 마우리시우 '쇼군' 후아, 잭슨, 마치다 등 에반스와 경쟁했던 강자들이 존스에게 속속 정리를 당한 상황이라 에반스는 존스에게 맞설 최후의 대항마로 꼽혔다. 하지만 팔 길이 191cm의 에반스가 215cm의 비상식적인 팔 길이를 가진 '괴물' 존스에게 맞설 수 있는 최선은 경기를 판정까지 끌고 가는 것뿐이었다.

에반스는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전에서 의외의 판정패를 당하며 생애 첫 연패에 빠졌다. 2013년 6월 댄 헨더슨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연패에서 탈출했지만 여전히 지루한 경기스타일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에반스는 2013년 11월 미들급에서 올라온 차엘 소넨을 1라운드 KO로 꺾고 오랜만에 상승 분위기를 탔다. 당시만 해도 소넨전 승리 이후 에반스가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할 거라 예상한 격투팬은 거의 없었다.

미들급 변신도 무소용, 신예에게도 53초 KO로 무너진 전 챔피언의 몰락

 라이언 베이더(왼쪽)전 패배를 시작으로 에반스는 속절 없는 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라이언 베이더(왼쪽)전 패배를 시작으로 에반스는 속절 없는 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 UFC.com 화면캡처


에반스는 다니엘 코미어, 알렉산더 구스타프손, 글로버 테세이라 등 라이트 헤비급의 새로운 강자들과의 경기가 거론됐지만 이 대진들은 에반스의 무릎 부상 때문에 모두 무산됐다. 결국 1년 이상의 공백을 가진 에반스는 2015년 10월 라이언 베이더에게 판정으로 패하며 복귀전을 망쳤다. 2016년 4월에는 테세이라의 레프트 펀치에 걸리며 1라운드 KO로 무너졌다. 결국 에반스는 라이트 헤비급에서 한계를 느끼고 미들급으로 체급 하향을 결심했다.

사실 에반스 정도의 체격을 가진 파이터라면 거구들이 즐비한 라이트 헤비급보다는 미들급이 더 잘 어울리는 체급일지 모른다. 하지만 에반스는 미들급 데뷔전에서 노장 파이터 다니엘 켈리에게 1-2 판정으로 패했고 그해 8월에는 샘 앨비에게 또 한번 1-2 판정으로 무너졌다. 판정 결과가 다소 억울할 수도 있지만 미들급의 평범한 파이터조차 압도하지 못한 에반스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미들급에서 순위권 밖에 있는 파이터들에게 연패를 당하며 미들급에서도 이렇다 할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한 에반스는 다시 라이트 헤비급으로 돌아왔다. 복귀 후 첫 상대는 UFC전적 4승 2패를 기록 중인 앤서니 스미스. 2016년 UFC에 입성한 스미스는 2016년 12월부터 작년9월까지 3연속 KO승을 거두며 기세를 올렸지만 지난 2월 티아구 산토스에게 KO로 무너지며 상승세가 한풀 꺾인 채 미들급에서 라이트 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렸다.

하지만 4연패 중인 에반스는 9살 어린 스미스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경기 초반부터 스미스에게 강한 로우킥을 허용하며 고전하던 에반스는 테이크 다운을 시도하기 위해 스미스를 케이지로 몰다가 안면에 강력한 니킥을 허용했다. 스미스는 에반스에게 추가 파운딩을 시도했지만 쓰러진 에반스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에반스는 그렇게 라이트 헤비급 복귀 무대에서 53초 만에 KO로 무너졌다.

어느덧 옥타곤 5연패. 최근 9경기로 범위를 넓혀도 에반스의 전적은 2승 7패에 불과하다. 만약 에반스가 전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으로서 UFC의 흥행에 기여한 바가 없었다면 진작에 방출 대상에 올랐을 것이다. 어쩌면 UFC에서는 옥타곤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에반스가 스스로 결단을 내려주길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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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라이트 헤비급 라샤드 에반스 앤서니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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