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종영한다는 소식이 알려지고부터다. 아니, 사실 <무한도전>의 수장격인 김태호 PD가 물러난다고 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무한도전>이 나에게 특별한 이유는 하하vs.홍철 특집 때 내가 인터뷰이로 등장해 '하하에게 동정표를 던지겠다'는 발언과 함께 2초 정도 화면에 나와서만은 아니다. 과거 언젠가 아내가 '정말 이상한 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며 한 번 같이 보자고 해서 시청했을 때만 해도, 재미는 있었지만 이게 무슨 정신 나간 프로그램인가 싶었다.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지하철과 달리기 경주를 하고, 목욕탕 욕조와 물 빼기 대결을 하는 등의 행태가 정말 무의미해 보여서, 재미와는 별개로 가치 있는 프로그램 순위에는 넣지 않았었다(당시 방송 이름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던가, <무한도전>은 토요일 저녁에 다른 약속을 잡지 않도록 하는 마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그들이 하는 바로 그 도전들이 구차한 의미를 모두 떠나 숭고하게 보이기 시작했으며, 나 역시 그 평균 이하의 삶에 동조하며 공감하였고 대부분은 숨이 가쁘게 웃었고 몇 번은 울음을 참을 수 없는 상황을 겪었다.

수많았던 위기설, 그 위기설의 호쾌한 극복, 멤버들의 하차, 그리고 입성. 쏟아지는 인터넷 기사에 어느 때는 동조하지 못해 분노했고, 어느 때는 내 생각과 딱 맞아 떨어진다는 이유로 굳이 회원가입까지해서 호의적인 기사를 쓴 기자와 블로거에게 감사의 인사를 댓글로 남기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과연 이토록 관심을 실천으로 직접 옮긴 게 몇이나 될까 싶다. 대학생 시절 우르르 몰려가 뭣도 모르고 했던 데모 몇 번, 형태는 다르지만 대통령의 퇴진을 부르짖으며 청와대 가까이 행진했던 데모 한 번. 마지막으로 <무한도전>이 내 관심이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표출된 사례의 전부인 것 같다.

10일 방송된 <무한도전>을 보며 힘들게 웃었다. 약하게 천식 증상이 있는 나는 심하게 웃으면 기관지가 좁아지며 밭은기침을 계속 하게 된다. 기침하는 게 괴로워도 난 <무한도전>을 보아야만 했다. 나에게 지난 13년 동안 적어도 그런 의미를 지닌 프로그램이 바로 <무한도전>이었다.

<무한도전>이 <무한도전>인 이유는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무한도전>의 종영은 마치 내 청춘의 끝을 알리는 소식 같고, 마치 내 인생의 절반쯤을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느낌이어서 안타깝다. 몇몇 사람들은 이제는 재미가 없다고들 했다. 식상한 포맷이 되었다고들 했다. 멤버들이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들 했다. 신선한 변화가 필요하다고들 했다. 트렌드가 지나간 프로그램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난 정말로 하나도 동의를 못하겠다. 얼마 전에도 한 인터넷 기사는 '유행 지나간 캐릭터 중심 버라이어티라는 특성을 버리고 요즘 대세인 관찰형 버라이어티가 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무한도전>이 대놓고 오마주 한 적은 있어도 다른 프로그램을 따라간 적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되묻고 싶었다.

<무한도전>이 <무한도전>인 이유는 트렌드를 따라가서가 아니라 트렌드를 창조했기 때문이었다. <무한도전>은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먹방이 온 TV 프로그램을 휩쓸고 있을 때도 <무한도전>은 꿋꿋이 그만의 철학-매번 바뀌는 아이템-을 고집했고, 관찰형 프로그램이 대세인 지금도 전혀 흔들림 없는 길을 걷고 있다. 포맷이 따로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름처럼 무얼 하든 정말 늘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 수많은 도전 중의 일부가 다른 프로그램으로 파생되어 나갈 만큼의 파급력이 있었다.

늘 따끔하게 무한도전의 아쉬움을 지적해왔던 인터넷 기사와 블로거의 글 덕분인지는 몰라도 골수광팬이었던 사람들도 서서히 그들과 함께 아쉬움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훈수들을 얹어갈 때쯤, 드디어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했을, 무한도전의 끝이 현실로 다가왔다.

200회 특집 때를 기억한다. 콩트로 2000회를 맞이한 멤버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았다. 미리 보는 그들의 근황에 배를 움켜쥐었지만 방송이 끝나고 난 뒤 정말 진지하게 아내와 '현실적으로는 무한도전이 2000회가 되기 전 언젠가는 끝날 텐데 그러면 우린 어쩌지'라며 깊은 한숨과 함께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상상하기도 싫었던 <무한도전>의 끝, 그 끝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에 이렇게 자기합리화로 <무한도전>을 보내고 싶다. 또 다시 한번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으나, 도전을 끝내는 형식의 마지막 도전으로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고. <무한도전>은 그 종영까지 결국 도전이었다고.

무한도전 종영 아쉬움 마지막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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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목동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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