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선수

김연경 선수 ⓒ 인스포코리아


챔피언결정전 마지막 7차전, 5세트 듀스 끝에 패배. 정말 한 끗 차이로 김연경의 '중국 리그 통합 우승'이 무산됐다.

김연경과 소속팀 '상하이 광밍유베이'(아래 상하이)는 3일 홈구장에서 열린 2017~2018시즌 중국 리그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 최종 7차전에서 톈진에 세트 스코어 2-3(25-21 22-25 25-18 22-25 14-16)으로 역전패했다. 이로써 톈진이 챔피언결정전 전적 4승 3패로 우승, 상하이가 준우승을 차지했다.

톈진은 11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중국 리그 최강자임을 재확인했다. 톈진은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인 해태 타이거즈와 같은 존재다. 중국 리그 14개 팀 중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 횟수가 독보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다른 팀들 중엔 상하이가 5회, 바이 선전이 2회, 장쑤·저장·광둥·랴오닝이 각각 1회씩 우승을 맛봤다.

상하이는 2000~2001시즌 이후 챔피언결정전은 물론 정규리그 우승도 해보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도 외국인 선수를 2명이나 보유했지만 정규리그 6위로 마감하며 포스트시즌 진출마저 실패했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김연경 영입 효과로 단숨에 정규리그 우승 팀으로 올라섰다. 지난 2월 3일 끝난 정규리그에서 무려 17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김연경은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사실 '황당하고 분한' 패배란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애당초 7차전까지 갈 일이 아니었다. 이미 6차전에서 통합 우승이 완성됐어야 했다. 최고 경기력을 앞세운 김연경의 맹활약, 톈진의 떨어진 팀 분위기 등으로 볼 때 상하이가 쉽게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전 세터 미양이 김연경을 외면하고 다른 공격 루트를 고집하는 토스로 일관하다 패배를 자초했다. 설상가상으로 상하이가 크게 앞서가면, 김연경과 짝을 이루는 레프트와 리베로가 리시브 범실을 남발하며 순식간에 동점과 역전을 허용하기 일쑤였다.

7차전 5세트 14-15 상황에서 김연경의 마지막 공격 아웃도 상하이의 리시브 난조로 어렵게 올라온 2단 연결을 공격하다 발생한 것이다. 세터와 리시브 라인의 부진이 끝까지 김연경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세터 비상식적 토스, 리시브 난조가 '발목'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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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국


챔피언결정전 전적 2승 2패로 균형을 맞춘 상하이는 지난 3월 27일 5차전에서 김연경의 눈부신 활약으로 완승을 거두고 3승 2패로 앞서가며 대역전극을 시작했었다. 특히 5차전에서는 상하이 세터진이 김연경을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연경을 믿어야 산다'는 진리를 상하이 왕즈텅 감독과 세터진이 실천에 옮기자 더욱 확실한 승리가 뒤따른 것이다.

이날 경기 직후 자존심 강한 중국 언론조차 김연경에게 극찬과 존경을 표하기 시작했다. 중국 최대 스포츠 전문 매체인 '시나 스포츠'는 이날 김연경의 중국 리그 활약상을 종합 평가한 칼럼 기사를 올렸다.

매체는 "상하이가 챔피언결정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은 분명 김연경의 존재감"이라며 "비록 중국 여자배구 리그가 한국인 한 명에게 정복당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중국 선수들은 김연경 같은 월드클래스 슈퍼스타에게 배워야 한다"고 썼다.

매체는 또 "기술적인 능력으로 판단하건대 우리는 김연경 같은 뛰어난 선수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다"며 "중국 리그가 한국인 한 명에게 정복당하는 것이 정말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기술적 실력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 김연경이 중국 리그에서 뛰는 가장 긍정적인 의미"라고 풀이했다.

이런 언론의 평가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이후 벌어진 6~7차전에서 상하이 세터는 눈에 띄게 김연경을 외면하고 다른 공격 루트를 고집했다. 지난 3월 31일 6차전에서 상하이 공격수들의 '공격 시도 점유율'을 살펴보면, 쩡춘레이 27.1%, 장이찬 25.7%였다. 김연경은 이보다 더 낮았다. 팀의 주 공격수가 갑자기 3번째 옵션이 되버린 것이다.

그러나 김연경은 이날 블로킹 8득점, 서브 5득점을 포함해 팀 내 가장 많은 28득점을 올리며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미양은 세트 스코어 2-1로 앞선 상황에서도 다른 공격수들에게 토스를 몰아주다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김연경 공격 점유율 30%대만 줘도, 거뜬히 완승했는데... 

7차전에서도 똑같은 패턴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결국 막판 5세트 5-10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그제야 김연경에게 토스를 집중했다. 김연경은 4득점을 올리며 듀스까지 몰고 갔지만, 역전승까지는 만들지 못했다.

조금만 일찍 김연경을 적극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팀 주 공격수의 경기력이 최고인 상황에서 세터의 외면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비상식적인 경기 운영이기 때문이다.

공격 점유율이 50%를 넘나드는 몰빵 배구를 해서는 안 되겠지만, 주 공격수라면 30%대 이상의 공격 점유율을 가져가야 팀이 승리할 수 있다.

실제로 챔피언결정전 7차전 중 김연경의 공격 시도 점유율이 30%대였던 2차전(33.7%), 4차전(29.4%), 5차전(33.3%)은 모두 상하이가 3-0, 3-1로 완승을 거두었다. 반면 패배한 4경기에서 김연경의 공격 점유율은 20% 초중반에 불과했다.

톈진의 주 공격수인 리잉잉의 공격 시도 점유율은 챔피언결정전 전 경기 내내 40%가 넘었다. 마지막 7차전에서는 무려 53%에 달했다. 이런 몰빵 배구로 상하이를 이길 수는 없었다. 상하이의 패배는 아이러니하게도 주 공격수 김연경에게 30%도 안되는, 너무도 낮은 공격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상하이 왕즈텅 감독의 선수 기용과 전략도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미양과 백업 세터인 볜위쳰의 교체 타이밍과 활용에서 엇박자를 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정규리그와 판 달라진 포스트시즌... 진정한 우승 팀은?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대개의 경우 챔피언결정전 우승 팀을 리그 우승 팀으로 평가한다. 또한 1년 동안 소속 팀원들이 흘린 땀의 결실로 거둔 성적이어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올 시즌 중국 리그는 그렇게 말하기 곤란한 변수가 발생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4강 팀들이 포스트시즌 탈락 구단에서 중국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거 임대로 영입하면서 판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때문에 선수 구성 면에서 4강 팀들이 정규리그와 사실상 다른 팀이 됐다.

특히 장쑤는 플레이오프 직전에 현 중국 국가대표 주전이자 세계 최정상급 센터인 위안신웨(23세·201cm·바이 선전)와 지난해 중국 국가대표 레프트로 활약한 리징(28세·186cm·저장)을 임대로 영입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있던 중국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 장창닝(24세·193cm), 궁샹위(22세·186cm) 등과 한 팀이 되면서 말 그대로 '리틀 중국 국가대표팀'이 돼버렸다.

톈진도 베이징에서 2명을 영입했다. 현 중국 국가대표 레프트인 류샤오퉁과 세터 천신퉁이다. 류샤오퉁은 리잉잉의 공격 부담을 나눠 지고, 리시브까지 책임지며 전력 강화에 큰 보탬이 되었다. 랴오닝도 바이 선전의 주 공격수이자 중국 국가대표인 류옌한을 영입했다. 상하이도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베이징의 주 공격수이자 중국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인 쩡춘레이, 저장의 주전 센터인 양저우를 데려왔다.

이런 임대 규정은 이전 시즌에도 있었던 것이지만, 올 시즌 중국 리그는 역대 어느 시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핵심급 선수의 대이동이 발생한 것이다. 포스트시즌이 정규리그와 다른 새로운 리그라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실제로 플레이오프 초반에는 선수 대이동에 따른 전력 차이가 그대로 반영됐다. 상하이는 장쑤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패배했고, 2차전에서도 2세트를 먼저 내주며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김연경의 맹활약으로 2차전 대역전극을 연출했다. 이후 3~4차전도 상하이가 연거푸 승리를 거두며 챔피언결정전 티켓을 거머쥐었다. 김연경은 3~4차전에서도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을 올렸다. 일각에선 상하이가 장쑤를 물리치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자체가 '기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4개국 리그 우승 변함없다... '최전성기 기량'도 소득

물론 상하이가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까지 달성했다면, 가장 완벽한 우승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못했다고 해도 김연경이 주도한 정규리그 우승의 가치와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4개국 리그 우승'이라는 전대미문의 대기록도 사실상 완성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연경은 지난 2월 5일 '시나 스포츠'가 발표한 2017~2018시즌 중국 정규리그 MVP와 베스트7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규리그 우승은 현재 중국 대표팀의 주 공격수이자 세계 정상급 선수인 주팅(25세·198cm·바키프방크)도 못해 본 일이다. 주팅이 2013~2014시즌부터 2015~2016시즌까지 활약했던 허난 팀은 3년 동안 9위~12위를 맴돌았다. 그러나 김연경은 '현역 중국 국가대표 한 명 없는' 상하이 팀을 이끌고 어려운 미션을 성공시켰다.

김연경 개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 더 있다. 자신의 최전성기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점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공격의 타점·파워·각도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의 모습과 똑같거나 그 이상을 보여주었다.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력과 서브는 런던 올림픽보다 더 노련하고 안정적이다.

김연경은 프로 데뷔 첫해인 2005~2006시즌 한국 V리그부터 일본 리그, 세계 최고 수준인 터키 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거쳐 중국 리그까지 쉼 없이 달려 왔다. 가는 곳마다 마치 '도장 깨기'를 하듯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고, 꼴찌 팀도 단숨에 우승 팀으로 만들어놓았다.

벌써부터 세계 최고 리그인 터키 등 여러 팀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만화 주인공보다 흥미롭고 감동적인 '김연경 배구 드라마'는 앞으로도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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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프로배구 V리그 KOVO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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