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2018 시즌은 V리그 여자부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대부분의 경기가 남자부와 다른 장소에서 진행됐고 여전히 불리한 시간(평일 오후 5시, 주말 오후 4시)을 배정받았음에도 관중동원과 시청률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혹자는 여자프로농구(WKBL)처럼 여자배구도 따로 연맹을 만들어 독립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이야기한다(물론 실제 '여자배구의 독립'이 현실로 이뤄지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번 시즌 V리그 여자부가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는 역시 재미 있는 경기 내용 덕분이었다. 기존의 메디슨 리쉘(IBK기업은행 알토스)과 알레나 버그스마(KGC인삼공사) 같은 수준급 외국인 선수에 이바나 네소비치(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파토우 듀크(GS칼텍스 KIXX)같은 선수들이 가세해 높은 수준의 배구를 팬들에게 선보였다. 여기에 FA시장에서 많은 스타들이 팀을 옮기면서 순위 싸움이 더욱 흥미로워졌다.

치열했던 경쟁 끝에 봄 배구를 치를 세 팀이 정해졌고 오는 17일 기업은행과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봄 배구의 출발을 알린다. 양 팀 모두 일찌감치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지만 기업은행은 시즌 막판까지 전력을 다하며 3연승으로 시즌을 끝냈고 현대건설은 당장의 승리보다는 플레이오프를 대비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과연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고 챔프전에서 도로공사를 만나게 될 팀은 어디일까.

기업은행에 챔프전은 언제나 있었던 '연례행사'에 불과하다

 메디의 넘치는 파워는 현대건설의 높이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메디의 넘치는 파워는 현대건설의 높이를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11년에 창단한 기업은행은 리그 참가 2년째이던 2012-2013 시즌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순식간에 V리그 여자부의 신흥강자로 떠올랐다. 창단 당시부터 '차세대 거물' 김희진과 박정아(도로공사)를 동시에 지명하면서 전력을 부쩍 끌어 올렸고 이효희(도로공사), 김사니(은퇴) 등 경험 많은 세터들을 차례로 영입하며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한 젊은 공격수들을 이끌게 했다.

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통산 3번째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후 토종 거포 박정아가 도로공사로 이적했다(박정아를 영입한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커다란 전력 공백이 예상됐지만 기업은행의 저력은 대단했다. 득점 2위(852점), 공격 성공률(43.36%), 후위공격(41.77%), 퀵오픈(52.97%) 1위에 오른 메디가 V리그 최고의 공격수다운 활약을 펼쳤고 라이트와 센터를 오간 김희진도 외국인 선수들을 제치고 서브 1위(세트당 0.40)에 올랐다.

290득점에 42.33%의 서브리시브 성공률, 세트당 3.16개의 디그를 기록한 '살림꾼' 고예림도 공수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고 FA로 영입한 김수지의 노련함도 여전했다. 김사니의 은퇴로 기업은행의 약점이 될 것 같았던 세터 역시 기존의 이고은과 새로 영입한 염혜선이 적절하게 출전시간을 분배하며 큰 무리 없이 긴 시즌을 잘 마쳤다. 기업은행은 지난 시즌에도 정규리그 2위에 오른 후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챔프전 직행 실패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업은행은 정규리그에서 현대건설과 상대전적 3승 3패로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지난 2월6일 맞대결에서는 메디가 43점을 쓸어 담았음에도 외국인 선수 없이 토종 선수들로만 나선 현대건설에게 1-3으로 패한 적도 있다. 비록 현대건설이 6연패라는 최악의 분위기로 정규리그를 마감했지만 기업은행은 결코 현대건설을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다.

팀 역사는 길지 않지만 기업은행은 아직 창단 후 플레이오프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만약 이번 시즌에도 현대건설을 꺾고 챔프전에 진출한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5연속 챔프전 진출 기록을 또다시 경신할 수 있다. 이제는 대단한 목표가 아닌 매 시즌 당연히 가야 하는 수순이 된 기업은행의 챔프전 진출. 기업은행은 이번 시즌에도 플레이오프에서 시즌을 마감할 생각이 전혀 없다.

현대건설의 시즌 막판 부진은 봄 배구 도약을 위함이었다?

 소냐가 활약해 주지 못하면 현대건설이 기업은행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아진다.

소냐가 활약해 주지 못하면 현대건설이 기업은행을 이길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아진다. ⓒ 한국배구연맹


현대건설은 양효진과 김세영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높이를 가진 팀이다. 전위와 후위를 가리지 않는 '꽃사슴' 황연주의 공격력도 여전히 리그 정상급이다. 서브리시브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FA시장에서 공수를 겸비한 '밍키' 황민경을 영입했고 주전 첫 시즌을 맞는 이다영 세터는 이도희 감독의 집중 과외를 받고 급성장했다.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엘리자베스 켐벨도 현대건설이 원하던 '서브리시브가 가능한 윙스파이커' 자원이었다.

두 시즌 만의 정상 탈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현대건설은 시즌 초반부터 빠르게 승수를 쌓아 나가며 일찌감치 봄 배구 진출을 예약했다. 하지만 지난 1월30일 외국인 선수 엘리자베스가 발목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며 현대건설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외국인 선수 부재로 비상이 걸린 현대건설은 태국리그에서 뛰던 체코 출신의 소냐 미키스코바를 급하게 영입했다.

V리그 데뷔 후 7경기를 소화한 소냐는 28.72%의 낮은 공격 성공률로 63득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서브리시브 성공률은 고작 13.24%로 사실상 레프트 자원으로서는 활용가치가 떨어지는 선수라는 점이 확인됐다. 그렇다고 라이트로 활약했을 때 공격력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소냐를 라이트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황연주가 벤치를 지켜야 한다. 이도희 감독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즌 막판 6연패를 당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냐 해법을 찾으려 했지만 이도희 감독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펜딩 챔피언' 기업은행과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니 현대건설로서는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은 현대건설이 기업은행을 상대로 정규리그에서 대등한 승부를 펼쳤고 2015-2016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무실세트 3연승을 거둔 기억도 있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은 올스타전 이후 10경기에서 1승 9패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초,중반에 벌어놓은 승점이 없었다면 시즌 마지막 10경기에서 7승을 거둔 4위 GS칼텍스에게 역전을 허용했을 지도 모른다. 외국인 선수의 중도 교체라는 뜻하지 않은 변수를 만나면서 최악의 상황에서 플레이오프를 맞게 된 현대건설. 플레이오프에서 기업은행이라는 강적을 물리치고 통산 6번째 챔프전 진출을 달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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