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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숨진 이민호 군의 영결식이 엄수된 가운데 유가족들이 헌화 후 오열하고 있다.
▲ 오열하는 고 이민호군 유가족 지난해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에서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숨진 이민호 군의 영결식이 엄수된 가운데 유가족들이 헌화 후 오열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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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제주 음료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이민호군이 프레스를 조작하던 도중 사고를 당했다. 이군은 치료를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열흘 만에 사망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부실한 현장실습 제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이에 지난해 12월 김상곤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현장실습 전수 실태점검'을 실시했다. 동시에 2018년부터 파견형(조기취업형) 현장실습 제도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도 '2017 특성화고 현장실습 점검'을 실시했다. 또한 올해부터 서울시-서울시교육청-서울고용노동청이 ▲사업장·실습생 대상 노동인권교육 의무화 ▲사업장 점검 및 근로감독 강화 ▲취업프로그램 확대 등 노동인권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사업장은 안 가고 서류만... '반쪽짜리' 실태조사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같은 실태점검의 여러 한계점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실태점검 자체가 각 학교의 '서류'를 점검하는 것에 그쳤고, 실제 현장실습생들의 노동환경을 진단하지는 못했다. 점검에 투입된 인력도 많지 않아 각 학교별로 한정적인 조사만 이뤄졌다.

또 서류상 지적된 문제점이 이후 개선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실태점검으로 여러 문제점이 확인됐지만,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보다 제도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학생들이 실제 일하는 사업장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아 이번 조치가 반쪽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 실태점검에 참여한 이아무개 공인노무사에 따르면, 이번 점검은 공인노무사 16명과 각 특성화고 취업부장 16명이 2인 1조를 편성해 총 80여 개 특성화고를 점검하는 방식으로 지난해 12월 둘째 주에 진행됐다. 각 조가 5일 동안 5개 학교를 점검해야 했는데, 한 학교당 조사에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2시간 정도였다. 검토해야 할 서류(현장실습표준협약서 등)는 평균 100여 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인무사는 "'서류'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학교에 노동인권교육을 나갔더니 매일 야근을 하면서도 별도 수당은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서류'에서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을 발견해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학교에 안내하였고, 학교에서는 '서류'를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실제 '산업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최저임금도, 휴게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이번 실태점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위법 사항은 단연 최저임금 위반이었다고 한다. 2017년도 기준으로 1일 7시간을 근무하는 경우, 한 달에 최소 117만9352원을 지급해야 한다. 1일 1시간 연장근로를 하여 총 8시간을 근무한다면 138만9950원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이 노무사에 따르면 하루 7시간, 8시간을 일하면서도 급여가 100만 원 이하인 경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노무사는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주휴수당과 연장수당을 월급에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며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교육시간을 무급으로 처리하거나, 현장실습생에게 수습기간을 적용 3개월 동안은 최저임금의 90%, 심하게는 80%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월급을 117만 원이나 137만 원으로 지급하는 등 미세하게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았다"라고 덧붙였다.

과도한 연장노동 사례도 여러 건 지적됐다. 현장실습생의 1일 법정 근로시간은 7시간이며, 현장실습생 동의 아래 1일 최대 8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다. 성인과 마찬가지로 4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에는 30분, 8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 시간이 부여되어야 한다. 또 일주일에 이틀 이상의 휴일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제조업체나 건설업체의 경우 1일 근무시간이 10시간을 초과하고 있었으며, 근무시간이 아침 9시부터 새벽 5시까지인 곳도 있었다.

이 노무사는 "해당 건설업체의 경우, 사이 사이에 한두 시간 씩을 휴게 시간으로 기재하였으나, 실제로 해당 시간은 대기 시간에 해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며 "휴게 시간을 아예 부여하지 않거나 휴게 시간이 10분, 15분에 불과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는데, 보통 휴게 시간이 점심시간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곧 실습생의 상당수가 일하면서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돈 안 주고, 밥도 못 먹고... 현장실습생이 '노예'인가요
 돈 안 주고, 밥도 못 먹고... 현장실습생이 '노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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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점검에서는 또 대부분의 업체가 학생들과 체결한 근로계약서가 표준협약서상 근로조건과 불일치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표준협약서상에는 근무시간이 7시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근로계약서에는 8시간으로 기재되어 있다거나, 협약서상 근무일은 5일이나 근로계약서상 근무일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6일로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또한 표준협약서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으나 '1개월 내 퇴사 시 본래 지급하기로 한 금액의 80%만 지급한다'는 강제근로조항과 '급여 속에 퇴직금이 포함되어 있다'는 내용도 근로계약서에서는 볼 수 있었다.

이 노무사는 "이처럼 표준협약서와 다른 내용으로 근로계약서를 체결함에 따라 표준협약서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라며 "표준협약서 이외에 근로계약서까지 보관해야 할 의무가 없는 학교로서는 학생들의 실제 근로현황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가 어렵고, 설사 알았다고 하더라도 모른 척 넘어가기 쉬워진다"라고 지적했다.

이 노무사는 이 같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교육청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실습 제도에서 학교를 압박하는 것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학교를 압박한다고 하더라도 학교는 학생들의 근로조건과 근무환경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라며 "실제 학생들이 근무하는 현장을 바꾸기 위해서는 학교뿐만이 아니라 산업체를 엄격하게 점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현장실습 문제에 소홀하였음을 인정하고 현장실습 업체에 대한 전수적인 근로감독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우수한 현장실습업체 발굴을 위해 교육부 등 관계부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처럼 현장실습생의 안전사고나 노동인권침해, 노동법 준수와 같은 문제는 고용노동부가 적극 개입해 1차적으로 업체(내지는 현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통해 극복할 필요가 있다.

청년 노동자의 죽음, 열정페이... 사라질 수 있을까

앞서 고용노동부는 이민호군 사건과 관련해 해당 업체에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고 수시근로감독을 실시했다. 산업안전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에 시정지시 및 과태료를 부과하했고, 이에 따라 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및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현재 업체 대표이사가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한편,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현장실습의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올해부터 '파견형(조기취업형)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고, '학습형 현장실습' 제도를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거 OJT(On-the-Job Training, 직장 내에서 실무를 시키면서 교육·훈련하는 방식)형태로 운영될 경우 학습형 현장실습이라는 명목 하에 합당한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이른바 '열정페이'가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올바른 현장실습 제도의 정착을 위해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학습형 현장실습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이와 함께 파견형 현장실습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승현님은 '우리동네 노동권 찾기'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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