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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씨의 서울특파원 로라 비커가 자신의 기사를 왜곡해서 보도한 한국기자들에게 항의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외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마사지'해서 보도하는 것은 한국 보수언론의 오랜 병폐다.
 비비씨의 서울특파원 로라 비커가 자신의 기사를 왜곡해서 보도한 한국기자들에게 항의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외신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마사지'해서 보도하는 것은 한국 보수언론의 오랜 병폐다.
ⓒ L. B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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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래 <조선일보>의 '애독자'였다. 그저 열심히 읽기만 한 정도가 아니라, 기사에서 오류나 모순을 찾아 일일이 지적해주는 '자원봉사'까지 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있게 지켜 본 분야는 이 보수언론의 외신 보도였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듯, 같은 외신도 <조선>의 손에 들어가면 미묘하게 다른 내용으로 바뀌곤 했다. 무려 16년 전인 2002년, 신문방송학도였던 나는 거듭되는 오역을 보다 못해 '<조선일보>의 심각한 외신조작'이라는 칼럼을 썼다. <조선>이 CNN 보도를 교묘히 '마사지'하는 행태를 비판한 글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무급봉사'가 무려 5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2008년 <파이낸셜타임스>의 오역을 비판하는 글을 마지막로 <조선>을 떠났다. 친절히 지도해도 전혀 수준이 나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복되는 오류를 지켜 보다가는 도저히 '맨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제는 잘못된 인용만이 아니었다. 교묘히 비틀어 쓰는 <조선> 특유의 기사를 읽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였으며, 이런 글에 익숙해지다가는 논리적 사고를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뒤에서 구체적 사례를 보여드릴 생각이다.) 이후로 나는 <조선>을 최대한 멀리했고, 공부를 마치고 학교에 자리를 잡았으며, 무엇보다 훨씬 행복해졌다.

그 사이 <조선>은 전혀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비비씨(BBC) 특파원이 직접 "내 글을 공정하게 번역해 달라"고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을 보면 말이다. <조선>은 또 다시 오역 사태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오랜만에 <조선>의 기사를 찾아서 읽어보니, 상황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오역' 논란을 부른 인용문은 '오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조선>, 영문판에는 원문의 뜻 정확히 기술

 논란이 된 <조선일보>의 보도. 기사 내용은 물론 제목도 원문과 큰 차이가 있다.
 논란이 된 <조선일보>의 보도. 기사 내용은 물론 제목도 원문과 큰 차이가 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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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발단을 이러했다. 비비씨의 서울 특파원인 로라 비커가 북미-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상반된 견해를 보도했고, 이 내용이 한국 언론에 의해 소개된 것이다. 문제는 몇몇 언론이 원문의 내용을 부정확하게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관련 기사 : BBC 기자 "한국 언론은 내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달라") <조선일보>는 3월 12일자 "BBC '文대통령 잘되면 노벨상, 안되면 벼랑끝'"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BBC는 미·북 간 대화가 '모 아니면 도' 식의 결과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성패 여부에 따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성과와 위험이 모두 크다는 뜻이다. BBC는 문 대통령에 대해 "'외교의 천재' 또는 '나라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동아일보>도 영국 비비씨가 "북·미 대화를 중재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외교의 천재이거나 자신의 나라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 중 하나일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며칠 뒤 비커 기자가 페이스북에 "일부의 보도와 달리, 내 기사는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한국 언론에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실제 원문은 이렇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의 천재가 되기도 하고 나라를 파멸시킬 공산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조선>과 <동아>는 원문의 일부를 누락시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에서 받고 있는 양극의 평가를 마치 비비씨의 평가인 양 써 서술했다. 두 신문 모두 원문을 왜곡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조선>의 왜곡은 훨씬 더 심각하다. 세간의 현재 평가를 요약한 내용을 <조선>은 회담의 결과인 양 비틀고 있기 때문이다.

"성패 여부에 따라" 문 대통령이 "'외교의 천재' 또는 '나라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 문장은 평가의 주체만 바꾼 게 아니라, 현재형을 미래형으로, 단순기술을 인과관계로 바꿔놓았다. <조선>의 오역에 대해 많은 비난이 쏟아졌으나, 정확히 말해 이것은 '오역'이 아니다. 

손진석 특파원이 영문학 전공에 통역대학원 출신이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손 특파원은 같은 날 쓴 영문기사에 원문을 정확히 인용하고 의미도 정확히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비씨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문 대통령이 '외교의 천재이거나 나라를 파멸시킬 공산주의자'라는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It said perceptions of Moon vary from "either a diplomatic genius or a communist set on destroying his country" […] — depending on who you speak to."

 문제가 된 <조선일보> 기사의 영문판. 같은 날 같은 기자가 썼지만, 한국어 기사와 다르게 원문이 정확히 인용되어 있고 뜻도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문제가 된 <조선일보> 기사의 영문판. 같은 날 같은 기자가 썼지만, 한국어 기사와 다르게 원문이 정확히 인용되어 있고 뜻도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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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영어'로 문재인 정부 때리기

<조선> 기자는 제목조차 오해의 여지를 남겨 두었다. "BBC '文대통령 잘되면 노벨상, 안되면 벼랑끝'". 잘 되면 대통령 개인의 영광이고, 잘못 되면 나라가 전례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뜻으로 들린다. 원문은 이렇다.

"만일, 정말 만일, 문재인 대통령이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다면 핵전쟁 위협을 줄일 수 있고, 이 업적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만일 모든 것이 실패한다면, 다시 벼랑 위 대치상황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But if, just if, he helps pull it off it may reduce the threat of nuclear war and he could win himself a Nobel peace prize. If all fails, it is back to brinkmanship. 

충분히 가능한 (아마도 더 정확한) 제목은 '잘 되면 평화, 못 되면 다시 벼랑 대치'일 것이다. 기자는 원문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도 왜 그런 기사를 쓴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해당 특파원의 다른 글을 찾아보았다. "영어로 연설한 佛 대통령"(2018.2.22)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 그대로 프랑스 대통령이 다보스 포럼에서 영어로 연설했다는 내용이다. 특파원은 "(자국어에 자부심이 많은 나라) 대통령이 공개 행사에서 과감하게 영어를 쓴다는 게 프랑스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면서, "지난해 프랑스 경제는 1.9% 성장해 7년 새 최고를 기록했다"고 썼다.

그런데 결론이 기묘하다. 8문단짜리 칼럼의 7문단에서 '프랑스 대통령이 영어로 연설했다', '프랑스에서는 생각보다 영어가 잘 통한다', '마크롱이 이중 언어학교를 설립한다' 등의 이야기를 한 뒤, 마지막 문단에서 느닷없이 문재인 정부를 등장시킨다. 읽어보자.

"하지만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수개월째 혁신이나 변화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오래전 '작동 불가'로 확인됐거나 선진국에선 거들떠보지도 않는 옛 운동권의 희망사항을 정부가 고집하고 있다. 미래를 여는 변화가 아니라 과거에만 매달리는 꼴이다. '현재와 과거가 충돌하면 미래로 가는 문이 닫힌다'는 게 역사의 철칙(鐵則)이다."

이 결론을 읽고 나서 내가 왜 <조선>을 읽을 때마다 머리가 아팠는지 알게 되었다. 마크롱이 강행하는 신자유주의 노동개혁을 옹호하기 위해 '영어' 이야기를 끌어들인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마크롱은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영어와 불어를 섞어 썼다. 한 시간의 연설에서 초반 20여 분만을 영어로 말했을 뿐이고, 나머지는 불어로 이야기했다.

아마도 프랑스보다 더 뛰어난 '혁신이나 변화'의 사례는 한국의 과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보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 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술 더 떠, 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가르쳐 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 두 지도자는 '일자리 쪼개기', '공공기관 성과 연봉제', '손쉬운 해고' 등 마크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보수개혁을 밀어붙인 장본인들이었다.

 <조선>은 마크롱의 영어연설에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사실 그는 '불어를 세계 제 1언어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지닌 사람이다.
 <조선>은 마크롱의 영어연설에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사실 그는 '불어를 세계 제 1언어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지닌 사람이다.
ⓒ 인디펜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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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퀄리티 저널리즘' 지향한다더니

<조선> 기사는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수개월째 혁신이나 변화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고 했다. 그가 어떤 통로로 한국 소식을 듣는지 알 수 없으나, 내게 들려오는 소식은 '혁신이나 변화' 그 자체다. 스스로 옷 벗어 거는 '파격'에서 시작해, 기자회견 즉석문답, 고위공직자 재산 투명성 강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공인인증서 폐지, 부정취업자 퇴출, 군사복지제도 강화, 전략 외교, 남북화해 모드 등은 '혁신이나 변화'가 아니고 뭔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 오면서, 집권 일 년도 안 돼 이런 혁명적 변화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특파원 말대로, 이것이 모두 '옛 운동권의 희망사항'이었다면, 운동권이 꿈을 제대로 꾼 셈이다. 그가 말한 "현재와 과거가 충돌하면 미래로 가는 문이 닫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나, <조선일보>는 '현재와 과거의 충돌'은 고사하고 그냥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조선일보>의 방상훈 사장은 신년사에서, 언론이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조선>이 나아가야 할 길로 '퀄리티 저널리즘'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퀄리티 저널리즘'은 사실을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분석해서 그 너머에 있는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선일보>의 보도행태를 보면, '퀄리티'는 고사하고 '저널리즘'조차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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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사회를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