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서울 상암MBC에서 열린 <무한도전> 김태호PD 기자간담회.

30일 서울 상암MBC에서 열린 <무한도전> 김태호PD 기자간담회. ⓒ MBC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 김태호 PD가 직접 밝힌 <무한도전> '마지막'의 의미다.

토요일 저녁이면 시청자들의 웃음을 책임졌던 MBC <무한도전>이 오는 31일 종영한다. 김태호 PD의 메인 연출 하차 사실이 알려진 뒤, 프로그램 종영과 멤버 전원 하차설 등 <무한도전>의 향방을 두고 여러 설왕설레가 오갔다.

결국 <무한도전>의 선택은 종영. <무한도전> 마지막 방송을 하루 앞둔 30일, 김태호 PD는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무한도전>의 지난 13년과 마지막을 앞둔 소회를 전했다. 그리고 "일단 멈추지만, 영원한 이별은 아니"라고 말했다.   

김태호 PD는 "13년이라는 시간이 가늠이 잘 안 됐는데, 초·중·고등학교를 합친 것보다 긴 시간이더라. 엄청나게 긴 시간을 몸담았는데, 스스로는 잘했다는 생각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국 예능史 새로 쓴 <무도>의 13년

 MBC <무한도전> 방송 중,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 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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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7년 티에리 앙리 전 축구선수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숨겨뒀던 예능감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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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무한도전> 멤버들.

MBC <무한도전> 멤버들. ⓒ MBC


한 PD가 같은 프로그램을 10년 이상 연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PD들이 2~3년, 길어도 4~5년 정도 머물다 다른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니, 김태호 PD의 13년 <무한도전> 연출은 분명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오늘의 인기를 누리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열혈 마니아층은 물론, 대한민국 예능의 새 역사를 썼다 평가 받는 <무한도전>. 하지만 김태호 PD는 '아쉬움'과 '부족함', 시청자를 향한 '미안함'을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 절정을 찍었고, 2010년을 지나면서부터는 새로운 변화에 대해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 시즌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때마다 휴식이 주로 이야기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제작진이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더 컸습니다. <무한도전>에 역사와 전통이 생겼고, 시청자들과 익숙해지면서 점점 내부에서 신선도를 찾기 쉽지 않았어요. 멤버들과 10년 넘게 함께하다보니 가족처럼 친해져서 초반에 비해 좌충우돌하거나, 멤버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도 줄어들었어요. 시청자분들께도 스토리를 더 뻗어나가지 못하니 죄송한 마음이 많았죠."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을 안정적으로 연출하고 있던 당시에도 끊임없이 이직설과 거액 스카웃 제안설에 휩싸이곤 했다. <무한도전> 연출자에서 내려온 지금, 100억을 투자 받아 독립 제작사를 세운다더라, 넷플릭스로 이직한다더라, YG로 이직한다더라 등 구체적인 내용이 언급됐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MBC를 떠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김 PD는 "5~6년 전 PD들이 대거 이적할 때부터 관련 지라시가 돌았다. 과거엔 실제 이적 제안을 받은 적도있지만 최근엔 없었다. 콧대가 높아 보였나보다"라고 농담했다. 이어 "주변 분들도 '얼마 받고 어디어디에서 제안 받았다던데' 하며 감추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현대카드나 YG 등이 이야기되던데 그 곳에 가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김 PD는 "<무한도전>을 하면서 돈이나 명예보다는 <무도>만의 색깔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색을 지켜내기 힘든 상황이 됐고, 제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떨어졌다.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 자괴감이 오던 때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지금 김 PD가 <무한도전>을 떠나는 이유, <무한도전>이 '멈춤'을 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처음 <무한도전>에 발령 받았을 때, '파리대왕'이라는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비행기 불시착으로 섬에 떨어진 소년들의 이야기와 갈등구조가 <무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제 안에 내재된 인문학적 소재나 스토리텔링이 모두 바닥난 상태예요. 소위 탈탈 털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저는 털어서 제습기에 넣어 건조까지 끝난 느낌이에요. 비어있는 느낌이라 일단 저를 채우는 게 우선일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쉬다가 일주일에 하나씩 기획안을 만들어볼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선 섣부른 생각일 것 같아요." 

13년 만에 내려 놓는 '다음주' 부담... "다시 채우고 돌아오겠다"

 30일 서울 상암MBC에서 열린 <무한도전> 김태호PD 기자간담회.

30일 서울 상암MBC에서 열린 <무한도전> 김태호PD 기자간담회. ⓒ MBC


김태호 PD는 '배달의 무도'나 '레슬링 특집'처럼 크게 호평받은 특집을 끝낸 뒤엔 언제나 '이번 주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언제나 '다음주'는 김태호 PD와 제작진에게 두려웠다고. 장기 특집을 끝내고 나면 제작진도 함께 소진돼 그 다음주 방송을 준비하기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다음주'의 부담을 내려놓은 김태호 PD는 "저녁에 아내와 밥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당분간은 집에서 저녁 먹으면서 아들 한글 공부도 좀 도와줄 생각이다", "책장에 있는 세계문학전집도 읽고, 이동 시간마다 구글 세계지도 보면서 여행가고 싶은 곳 찍어두는 게 습관이었는데 그 중 몇 곳이라도 가보면서 내 안에 이야기를 채우면서 보내겠다" 등의 계획을 털어놨다. 이 계획들 말고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면서. 

김태호 PD와 멤버들 모두 <무한도전>의 컴백을 꿈꾸지만, <무한도전>에 대해 확실하게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답을 밝히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

"확실하게 '6개월 후에 <무한도전>으로 돌아오겠다', '새 프로그램으로 돌아오겠다'는 답을 드릴 수 있다면 이렇게 멈출 이유도 없을 거예요. 파업으로 인한 결방이 있었고, 지난해 두 달간 쉴 때도 곧 <무한도전>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새로운 구상을 하기가 힘들었어요. 지금은 그 틀을 좀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에요. <무도>다, 아니다, 라는 틀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어요. 그 결과가 <무한도전>일 수도 있고, 다른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다른 플랫폼을 위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어요. 저도 해도 좋겠다 싶고, MBC에서도 할 만하다는 승인이 떨어지면 그때 다시 이 자리에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만 안녕, 혹은 영원한 이별... "정해진 건 없다"

'무한도전 종방연' 하하-양세형-유재석, 도전은 계속됩니다! 무한도전 마지막 촬영날인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무한도전 종방연에서 하하, 양세형, 유재석이 '무한도전'을 외치고 있다.

▲ '무한도전 종방연' 하하-양세형-유재석, 도전은 계속됩니다! 무한도전 마지막 촬영날인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무한도전 종방연에서 하하, 양세형, 유재석이 '무한도전'을 외치고 있다. ⓒ 이정민


'무한도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인사 무한도전 마지막 촬영날인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무한도전 종방연에서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양세형, 조세호가 인사를 하고 있다.

▲ '무한도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인사 무한도전 마지막 촬영날인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무한도전 종방연에서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하하, 양세형, 조세호가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잠시만 안녕'이든, '영원한 이별'이든, <무한도전>을 위해 10년 넘게 시간을 보내 온 제작진과 멤버들의 허전함은 당연할 것이다. 김태호 PD는 "당분간은 목요일(무한도전 녹화일)마다 만남을 이어갈 것 같다"고 했다. 

"(어제) 종방연에서 멤버들이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멤버들에게는 목요일에 MBC로 출근하는 일이 하루 세 끼 밥 먹는 것처럼 일상이 되어버렸거든요. 멤버들이랑 농담처럼 '목요일에 MBC 주변 맴돌다가 마주치지 말자'고 했어요. 당분간 정기적으로 등산이라도 갈까, 스마트폰이라도 뭐라도 찍어서 올려볼까... 다들 이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서서히 받아들여야죠."

<무한도전>의 마지막 아이템은 '보고싶다 친구야' 그 두 번째 이야기다. 쉼표든, 마침표든, 13년 대장정의 끝을 조금은 더 특별하고 화려한 특집으로 장식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저 몇 주 결방을 앞둔 양, 평범하고 평이한 특집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열린 결말'을 암시하는 선택인 건지 궁금했다.

"'보고싶다 친구야'는 뭔가 중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보고 싶을 거야라는 느낌도 있고... 그동안 틀에 갇혀 저희가 보여드리던 모습만 반복했던 것 같다는 의도에서 시작한 특집이었어요. 프로그램 밖에 있는 인물들이 '너한테 이런 모습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은. 이런 열린 결말도 무도스럽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멤버들이 지난 13년을 돌아보는 소회도 담겨있어요. 결과적으로는 마지막에 어울리는 특집이 되기도 했고요. 내일 방송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30일 서울 상암MBC에서 열린 <무한도전> 김태호PD 기자간담회.

30일 서울 상암MBC에서 열린 <무한도전> 김태호PD 기자간담회. ⓒ MBC


13년 동안 <무한도전>을 아끼고 사랑해준 시청자, 팬들을 향한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항상 사랑해주시고, 기다려주시고, 기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기대감에 못 미쳐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13년이란 긴 시가 동안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어요. 돌아보면 질책에 귀 닫으려 했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번 주 방송 내용이 비판 받겠다, 욕 먹을 거다, 저희도 잘 알거든요. 하지만 매주 방송을 내보내야 하니 그냥 내보냈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정말 괴로웠습니다. 재미없는데 재미있는 것처럼 예고 만들때 죄송했고, 그래도 웃어 넘겨주시고 이해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쉼 없이 달려온 13년. 긴 휴식을 앞둔 김 PD는 "늘 바랐던 순간이지만, 막상 다가오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MBC나, 시청자들의 기대와 배려를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보람찬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무한도전>은 제게도, 멤버들에게도 특별한 프로그램이에요. 지금의 이별이 아쉽지만, 반갑게 돌아올 수 있는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 유튜브나 MBC 네이버, 카카오 계정 등을 통해 인사드릴 수도 있고요.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만남도 갑작스럽게 느껴지시도록 준비 많이 하고 고민 많이 하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자신 있게 보여드릴 무언가가 있을 때 이 자리에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김태호 무한도전 유재석 박명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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