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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미지는 간결하다. 언어의 운율과 리듬을 살리면서 어둠와 빛을 감각적으로 사용하여 아름다움과 울림을 동시에 준다. 때로 예술가의 작품을 보면 그 작품만으로 감동하거나 감상에 젖는 것이 있고, 작품을 만든 사람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번에는 후자였다. 한글 네온사인 그래픽 아티스트 김현수를 만났다.  

에필로그
▲ 네온 - 빛 에필로그
ⓒ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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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속에도
기쁨 속에도
후회 속에도
아픔 속에도
기억 속에도
추억 속에도
낮과 밤하늘에도
나와 당신에게도

빛은 매 순간 스며있었다.
- <밤이 온 당신에게 빛을> 중에서


그래픽 아티스트 김현수
 그래픽 아티스트 김현수
ⓒ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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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자신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
"SNS를 통해 한글 네온사인 이미지를 만드는 그래픽 아티스트 김현수입니다. 그래픽 아트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전적인 정의는 아니고 저만의 정의입니다. 글 없이도 가능하지만 제가 요즘에 집중하는 것은 한글 네온 아트 작업입니다. 이 덕분에 이름이 조금 알려지기도 했구요."

- 한글 네온 아트에 관해서 좀 더 설명한다면?
"이 작업에 있어서 저는 글도 하나의 이미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문구를 만들 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과 동시에, 글이 잘 보여져야 한다는 것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비슷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동음이의어 등을 사용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내용을 좀더 극대화하려는 것이죠."  

밤이 떠오르니
▲ 네온 - 밤 밤이 떠오르니
ⓒ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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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고
▲ 네온 -3 밤은 깊고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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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딱히 하나의 주제는 없습니다. 그때 그때 다르기도 하고요. 다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따뜻한 느낌, 논리보다 감성, 공감, 위로, 일상의 어떤 순간들, 관계를 통한 감정을 포착하는 것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처음에 의류 그래픽 쪽에서 일을 했어요. 하다 보니 '그래픽'을 다루는 것은 좋았지만, 정해진 콘셉트와 정해진 문구만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게 좀 스트레스였어요. 그러다가 나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이루기 위해서 미루지 말아요'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휴대폰 배경 화면 정도로 쓰고 싶어서 네온사인의 효과를 넣고, 이왕이면 실제로 설치되어 있게끔 보여주면 주면 더 좋겠다 싶어서 그렇게 해봤더니 주위에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걸 SNS에 올렸을 때도 반응이 괜찮았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눈에 보이는 반응을 보면서 이게 즐겁고 좋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가 2014년 말이었는데, 그 즈음에 영장이 나왔어요, 입대까지는 일 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죠, 어차피 군대 갈 바엔 그전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자 싶어서, 결국 과감히 그만두고 SNS에 작업물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면서 퍼져나가게 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된 셈이에요."

- 나름 미루지 않았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셈이다.
"아직 이루었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때 그만두지 않았으면 계속 스트레스 받으면 의류 그래픽 작업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루기 위해선 미루지 말아요
▲ 네온 - 이루기 위해선 이루기 위해선 미루지 말아요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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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들 보면 자연을 배경으로 하는 게 많은데 이유가 있나?
"우선 네온사인이라고 하면 보통 도심에서 반짝이고,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 소음, 북적북적한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런 점에서 이 네온을 전혀 반대되는 이미지인 자연과 배치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한 자연에는 방해하는 다른 빛이 없기 때문에 네온의 빛을 훨씬 더 강하게 비춰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구요."

- 소재를 찾는 방법과 그 소재를 압축해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노하우가 있다면?
"보통 글을 먼저 만들고, 글과 어울릴 만한 배경을 찾는 편입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시 공감이에요.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나 순간 순간의 기분 같은 것에 대해 간단하게라도 기록 하는 편이에요. 음악, 영화 등을 통해서도 영감을 얻고요. 그러고 나선 이게 보편적인 감정인지, 아니면 나만의 감정인지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생각합니다.

그게 정리되면 문구를 만드는데,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읽히기 쉽게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요. 힙합으로 치면 라임을 맞춘다고나 할까요." 

- 소재 찾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서 말해준다면?
"<뷰티 인사이드.라는 영화를 봤는데, 잠을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과연 나였어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고민하다가 만들어진 문구가 '그댈 마음으로 보았기에 눈을 감아두어도 좋네요'라는 글이었습니다."

그댈 마음으로 보았기에
▲ 네온5 그댈 마음으로 보았기에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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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름다운 외모만으로 충분히 끌렸지만,
그 끌림을 떨림으로 변하게 한 건 당신의 마음이었어요.
눈을 뜨고 보아도 눈을 감고 보아도 내가 보는 당신은 똑같아요.
- <밤이 온 당신에게 빛을> 중에서


- 이미지 중에선 사회적인 문제에 관한 메시지 같은 것들도 좀 있는 편인데?
"누가 봐도 잘못된 문제들에 대해서 건드려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제 작업을 요약하자면 결국, '빛을 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이 뭐 누군가의 생각을 바꾼다든가 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든 빛을 통해서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고 싶고, 누군가가 공유를 하고, 퍼뜨림으로써 그 문제의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너를 잊기엔 너무 깊기에'는 세월호 추모, '내 약한 힘 때문에 힘들기보다 네 악한 心 때문에 힘들곤 해요'는 갑질에 대한 비판. 뭐 이런 것을 의도하고 만든 것이긴 하지만 이런 작업들에 대해서 딱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여지길 원하는 것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연인과의 이별, 혹은 친구 관계에서의 상처로 볼 수도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게 메시지를 만드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너를 잊기엔 너무 깊기에
▲ 네온 6 너를 잊기엔 너무 깊기에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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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원망하니
아픔만이 되돌아왔다.

상처로 무거워진 아픔이
이미 마음속 깊은 곳까지 잠겨
이제는 덜어낼 수 없는 지난날이 되었다.
- <밤이 온 당신에게 빛을> 중에서


- 그동안의 작업이 한 권의 <밤이 온 당신에게 빛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 소개를 하자면?
"작업 전체가 담겨 있고, 책을 위해 새롭게 만든 네온 아트 작품들도 꽤 있습니다.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와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누군가와 함께 본다면 어떤 순간을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꼭 선물을 하지 않더라도 안의 내용을 사진 찍어서 보내주거나 책에 들어 있는 엽서를 써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물론 혼자 봐도 좋습니다." 

- 기존에 해왔던 작업은 철저하게 혼자 하는 것인데, 책 작업은 그런 게 아니다. 어땠는지?
"출간에 관한 정보나 이런 게 전혀 없었는데, 정말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한 권의 책을 만든 다는 게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혼자 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출판이라는 그 자체가 힘들었어요. 어쨌든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함으로써 좀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 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메시지 카드
▲ 메시지 카드 메시지 카드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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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말고 에세이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책 작업을 위해서 만든 것인가?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네온을 스토리로 좀 풀어나가야 한다는 게 출판사의 의견이었어요. 제가 하는 게 엄밀히 말하면 글을 '쓰는' 작업이라기보다 글을 '만드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한 생각이 좀 뚜렷해진 부분은 있어요. 늘 간추리는 것만 생각했고 눈에 보여지는 것만 고민했었는데 간추렸던 것을 조금 더 자세히 풀어내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글을 글대로 작업하면서 사람들에게 좀더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보고 싶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
"책에 담은 내용을 독자들과 가까이에서 전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네온사인 작업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것이라 꾸준히 하겠지만 그것 외에도 그래픽, 이미지라는 큰 틀에서 공감과 위로, 따뜻함 등을 담아낼 수 있는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좀 해보려고 합니다. 포스터 제작, 네온을 이용한 굿즈 같은 것들도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밤과 빛의 대비를 통해서 만들어 진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밤과 빛은 어떤 의미인가?
"저에게 밤은 시간적인 의미와 시각적인 의미가 있어요. 절망의 은유이기도 하고, 깊어지고, 풍부해지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시각적으로는 보통 눈앞이 캄캄해 지면 당황하게 되거나 두려워 질 수 있잖아요. 겁이 나기도 하고. 빛은 그래서 절망속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비춰주는 나침반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 깊고 풍부해지는 시간을 도와주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빛은 결국 밤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무엇이기도 하죠." 

- SNS에서 자기만의 작업을 올리고 있거나 그런 걸 하려고 하는 후배들, 좀더 어린친구들에게 조언을 하자면.
"'속력이 빠르기보다 방향이 바르길 바라요'라는 이미지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한순간에 반짝이는 무언가로 관심을 받기 위한 작업에 집중하기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오랫동안 끌고 갈 수 있는 본인만의 아이덴티티를 먼저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너무 조급하게 빨리 결과를 바라지 말았으면 좋겠에요. 안 잘해도 된다고, 안 괜찮아도 된다고 하고 싶은것을 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응원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안 잘해도 돼, 안 괜찮아도 돼
▲ 네온 8 안 잘해도 돼, 안 괜찮아도 돼
ⓒ 박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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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괜찮아보다
가끔은 나를 더 안도하게 하는 말
- <밤이 온 당신에게 빛을> 중에서


김현수 작가의 작품에는 깊이가 있다. 늘 그렇진 않겠으나 그것은 결국 사람이 가진 깊이와 비례한다. 김현수가 그러했다. 그는 오늘도 문구를 고민하고,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밤"이 온 많은 사람들에게 "빛"을 전해주고 있다.

작가의 인스타그램은 @kxxhyunsx 이니 또 다른 위로를 원한다면 찾아가봐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정우 시민기자는 <밤이 온 당신에게 빛을>을 펴낸 '우드스톡'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태그:#김현수, #네온아트, #네온랭귀지, #밤이온당신에게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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