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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칭 '교통 오타쿠',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가 연재합니다.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그런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새마을호가 종운된 지난 4월 30일 한 시민이 새마을호와 관련된 피켓을 직접 그려 들고 있다.
 새마을호가 종운된 지난 4월 30일 한 시민이 새마을호와 관련된 피켓을 직접 그려 들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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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오후 11시의 용산역, 평소라면 밤공기를 뚫고 서울로 달려 도착한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가득할 10번 플랫폼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새마을호의 마지막 운행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었다.

수많은 철도 동호인들이 카메라나 핸드폰을 들고 열띤 촬영의 열기를 보여주는가 하면, 아이를 데리고 나와 새마을호의 마지막을 기다렸던 시민이나 가족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여러 철도동호회가 하나되어 새마을호의 마지막을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 4월의 마지막 날 용산역의 모습을 담았다.

사상 초유 '열차 포토라인'

마지막 유선형 새마을호 1160호 열차가 용산역에 들어오고 있다.
▲ 들어오는 마지막 열차 마지막 유선형 새마을호 1160호 열차가 용산역에 들어오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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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도착 30분 전, 용산역 10번 플랫폼에는 '포토라인'이 길게 늘어섰다. 연예인이 레드카펫 위에서 포토타임을 가질 때와 비슷하게 기차역에서 한 줄로 일렬하듯 서는 포토라인이 형성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국내 철도동호회 중 규모가 큰 다섯 곳이 연합하여 개최하였는데, 몇몇 사람들이 안전선을 넘는 것을 막으려 주최자들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맞은편 승강장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새마을호의 등장을 고대하고 있었다. 11번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이상준씨는 "이제 새마을호가 들어오면 더 볼 수 없다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크게 든다. 새마을호 객차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면서 사람들의 추억을 되살렸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윽고 11시 10분 경, 열차 도착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천천히 승강장으로 열차가 진입했다. 멀리 익산에서 장항을 거쳐 용산까지 4시간을 달려온 1160 새마을호 열차는 특유의 기적소리와 함께 역 정지선에 맞춰 정차했다. 동시에 커다란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열차의 앞부분 기관차에는 '종운'이라고 씌어진 헤드마크가 부착되어 있었다.

감동적 '마지막 승무신고', 위험천만 순간도

지난 4월 30일 용산역에서 새마을호 1160호 승무원들이 마지막 승무신고를 하고 있다. 승무원 뒤로 취재진과 철도 동호인들의 포토라인이 '깔렸다'.
▲ 마지막 승무신고 지난 4월 30일 용산역에서 새마을호 1160호 승무원들이 마지막 승무신고를 하고 있다. 승무원 뒤로 취재진과 철도 동호인들의 포토라인이 '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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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직후에는 새마을호 열차의 마지막 승무신고가 이어졌다. 승무신고가 이어진 직후에는 청소년들에 의한 꽃다발 증정과 기념촬영도 있었다. 승무원들 모두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새마을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열차 안에서 롤링 페이퍼를 그리듯 승객들이 일일이 수놓은 메시지가 씌여진 현수막이 기념촬영 맨 앞에 섰다.

열차 안에서부터 종운행사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차에서 내리며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열차의 모습과 함께했고, 반대편 승강장에 새마을호의 후계열차인 ITX-새마을 열차가 들어서면서 마치 왕위를 계승하는 듯한 모양새로 사람들에게 미묘한 감정을 선사했다. 시민들 역시 새마을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기관사와 함께 셀카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몇몇 사진사가 철로 아래로 내려들어 포즈를 잡았는데, 10번 플랫폼 앞 선로를 넘어 서울역으로 바로 향하는 열차가 사용하는 통과선까지 점령했다. 주최자들이 황급히 계도하며 승강장 위로 올라가는 순간 화물열차가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사진 욕심이 자칫 참사를 부를 뻔 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하얀 장갑 흔들며 마지막 인사

지난 4월 30일 기지로 떠나는 마지막 새마을호 열차를 시민들이 배웅하고 있다.
▲ 잘가요, 새마을호 지난 4월 30일 기지로 떠나는 마지막 새마을호 열차를 시민들이 배웅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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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행선판마저 탈거되며 정해진 다음 날 행선지도 없이 기지로 갈 준비를 마친 새마을호가 출발을 위한 기적을 울렸다.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공식 기념촬영을 마치고, 천천히 용산역을 떠나 기지로 마지막 귀갓길을 갖는 새마을호 열차를 향해 사람들은 하얀 장갑을 착용한 손을 흔들며 '새마을호 안녕'을 외쳤다.

이날 놋치(기관차의 엔진을 조절하는 장치)를 잡은 손영상 기관사는 "13년 간 열차를 운행하며 장항선을 주로 오갔는데, 그 덕분인지 이렇게 마지막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하며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기관사로서 행운이고 영광인 일이다. 철도 동호인들의 밤 늦은 열정에 대단히 감사하다"며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 열차의 출발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기념 승차권을 나누어주고, 행사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던 이근행씨는 "사람들이 한 열차를 보내려 이렇게 많이 모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마을호의 커튼콜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생각에 너무 벅차 눈물이 났다"며 눈가를 훔쳤다.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하지만 아름답게 사라진다

4월 30일 새마을호 퇴역 기념식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4월 30일 새마을호 퇴역 기념식에서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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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역을 휩쓸었던 비둘기호와 통일호가 2000년, 2004년 차례로 퇴역했을 때에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특히 전국민의 추억 하나씩을 하나씩 싣고 있던 통일호는 당시 KTX 개통 이슈에 묻혀 쓸쓸한 퇴역을 맞았다. 하지만 새마을호는 언론과 매스컴의 관심, 그리고 철도동호인들의 노력으로 가장 아름다운 퇴역 행사를 맞았다.

모두가 타기 어렵다고 꼽던 특급열차에서 추억의 열차로, 그리고 무궁화호와 KTX 사이에 낀 천덕꾸러기 신세에서 모든 이의 박수 속에 화려하게 떠난 새마을호는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또 사람처럼 후계열차인 ITX-새마을에 자리를 넘기면서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셈이 되었다.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간 새마을호는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까. 한국 경제성장기의 정점을 찍던 80년대와 90년대를 상징하는 열차로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자체로 안락한 좌석과 빠른 속도를 지닌 호화열차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새마을호가 역사의 중요한 지점 한 페이지를 장식하리라는 것이다.



태그:#새마을호, #철도, #한국 철도, #경제성장, #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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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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