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스트럭> 포스터

영화 <원더스트럭>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람의 인연은 때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운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기적 같은 인연에 대한 동화,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 <원더스트럭>이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있다.

1977년, 엄마 일레인(미셸 윌리엄스)과 단둘이 살고 있는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은 아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는 엄마가 원망스럽다. 그런 와중에 엄마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버리고 벤은 우연히 엄마의 방에서 발견한 '원더스트럭'이라는 책과 뉴욕에 있는 서점 책갈피를 발견한다. 이것이 자신을 아빠에게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는 벤은 혼자 뉴욕으로 떠나는데, 과연 벤은 아빠를 만날 수 있을까?

뉴욕 박물관 속 '비밀 공간'에서 지내게 되는 벤

영화는 1977년 벤의 이야기와 1927년 로즈(밀리센트 시몬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1927년의 로즈는 아빠와 함께 살면서 뉴욕에 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다. 소녀는 유명 배우로 활동 중인 엄마를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나는데 자신을 반길 줄 알았던 엄마는 도리어 화를 내고 로즈는 홀로 뉴욕을 떠돈다.

벤과 로즈. 한부모 가정의 자녀라는 점, 그리워하는 대상을 찾기 위해 혼자 뉴욕으로 왔다는 점,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50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두 사람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에 두게 하는데 후에 이 선이 어떻게 교차 될까 관객들은 지켜보게 된다. 

 영화 <원더스트럭>의 한 장면

영화 <원더스트럭>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뉴욕에 도착한 벤은 또래의 제이미를 만나게 된다. 제이미는 이혼한 부모 밑에서 아빠와 엄마를 오가며 지내고 있는 외로운 소년이다. 제이미와 벤은 바로 친구가 되고 제이미는 자신의 아빠가 일하는 뉴욕 자연사 박물관 다락에 있는 자신의 비밀 공간에서 벤이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1927년의 로즈 역시 오빠 월터가 일하는 자연사 박물관에 다다르게 되고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신비로움에 경도된다.

인간이 기억하기도 전의 역사들을 수집한 공간은 영화의 제목처럼 '원더스트럭 (wonderstruck)'한, 깜짝 놀랄만한 곳으로 벤과 로즈의 시선을 사로잡고 각각의 전시물들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에 떨어진 운석, 박제된 동물들, 도시의 모형은 그곳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경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가온다.

세상의 작은 흔적들 따라 숨겨진 이야기 찾아가는 모습이 인상적
벤의 엄마 일레인은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벤의 방을 보고 마치 박물관 같다고 말한다. 벤은 자신의 관심사들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빠와 연관 짓는데 그의 수집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공간, 나의 오리진(기원)을 찾는 여정이 이 영화의 핵심이기도 하다. 대도시를 메우는 수많은 건물들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개인이 의도치 않게 남기는 흔적들이 바로 그 도시의 역사가 되고, 후손들은 거기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원더스트럭>의 한 장면.

영화 <원더스트럭>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벤과 로즈는 둘 다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고, 한부모 가정에서 곁에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다. 50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마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르게 각색한 듯 같은 공간에서 같은 전시를 보는 벤과 로즈의 여정은 많이 닮아있다. 감독은 1927년 로즈의 이야기를 흑백 무성영화 기법으로 담았는데 들을 수 없는 로즈의 상황과 대구를 이루면서도 1977년의 이야기와 확실히 구분 짓는 표현 방식으로 이는 오직 영화에서만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소리가 없기에 극의 흐름과 감정의 고저를 음악에 상당 부분 의지하는 무성영화는 음악에 맞춰 편집 또한 리드미컬 하고 이야기는 직접적임에도 시적으로 전달된다.

영화 <원더스트럭>의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소리를 잃은 인물들이다. 내가 알 수 없는 과거, 전달되지 못한 진실은 '무성(無聲)'과 다름없고, 이에 따른 소통의 단절은 그 공백만큼의 결핍을 가져오지만 발화되지 못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상실에 좌절하고 무너지지 않고 자신이 속한 세상의 작은 흔적들을 따라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가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영화 <원더스트럭>의 한 장면.

영화 <원더스트럭>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수집해서 한 데 모으는 과정은 잔잔한 감동을 주지만 그 의미들을 한데 어우르기에는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 아쉬움이 든다. 그럼에도 1970년대 뉴욕의 재현과 1920년대 무성영화의 감성, 토드 헤인즈 감독의 탁월한 영화적 리듬, 아역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등등. 이 영화를 보아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덧.
1. 영화는 삽화가이자 작가인 브라이언 셀즈닉이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셀즈닉이 직접 각본에도 참여했다. 그는 2011년 개봉한 마틴 스콜세지가 연출한 <휴고>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2. 로즈 역을 맡은 밀리센트 시몬스는 실제로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연기는 굳이 청각장애인 역이 아니라도 대사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다.
3. 줄리안 무어와 토드 헤인즈가 함께 한 네 번째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더스트럭 토드헤인즈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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