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정작 국내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아직 분위기가 그리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북문제, 지방선거, 경제상황 등 정치-사회적으로 굵직한 이슈들이 속출하면서 국민들이 축구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 축구와 대표팀의 전력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역대 가장 낮은 기대감, 대표팀에 실망한 국민들

작전 지시하는 신태용 감독 7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대 볼리비아의 평가전. 한국 신태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작전 지시하는 신태용 감독 7일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노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대 볼리비아의 평가전. 한국 신태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 대표팀이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리라고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전국 성인 1004명 중 37%만이 16강 이상의 성적을 예상했다. 이는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독일-멕시코-스웨덴 등 세계적인 강팀과 '죽음의 조'에 배정되면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득세한 데다, 지난 수년간 축구협회와 대표팀의 부진한 행보에 대한 국민적인 실망감도 반영되었다는 평가다.

물론 본격적으로 월드컵이 시작되면 분위기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해보나마나'라는 시큰둥한 반응이 적지않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었던 2014년 브라질월드컵 당시에도 '의리축구' 등 숱한 논란거리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무관심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한일월드컵의 영웅이자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후광 등으로 홍명보 감독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었던 데다, 조 편성도 러시아-알제리-벨기에 등 그나마 해볼 만한 팀들과 한 조에 편성되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신태용호에서는 이런 기대치나 호의적인 반응을 좀처럼 찾기가 힘들다. 대표팀이 4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발전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도 많다. 신태용 감독에 대한 팬들의 평가도 낮은 편이다. 평가전에서 부진했던 일부 선수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3전 전패로 월드컵에 탈락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예년 같았으면 지금쯤 국민적인 성원과 기대가 모일 시점인 것을 감안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다.

월드컵은 지난 수십 년간 대회가 열릴 때마다 스포츠를 통해 국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희망과 꿈을 안겨주는 역할을 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 이후 한 번도 본선 진출을 놓친 적이 없는 한국 축구는 비록 조별리그에서 매번 성공했던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도전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전력으로는 밀리지만 투혼과 열정으로 무장한 태극전사들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줬다. 그러나 현 시점의 한국 축구는 서글픈 감정까지 느끼게 한다. 가장 먼저 축구인들부터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자포자기'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한국이 월드컵에서 약체 팀이라는 점은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의 악몽처럼 비교적 대진운이 좋았다고 16강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이번에도 한국이 16강에 올라갈 가능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신태용 감독, 허정무호와 홍명보호 사이에 서 있다

'어차피 한국이 3패로 월드컵에서 탈락할 것이 뻔하니 처음부터 기대하지 말자'는 식의 자학은, 비유하자면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사냐'는 이야기와도 전혀 다를 게 없다. 스스로의 나약한 패배주의를 애써 '쿨한 척'으로 포장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굳이 월드컵을 볼 필요도 없고, 대표팀에 욕할 이유 역시 없어 보인다.

전문가들과 여론의 우려와는 달리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에 대한 자신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비록 평가전 등 준비 과정을 통해 좀처럼 믿음을 주지 못한 대표팀이지만 신감독은 자신의 월드컵 구상에 대하여 확신이 있는 듯한 모습이다. 대표팀의 진짜 전력은 본선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감독의 호언장담을 지금으로서는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신 감독에게는 확실히 위기 탈출에 관한 탁월한 '생존 본능'이 있다. 리우올림픽에서도, U20 월드컵에서도,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 통과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지만 예상을 깨고 조기에 조별리그 통과를 확정짓거나 조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한 바 있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마지막 2경기를 남기고 절박한 시점에서 지휘봉을 물려받아 비록 운이 따라주기는 했지만 어쨌든 본선행을 끝내 완수했다. 신 감독의 자신감도 이런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로 보인다.

국내파 사령탑인 신 감독은 어쩌면 허정무와 홍명보 사이의 기로에 있다. 남아공월드컵을 이끌었던 허정무 감독은 재임 기간 내내 언론과 여론의 저평가에 시달려야했다. 심지어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국내파 감독으로서는 독보적인 위업을 달성하고도 '박지성을 데리고 겨우 그 정도밖에 못했냐'는 터무니 없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시작된 한국 축구의 혼란기와 더불어 최근에는 허정무 감독이 재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홍명보 감독은 2002 한일월드컵과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후광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정작 A대표팀에서는 숱한 문제점을 드러내며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태용 감독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어떤 성과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허정무 감독 같은 반전의 성공사례가 될 수도, 혹은 제2의 홍명보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전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 좀 더 즐기는 자세라면

질문에 답하는 신태용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 기자단 숙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신태용호는 비공개로 진행된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0-2로 패하며 오스트리아 레오강 훈련 캠프를 마감했다. 신태용호는 12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뮌헨을 거쳐 베이스캠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한다.

▲ 질문에 답하는 신태용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 기자단 숙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신태용호는 비공개로 진행된 세네갈과의 평가전에서 0-2로 패하며 오스트리아 레오강 훈련 캠프를 마감했다. 신태용호는 12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뮌헨을 거쳐 베이스캠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입성한다. ⓒ 연합뉴스


한편으로 대표팀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팬들도 월드컵을 대하는 자세 역시 좀 더 성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한국 축구도 이제 어느덧 '월드컵 본선 단골손님'이 됐다. 물론 월드컵이 단순히 참가만 하기 위해 나가는 자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1승이나 16강에만 집착하던 시대는 지났다. 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자국 선수와 감독을 비난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악순환도 이제는 어느 정도 벗어날 때가 됐다.

전 세계에서 단 32개국만 초청된 월드컵 본선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 한국 축구와 팬들에게는 큰 혜택일 수 있다. 자국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월드컵이라는 전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월드컵이 아니라면 한국 축구가 독일이나 멕시코 같은 강팀을 만나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하는 모습을 볼 기회는 흔치 않다. 설사 실력이 부족하여 질 수는 있어도 강팀을 상대로 당당하게 부딪쳐보고 도전하는 것이 스포츠의 묘미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을 경험하며 지난 수십 년간 성장해온 과정도 그랬다.

설사 월드컵에서 정말로 3패를 당한다고 해도 그날로 한국 축구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한계에 부딪혀보고 또 극복해가면서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실패하고 깨지면서 성장할 용기조차 없다면 굳이 월드컵에 나가야 할 이유도 없다. 결과에 대한 두려움은 일단 뒤로 미뤄놓고 월드컵이라는 과정을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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