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어, 하이파이브!'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가운데) 투구 후 다른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잘했어, 하이파이브!'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가운데) 투구 후 다른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참 이상한 게요. 경기 중 제가 소리를 지르면 팀이 잘 되고요, 제가 시무룩하게 있으면 팀 분위기가 침체돼요."

그래서 노장은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른다. 동료들보다 체력을 아껴야 하는 나이고 장애를 안고 있는 몸이지만 그는 팀을 위해 함성을 토해낸다.

60갑자의 마지막 해인 2018년, 그는 처음 패럴림픽과 마주했다. 운동을 시작한 지는 꽤 됐지만 늘그막에야 패럴림픽 출전의 꿈을 이뤘다. 1958년생, 한국 나이로 61세인 그에게 평창은 꿈이자 행운의 무대다.

지금 꿈 앞에 서 있는 정승원 선수는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맏형이다. 바로 아래의 방민자 선수보단 4살이 많고, 서순석·차재관·이동하 선수와는 각각 13, 14, 15살 차이가 난다. 스스로도 "체력이 좀 달리긴 한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최근엔 망막박리로 인해 눈 수술도 했다. 눈이 빛에 민감해져서 항상 선글라스를 머리에 꽂아놓고 썼다, 벗었다 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승원은 최선을 다해 팀 트레이너의 '노장 맞춤 특별훈련'을 쫓아가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항상 받쳐주는 동생들"을 잊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를 견디게 하는 힘이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차재관, 방민자 선수(앞쪽부터)가 던져진 스톤을 바라보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차재관, 방민자 선수(앞쪽부터)가 던져진 스톤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앞서 소개했듯, 그는 경기 중 분위기메이커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실제로 경기장에서는 작전을 지휘하는 스킵(서순석) 못지않게 정승원의 함성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그나마 "남은 예선과 준결승·결승을 위해 목을 아끼는" 중이란다.

한국 대표팀은 13일까지 5승 1패를 기록해 중국과 예선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앞으로 예선 5경기를 남겨두고 있으며, 4위 안에 들 경우 준결승에 진출한다. 그는 "지금까지 지른 악은 아무 것도 아니다. 후반부 들어가면 정말 많이 소리를 지를 거다"라며 "이게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바늘로 1번 찌르는 것보다 100번 찌르는 게 아프지 않나"라고 의지를 드러냈다.

정승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금메달이 목표"라고 못 박았다.

"정말 오랜 세월 (패럴림픽 출전을 위해) 도전했거든요. 그리고 61세의 나이에 기어이 올림픽에 나왔어요. 한국에서 하는 패럴림픽이 제겐 너무도 행운인 것 같아요. 그 행운을 금메달로 한 번 승화시켜보고 싶어요."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가 투구한 후 나아가는 스톤을 바라보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가 투구한 후 나아가는 스톤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컬링, 우리 인생살이 같아"

정승원은 20년 전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고속도로 현장에서 일하다 1톤 가량의 자재가 떨어져 머리와 척추를 다쳤다. 그 사고로 하체를 쓸 수 없게 됐다.

"그 당시엔 너무 놀랐죠. 다쳤다는 건 알겠는데, 걷질 못하니까요. 다친 부분 밑으로 감각이 없다는 게 (다친 상황에서도)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인생이 변해버렸죠."

정승원은 그때의 절망을 운동으로 극복했다. 처음엔 론볼(잔디에서 공을 굴리며 하는 스포츠)을 시작했고, 14년 전 컬링을 접해 지금 국가대표에까지 이르렀다.

"예전엔 저와 같은 장애가 생기면 60세를 넘기기 어려웠어요. 70세 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고요. 장기가 밑으로 쳐지고 욕창도 생기니까요... 근데 운동을 하다 보니 건강하게 살고 있죠."

그는 처음 컬링을 접했을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승원에게 컬링은 "스트레스를 풀게 만드는" 존재였고, "우리 인생살이를 느끼게 한" 존재이기도 했다.

"론볼은 작은 공으로 멀리에서 (표적 공을) 맞추는 건데요. 컬링을 해보니 (론볼에 비해) 너무 쉬운 거예요. 공에 비해 스톤이 크잖아요(웃음). 그리고 경기장에서 소리도 막 지르고요. 론볼은 그러지 못하거든요.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게 어찌나 좋던지... 그리고 컬링은 수십만 가지 퍼즐을 맞춰가잖아요. 매 엔드마다 퍼즐이 다른 거 보셨죠? 그게 우리 인생살이하고 같더라고요."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왼쪽)와 방민자 선수가 4엔드 종료 후 쉬는시간 도중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핀란드의 경기가 13일 오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왼쪽)와 방민자 선수가 4엔드 종료 후 쉬는시간 도중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 소중한


정승원은 이번 패럴림픽의 경쟁자로 중국을 꼽았다. 현재 중국도 5승 1패를 기록하며 한국과 예선 공동 선두에 올라 있다. 그는 "아시아 선수들끼리 모두 친하다. 저도 중국 선수들을 친동생처럼, 중국 선수들도 저를 친형처럼 생각한다"면서도 "그래도 결승에서 만나면 가만 안 놔둘 거다"라며 농담 섞인 답변을 내놨다.

"지금 중국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요. 더구나 다음 패럴림픽이 베이징에서 열리잖아요. 바짝 신경을 써야할 것 같습니다. 사실 중국과 여러 번 경기해봤어요. 중국 애들 경기하는 거 보면 진짜 소리 많이 지르잖아요. 근데 제 앞에선 소리 많이 못 질러요(웃음). 만약 결승에서 중국을 만나면 진짜 가만 안 놔둘 겁니다. 스포츠맨십으로요(웃음). 진짜 꼭 이길 겁니다."


[서순석] 휠체어컬링 '주장의 품격'

[방민자] 홍일점은 없다, 동료만 있을 뿐

'응원 감사합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표팀이 11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진행된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7대5로 승리를 거뒀다. 방민자, 정승원 선수가 승리를 거둔 후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응원 감사합니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표팀이 11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진행된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7대5로 승리를 거뒀다. 방민자, 정승원 선수가 승리를 거둔 후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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