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대국민 사과 현장.

4일 오후 명동 은행회관에서 진행된 '영화진흥위원회 대국민 사과와 혁신 다짐 기자회견'에서 오석근 위원장이 사과문을 낭독하고 있다. ⓒ 성하훈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가 현재까지 진행된 정부 주도의 블랙리스트를 통한 차별 및 배제 행위에 대해 직접 사과 입장을 밝혔다. 부분적 사과가 아닌 청와대와 상급 기관의 지시 등을 인정한 전면 사과였다.

4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오석근 영진위 신임 위원장은 "지난 두 정부에서 관계 당국의 지시를 받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차별과 배제를 직접 실행한 큰 잘못을 저질렀다"며 지난 2009년 이후 진행된 각종 사업의 잘못된 지점을 짚었다.

영진위 측이 밝힌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는 총 56건. 이는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중간조사 결과와 영화계 인사들의 제보를 통해 사실이 확인된 내용을 중심으로 했다. 부산영화제 예산 지원 절반 삭감, 독립 및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의 부당 개입, 블랙리스트 작동에 걸림돌이 되는 영진위 내부 직원의 별도 관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오석근 위원장은 "현재도 관련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영진위도) 미규명 사건과  자체 별도 조사 통해 배제와 차별 사례를 면밀히 조사할 것"이라며 "재발을 예방할 제도적 보완책도 적극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오 위원장은 지난 주말 동안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입은 영화인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이에 대해 오 위원장은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셔서 마음이 더 무거웠고, 사과를 받기에 아직 이르다며 주신 호된 질책은 깊이 새겨 더 많은 일로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발 빠른 정상화 행보 

영진위의 차별 지원 부당 개입은 전임 영진위원장 이하 일부 고위 직원들이 재직할 당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럼에도 신임 위원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은 과거 집행부와의 단절을 꾀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일환으로 오석근 위원장은 2018년 4월부로 새롭게 재편한 직제 및 인사를 발표했다. 과거 5개 본부 체제가 4개 본부 12개 팀으로, 팀 단위였던 영화정책연구원과 공정환경조성센터를 국장 직속 부서로 개편됐다. 또한 4개 본부장들이 모두 연차 20년 미만, 40대 초중반으로 한층 젊어졌고, 본부장제 도입 이후 최초로 여성 본부장이 선임됐다. 

지난해 말부터 운영한 영진위 미래설계 TF 결과보고서 발표도 이어졌다. 크게 7개 분야에서 개선 방안을 논의한 결과물이었다. 김현수 신임 기획조정본부장은 "독립예술영화 지원 등 대기업 중심, 소수 기업 중심의 투자배급시스템에 좌우되지 않도록 영화 산업 활성화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왔다"며 "영화 인력의 직업 안정성과 청소년 영화 교육도 강조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고 알렸다.

 4일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대국민 사과 현장.

'영화진흥위원회 대국민 사과와 혁신 다짐 기자회견' 현장. ⓒ 성하훈


이 결과보고서를 참고해 영진위는 2018년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미 올해 예산안은 지난해 결정됐기에 한계가 있음을 알리면서도 영진위는 "당장 시행 가능한 것과 중장기 과제로 분류해 사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독립, 예술, 저예산으로 구분돼 지원되던 사업이 독립 및 예술영화 제작지원으로 통합돼 전년 대비 약 9.8억 원 증액된 예산이 투입된다. <다이빙벨> 사태로 지원이 줄었던 국제영화제 육성 지원 예산도 예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또한 아시아영화진흥기구를 설립하고 영화 과목의 공교육 포함 추진 등 타 관계 당국과의 협업이 필요한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재발 방지

이날 현장에선 '영진위의 대국민 사과 내용이 추상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오석근 위원장은 "우선 영진위가 블랙리스트 발동에 개입한 걸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한다"며 "이후 자체적으로 진상조사 특위를 구성한 뒤 백서화 해 구체적으로 발표하겠다"고 답했다.

김현수 본부장 역시 "금일 밝힌 사례들은 기존 판결문, 감사원 결과, 영화계 인사들 사이에서 구두로 얘기된 것 중 확실하다고 판단한 것들을 넣은 것"이라며 "과거 정부들이 공식적으로 진행한 일이 아니라 증거를 찾기 어렵기에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과거 두 정부뿐만이 아니라 그 전 정부이건, 현 정부건 문제로 추정되는 게 보인다면 계속해서 밝히고 개선하는 과정을 거치겠다"며 "TF 팀을 통해 영화인들의 각종 신고와 제보를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선 문체부와의 협업 및 법적으로 독립기구인 영진위 위상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차관급인 영진위 위원장의 확인 없이 문체부가 내부 문건을 열람하거나 지시했다는 등의 전횡이 심심찮게 들려온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오석근 위원장은 "현재 문체부와는 협업도 잘되고 영화 관련 업무에 대한 모든 부분이 영진위 주도로 이어지고 있다"며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해 오 위원장은 "영진위는 영진위만의 사업이 아닌 영화계 사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고, 이에 대해 영화계와 소통해 빠른 시일 안에 구체화 시키겠다"며 "그 일환으로 영진위 조직을 개편했으니 사업을 정교하게 다듬어 내년도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영화진흥위원회 대국민 사과 현장.

'영화진흥위원회 대국민 사과와 혁신 다짐 기자회견' 현장. ⓒ 성하훈


조종국 사무국장 역시 "영진위는 대안 마련과 재발 방지 방침 마련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며 "영진위 내부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기에 업무 권한 책임을 본부장들에게 위임해, 특정인이 아닌 실무자 차원에서 사업이 운영되도록 할 것이다. 관리자는 실무자를 공정하고 철저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남양주에서 부산으로 이전 추진 중인 종합촬영소 문제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조종국 사무국장은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내년 10월 철수 예정이고, 2달 간 연장 가능하지만 내년 10월에 부산촬영소를 여는 건 불가능하다"며 "부산 기장 근처에 (촬영소) 부지는 마련했지만 부지 안정성 문제 등 여러 문제로 진도가 못 나가고 있다. 문체부와 함께 여러 사안을 검토 중인데 지방선거가 끝나야 합의가 도출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사무국장은 "다만 영화계 우려와 별개로 영진위가 현재 안을 강행할 의사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영화진흥위원회 오석근 블랙리스트 영화계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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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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