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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페스티벌 뒤풀이 자리였다.
 청년페스티벌 뒤풀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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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페스티벌 뒤풀이 자리였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친구와 내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어색한 공기를 깨기 위해 맥주잔을 치켜들며, 각자 자신을 소개하자고 했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누구입니다" "○○당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누구입니다" "청년문화기획자인 누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어달리기가 계속됐다. 함께 간 친구가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는 누구입니다"라는 소개를 마치고 내 차례가 왔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소개할 그 무엇도 찾지 못했다. 대안학교에서 하던 글쓰기 수업은 마무리되었고, 다니던 직장은 육아로 인해 그만둬야 했고, 그렇다고 내 이름으로 낸 책 한 권 없는 나를 글쟁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뭐라고 나를 소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창피함의 정도와 망각의 속도는 비례하나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부럽다. 너도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대안교육에서 6년이라는 경력이 생긴 거잖아. 나는 나를 뭐라고 소개할지 모르겠더라. 나는 세상이 말하는 경력 단절 여성이야."

싱글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는 친구는 날 위로했다.

"내가 언젠가 겪어야 하는 걸 언닌 이미 다 겪었잖아. 연애든, 결혼이든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게  더 막막할 때가 있어. 언니, 이번 주말에 바람 쐬러 갈까?"

친구의 제안이 솔깃했지만, 내 일정만 확인하면 떠날 수 있는 시절은 끝났다. 결혼과 동시에 시간의 자유는 사라졌다. 주말에 스케줄을 만들려면 아이들을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한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내가 살던 지구를 떠나 여유가 없는 낯선 별에 사는 것 같았다.

비혼시절이 얼마나 좋았는지 결혼제도 안에 들어오고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결정할 때마다 '가족의 안테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아실현은 시간의 자유 없이는 불가능했다. 물론 사람들은 절실하지 않거나,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하겠지만. 자아실현도 물론이지만 직장생활과 육아를 함께하는 건 아이를 업고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었다.

여성들의 지친 하루를 누가 위로해줄 것인가

 여자들은 '현모양처' 대신 '마녀'를 꿈꾼다
 여자들은 '현모양처' 대신 '마녀'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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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와 마녀 사이

엄마, 엄마
그대는 성모가 되어 주세요.
한국전래동화 속의 착한 엄마들처럼
참, 아니, 사임당 신씨
신사임당 엄마처럼 완벽한 여인이 되어
나에게 한 평생 변함없는 모성의 모유를 주셔야 해요
이 험한 세상
엄마마저, 엄마마저… 난 어떻게…

여보, 여보
당신은 성녀가 되어 주오
간호부처럼 약을 주고 매춘부처럼 꽃을 주고
튼튼 실실한 가정부도 되어
나에게 변함없이 행복한 안방을 보여주어야 하오
이 험한 세상
당신마저, 당신마저… 난 어떻게…

여자는 액자가 되어 간다
액자 속의 정물화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액자 속의 가훈처럼
평화롭고 의젓하게
여자는 조용히 넋을 팔아넘기고
남자들의 꿈으로 미화되어
도배되어
'가화만사성' 액자 하나로
조용히 표구되어
안방의 벽에 희미하게 매달려 있다

(중략)

그녀는 애매하다
성녀와 마녀 사이
엄마만으로
아내만으로
표구될 수 없는, 정복될 수 없는
저 영원한 회오리의 명화는
여인에게 사랑은 벌 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여인은 사랑을 통해
여신이 되도록 벌 받고 있는 거라고
그녀는 스스로 영원을 표구하면서
세상을 배경으로 거느리고
늠름하게 서 있지

-김승희 문학선집『흰 나무 아래의 즉흥』(나남, 2014)

이 시는 80년대의 여성을 그리고 있지만, 현재의 여성과 소름끼치게도 달라진 것이 없다. 다만 다른 점은 아이에게는 '성모' 남편에게는 '성녀'가 되고, 거기에 덧붙여 경제활동까지 요구한다는 것이다. '슈퍼맘'이라 불리는 여성들의 지친 하루는 누가 위로해줄 것인가.

현실이 이렇다보니 여성 안의 '마녀'는 숨길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중세시대 누명을 쓰고 죽었던 수많은 마녀처럼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성은 새빨간 손톱을 숨긴 채 시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학창시절 친구들의 꿈 중에 드물긴 하지만 '현모양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아무도 자신의 꿈을 현모양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직업란에 '전업주부'라고 적고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새롭게 사회에 뛰어든 젊은 여성들은 경력단절을 겪지 않기 위해 비혼과 결혼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자아실현'이라는 욕망은 여전히 본능이다. 프랑스 소설가 프랑스와즈 사강이 법정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남을 파괴하지 않는 한 자신의 욕망에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비혼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아니니까. 오히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결혼이라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남들에게 더 피해를 주는 게 아닐까.

'자아실현'이라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여성이 비혼을 선택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기 위한 조건은 결혼보다는 비혼이 아닐까.

[비혼주의자로 한국에서 살아남기]
① '왜 결혼 안 하니' 물으면, 마돈나처럼 대꾸하렴
② "여자를 노예 취급한다" 불편하면서 통쾌한 그 말
③ 동지애만 남은 결혼... 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
④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혼자 잘살 겁니다
⑤ "아이 생기면 결혼해야 하나" 프랑스에선 필요 없는 고민
⑥ 조선시대 노비보다 못한 한국의 출산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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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사람. 책과 시집을 옆에 끼고 다니며 떠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열 살부터 시작된 글쓰기는 서른이 넘도록 언저리에 맴돌고 있으나 그런 나를 사랑하기 위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