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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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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2018년 3월 17일 3월의 하늘은 청아했고 딸은 시집을 갔습니다. 평소에도 주위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감정에 충실한 나를 잘 아는 손님들은 "저 친구, 오늘은 뭔 사고를 치려나?" 기대하는 듯 주위를 맴돌며 말랑말랑한 눈초리로 지켜봅니다. 그들이 무엇을 기대했는지 짐작은 하지만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만한 이벤트는 없었던 거로 기억을 합니다.

그리고 화환이 딱, 3개가 들어왔는데 그중의 하나가 오마이뉴스의 김학용 기자님께서 보내주신 화환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며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아무튼, 탈 없이 일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에게 여과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감정들을 들키고 싶지 않아 "어! 하늘 좋네! 하늘이 좋아"만 연발하며 너스레를 떱니다.

여기까지 내가 기억하는 부분이고 나머지 부분은 아내와 작은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 하늘이 좋네." 한숨 섞인 한마디를 하더니 픽 쓰러져 잠이 들더랍니다. 딸을 시집보냈다는 서운함이 감당이 안 되었던 게지요. 사실 그 서운함은 피로연에서 시작이 되었는데 안사돈께서 딸을 끌고 다니며 하객들에게 인사를 시키느라 아버지인 나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나눠보고 헤어졌지 뭡니까. 서운한 감정을 다독이는 데는 잠이 최고지요. 깨고 나면 더 커질 수도 있는 서운함을 주먹 안에 꼬옥 말아 쥐고서 옷도 안 벗고 침대 위에 몸을 던졌고 이내 잠이 들었던 게지요.

그 뒤로 기억이 전혀 없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작은딸 하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자다 말고 일어나 대성통곡을 하더라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딸 시집 보내는 일이 울 일은 아니잖습니까? 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라며 눈을 부라렸더니 작은딸 하는 말이,

"자다 말고 일어나 대성통곡하기에 깜짝 놀라 엄마랑 나와보니 울면서도 배는 고팠던 모양이지? 라면을 끓여 먹데? 라면 먹으면서 김치 없다고 나한테 막 욕도 하던데? 그 와중에 설거지까지 하고, 먹었으면 자면 되지 또 울어? 기가 막혀서! 아무튼, 어젯밤 아빠 라이브 쇼 잘 봤습니다. 히히"

아내와 딸은 출근했고 저는 쉬는 날이라 딸에게 선물하기로 한 시집 200권 중에 우선 100권만 보내고자 포장하다 말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딸을 시집보냈다는 소식만은 전해야겠기에…….

(사진은 어렸을 적 딸아이와 어제의 딸입니다. 그리고 축하금이 꽤 많이 들어왔는데 아내가 용돈 쓰라며 아주 조금만 주고 안 주네요? 원래 그런 건가요? 안도현 시인의 시 한 편 감상하시지요)

결혼이란?

결혼이란 그렇지요,
쌀 씻는 소리, 찌개 끓는 소리 같이 듣는 거지요
밥 익는 냄새, 생선 굽는 냄새 같이 맡는 거지요
똑같은 숟가락과 똑같은 젓가락을
밥상 위에 마주 놓는 거지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한솥밥 먹는 거지요
더러는 국물이 싱겁고 더러는 김치가 맵고
더러는 시금치 무침이 짜기도 할 테지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틀린 입맛을 서로 맞춘다는 뜻이지요
(서로 입을 맞추는 게 결혼이니까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혼자 밥 먹던 날들을 떠나보내고
같이 밥 먹을 날들을 맞아들이는 거지요
(그렇다면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무얼 할까요?)

혼자 잠들던 날들을 떠나보내는 거지요
같이 잠드는 날들을 맞아들이는 거지요
결혼이란 그렇지요,
둘이서 하나가 되는 일이지요
그리하여 하나가 셋을 만들고 넷을 만들고 다섯을 만드는 거지요

그 날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외딴방' 에서 혹은,
'숲으로 된 성벽' 에서 말이지요,
밥도 먹고 떡도 먹고 술도 먹는 일이지요




태그:#모이, #딸바보 , #아빠, #결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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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단어로 짧고 쉽게 사는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http://blog.ohmynews.com/han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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