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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두 번의 기사, "입력 부족"과 "망가진 교육 시스템"에서는 주로 학습의 환경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학생 "개인의 학습 습관"에 대한 부분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관련 기사]
① 한국의 영어교육이 잘못된 이유, OO이 부족하다
② 초등학교 교과서로 배우고, 고등학교 시험을 풀어라?

문제점 3. 잘못된 영어 학습 습관 – 단어 암기

유튜브(Youtube)에 가서 영어를 입력하면 수도 없이 많은 동영상 파일들이 올라옵니다. "단어 쉽게 암기하는 비법"이니 "독해의 신". 심지어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수천 단어 암기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강좌도 있습니다. 완벽한 우리말 생태계에서 우리가 몇 년에 걸쳐 익숙해진 우리말을 외국인에게 일주일 동안 단어를 암기하도록 하면 그 사람의 한국어 실력은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외국인이 사는 현지에서 단어를 암기하라고 한다면요.

언어에서 단어는 마치 모래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모래는 모래 그 자체로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적당한 비율의 시멘트와 섞여야 모래가 비로소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이치이지요. 단어는 언어의 가장 하위에 있는 의미 단위입니다. 영어 단어만 하여도 백만 개를 넘을 정도로 단어의 수는 많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대략 몇천 개 정도의 단어를 알면 된다고들 합니다. 그러니 사흘 만에 고등학교 전 단어를 암기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단어를 외우는 것이 영어 교육에 치명적인 결함을 끼치는지를. 단어는 암기하면 할수록 외국어 습득을 방해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외국어를 학습할 목적으로, 단기간 시험에 합격할 목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단어를 몇 일만에 암기하고 대신 자신의 외국어 습득을 망가뜨려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공교육을 통해 10년 이상을 영어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단어를 암기하는 것이 영어를 망가뜨리는 주범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영어는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단어를 배우는 것으로 습득할 수 없는 암기과목 열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배우듯 영어를 그렇게 배워야 합니다. 물론 노출이 전혀 안 되는 한국에서 어떻게 우리말 배우듯 영어를 배울 수 있냐고 하겠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 편에서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말씀드리는 것은 한국에서도 단어를 암기하지 않고 영어를 정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단어를 암기할 때 문제점을 열거해 보겠습니다.

#1 기억이 오래가지 못한다

단어를 암기하면 그 단어는 장기기억 보관소로 넘어가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우리 뇌에서 사라집니다. 모래와 모래를 결합하는 시멘트 역할을 할 근거가 단어 자체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단어는 각자 그 의미가 들어가 있는 문맥 속에서 고유의 이야기 중 일부로 작용합니다. 이야기 속에서 부분으로 이해될 때 비로소 단어는 우리 뇌 속에서 기억으로 남습니다. 한 단어를 20번 이상 암기해서 완전히 그 의미를 안다고 해도 또한 문제가 됩니다. 그 단어가 다른 단어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2 영어는 다의어이다

우리말도 그런 단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는 유난히 여러 의미를 한 단어가 갖는 특성이 있습니다. 단어를 암기하는 방식은 영어 단어 하나에 우리말 하나를 매칭시키는 방식이므로 학생들은 천 개의 단어를 천 개의 우리말로 암기합니다. 그리고 영어가 필요할 때 암기한 단어를 기억 속에서 되살립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 Will you address the speech?

제가 이 문장을 주고 해석을 시키면 학생들은 address가 동사인 것을 모르고 "주소"라는 우리말만 알고 있어서 결국 문장의 구조를 알 수가 없는 심각한 결과를 낳습니다. 단어를 암기하는 것이 문법 구조 학습을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드는 사례입니다.

#3 활용이 어렵다

암기한 단어는 활용이 어렵습니다. 시험 문제를 풀기 위한 독해력 연습에 단어와 단어의 의미만으로 유추하여 문제를 풀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언어 행위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영어교육학과에 재직하시는 교수님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평생 영어만 교육하셨고 수백 권의 원서를 읽으셨고 최소한 몇 년은 외국에 사시면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학회에 참가하여 유명한 영어 교육학 교수님들의 영어 발표를 들어보신 분들은 다들 제 얘기에 수긍하실 듯싶습니다. 발음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영어가 분절돼 있습니다. 암기한 단어들로 조어된 문장이 제대로 된 의미를 전달하기는 불가능합니다.

#4 발전되지 않는다

암기에 근거한 영어 학습은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노출이 되어도 이미 굳어진 상태로 풀어질 수가 없습니다. 발전이 어렵습니다. 외국으로 이주하여 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말 호주 대학교에서 오래 영어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시는 분이 제가 다니던 학교를 방문하였습니다. 1시간 남짓한 강연에서 처음 자신의 소개를 제외하고는 전부 영어로 이루어졌습니다. 학생들은 대단히 감명받았고 저도 그분의 열정이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그분의 영어 내용입니다.

처음 얼마간은 발견하지 못하다가 한 2~3분 지나면서부터 강연을 마치는 순간까지 제가 발견한 그분의 영어는 완벽할 정도로 암기에 입각한 단어와 단어의 나열식 조어였습니다. 그분이 표현하는 영어는 100%가 우리말로 머릿속에서 생각한 내용을 꼭 같은 식으로 번역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방식, 즉 우리말로 생각해서 그 우리말 단어를 모두 영어로 옮기는 방식입니다. 그러니 말이 아니고 문장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발음도 억양도 마찬가지입니다. 30년 정도 호주에서 영어교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의 영어가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의 영어 구사 방식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단어를 암기하는 방식에서만 탈피하여도 학생들의 영어는 언어로서의 제 기능에 한 걸음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오히려 단어를 암기하도록 강요합니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부모님들도 단어를 외우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학생들 외국어 교육을 망치고 있습니다. 단어가 문장 속에서 문맥 속에서 자연스레 습득되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한 실험을 간단히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 실험

한 반은 20개의 영어 단어를 주고 암기를 시켜 시험을 봅니다. 다른 한 반은 그 단어가 들어가 있는 문장 7개를 주고 매일 번역을 시킵니다. 그리고 열흘 후 그동안 공부한 내용으로 20개 단어를 시험 보게 합니다. 어느 반 학생들의 점수가 높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문장을 공부한 학생들입니다. 비결은 투입된 시간입니다. 암기하는 학생들은 불과 2~3분 동안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합니다. 그렇지만 문장을 번역하는 학생들은 십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입력의 양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입력이 많으니 기억이 오래 간 것입니다.

또 하나 보다 더 큰 차이점은 문장을 번역한 학생들은 그 문장의 스토리를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르는 단어가 있어 망설이는 학생에게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의 한 부분을 말해주면 금방 아! 하고 그 단어의 의미를 기억해 냅니다. 실제 시간이 지날수록 단어 기억의 정도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문장을 해석한 학생들은 최소한 7개 단어 이상으로 구성된 문장을 해석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어의 뜻은 물론이고 문장의 구조 그리고 나아가 추론의 높은 단계에까지 에너지를 투자합니다.

이제 마칠 시간입니다. 잘못된 영어 학습 방법이 여럿 있으나 오늘은 가장 중요하고 치명적인 단어 암기에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조회 수가 높지 않아 많은 학생에게 전달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간혹 이 글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면 저학년일수록 지금 당장이라도 단어 암기의 유혹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연재의 네 번째, 마지막으로 "영어정복 가능하다"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태그:#영어독서, #단어암기,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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