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번엔 네 차례!'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경기 도중 차재관 선수(왼쪽)와 서순석 선수가 브룸을 바꿔들고 있다.

▲ '자, 이번엔 네 차례!'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경기 도중 차재관 선수(왼쪽)와 서순석 선수가 브룸을 바꿔들고 있다. ⓒ 소중한


한국팀 스킵, 서순석의 투구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진지한 눈빛의 스킵 서순석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있다.

▲ 한국팀 스킵, 서순석의 투구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진지한 눈빛의 스킵 서순석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있다. ⓒ 소중한


좀처럼 보기 힘든 그의 밝은 표정. 대승을 거둬도, 실수를 범해도 그의 얼굴은 항상 묵직했다. 마치 '팀 킴'의 안경 선배처럼, 그 역시 경기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한국 휠체어컬링 국가대표 주장인 서순석(48) 선수의 이야기다. 그를 비롯해 다섯 명으로 구성된 한국 팀은 10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평창동계패럴림픽 첫 상대인 미국을 7-3으로 눌렀다. 선공임에도 오히려 점수를 따내고, 5엔드 후공에선 대거 4득점 하며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했다(관련 기사 : '팀 킴' 기세 이어가나? 한국 휠체어컬링 첫 경기 대승).

팀의 홍일점 방민자(57)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밝은 표정을 내보이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경기에 나선 차재관(47)·정승원(61) 선수도 밝은 표정으로 휠체어를 내몰았다. 벤치를 지킨 이동하(46) 선수도 코치진과 웃음과 악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서순석만큼은 달랐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빙판을 빠져나왔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을 지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소감이 궁금했다.

휠체어컬링 첫 경기, 압승!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7-3으로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이 기쁨의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 휠체어컬링 첫 경기, 압승!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7-3으로 승리를 거둔 한국 대표팀이 기쁨의 세레모니를 하고 있다. ⓒ 소중한


"대한민국, 화이팅!"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경기 시작 직전, 한국 선수들이 모여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대한민국, 화이팅!"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경기 시작 직전, 한국 선수들이 모여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소중한


"벅차요."

표정에선 읽을 수 없었던 그의 속내. 서순석은 "한국 관중들이 많이 와줘서 기분이 좋았다. 고마웠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처음 경기장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의아했는데 게임이 시작되니 많이 들어오셨더라"라며 "(그것 때문에) 선수들끼리 파이팅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라고 떠올렸다.

그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TV 중계가 없었던 게 아쉬울 정도로 그의 다짐은 비장해 보였다.

'작전 지시' 스킵 서순석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스킵 서순석 선수(아래쪽)가 팀원들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있다.

▲ '작전 지시' 스킵 서순석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스킵 서순석 선수(아래쪽)가 팀원들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있다. ⓒ 소중한


'어디보자...' 양팀의 치열한 눈빛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차재관(왼쪽)·서순석 선수가 투구하려는 미국팀을 바라보고 있다.

▲ '어디보자...' 양팀의 치열한 눈빛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차재관(왼쪽)·서순석 선수가 투구하려는 미국팀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25년 전 교통사고, 17년 후 만난 컬링

서순석은 스물셋의 나이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중학교 때 야구선수를 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지만, 사고 이후 척수 장애를 안고 말았다. 17년 후, 나이 마흔에 그는 휠체어컬링을 접한다. 늦은 나이라고 생각했지만, 휠체어컬링은 점점 그의 삶이 됐다.

그리고 서순석은 이날 한국 팀의 주장으로서 당당히 평창동계패럴림픽 첫 승을 이끌었다. 그는 "(그동안 대회에서) 저희가 첫 게임에서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그래서) 약간 긴장했지만, 생각보다 더 경기를 잘 치른 것 같다"라고 말했다. "5엔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 그는 "저희가 작전대로 플레이했고, 샷도 제대로 들어갔다. 마지막 차재관 선수의 샷이 조금 강했지만 잘 맞았다"라며 공을 돌리기도 했다.

사실 서순석이 말한 "마지막 차재관 선수의 샷"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스킵이라고 부르는 컬링팀의 주장은 작전을 이끄는 것과 동시에 각 엔드의 마지막 2개 스톤을 책임진다(각 엔드 당 총 8개 스톤 투구). 그것이 스킵의 역할이며 권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선 스킵인 서순석이 두 번째로 투구(3, 4번째 스톤)했다. 마지막 투구(7, 8번째 스톤)은 본래 세컨드인 차재관이 맡았다. 스킵인 서순석 입장에선 자신의 역할과 권위 하나를 내려놓은 셈이다. 백종철 감독은 "(작전 지휘와 마지막 샷의 부담을) 나눠드리고 싶었다"라며 "지난 핀란드대회와 브리티시오픈에서 실험했던 건데 성적이 2등, 1등이 나와서 이번에도 그렇게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서순석은 '팀'을 강조했다. 그는 "제가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라며 "제 욕심만 차릴 수 없잖나. 팀이 중요하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감독님의 작전이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덤덤히 말했다.

'오벤저스' 나가신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올림픽에서 모두 같은 성씨로 눈길을 끌었던 '팀 킴'에 반해, 휠체어컬링 팀은 모두 다른 성씨를 갖고 있다(뒤쪽부터 방민자, 이동하, 서순석, 정승원, 차재관 선수).

▲ 팀 킴? 우린 팀 오성(五姓)!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올림픽에서 모두 같은 성씨로 눈길을 끌었던 '팀 킴'에 반해, 휠체어컬링 팀은 모두 다른 성씨를 갖고 있다(뒤쪽부터 방민자, 이동하, 서순석, 정승원, 차재관 선수). ⓒ 소중한


'꼭 원하는 곳으로!'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스톤을 던지고 있다.

▲ '꼭 원하는 곳으로!'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정승원 선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스톤을 던지고 있다. ⓒ 소중한


사실 서순석은 한 번의 좌절을 맛본 바 있다. 2014년 소치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한 그는 9위에 머물고 만다. 단지 뒤처진 순위가 그를 힘들게 한 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이 따라가지 못함에 그는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실망은 좌절이 아닌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 자신도 "진짜로 열심히 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서순석은 지난 4년을 피나는 노력으로 가득 채웠다.

"제가 장애 레벨이 제일 높거든요. 소치에서 체력적으로 부대끼더라고요.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소치 다녀와 느낀 게 정말 많았죠. 그래서 일주일에 두, 세 차례 운동장 10km를 돌았어요. 3년 정도 그렇게 하다 보니 체력이 보완되더라고요."

안경 선배가 전한 꿀팁은?

서순석은 전날 열린 개회식에서 마지막 성화봉송 주자로 등장했다. 그의 옆엔 올림픽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여자 컬링팀 스킵 '안경 선배' 김은정도 서 있었다. 함께 성화를 받아든 두 사람은 성화대에 불을 붙이며 패럴림픽의 시작을 알렸다.

"김은정 선수와 함께 성화봉송을 하게 돼 좋았다"라고 소감을 밝힌 서순석은 김은정으로부터 받은 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김은정 선수가 '관중들로부터 받는 느낌이 게임에 임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주더"라며 "제가 빙질도 물어보고, 그냥 친한 여동생처럼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9일 강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순석과 컬링팀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가 최종점화자로 성화 점화를 하고 있다.

9일 강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순석과 컬링팀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가 최종점화자로 성화 점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평창패럴림픽 성화 점화 9일 강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순석과 컬링팀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가 최종점화자로 성화에 불을 붙이고 있다.

▲ 평창패럴림픽 성화 점화 9일 강원 평창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개회식에서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순석과 컬링팀 '안경 선배' 김은정 선수가 최종점화자로 성화에 불을 붙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올림픽에서 거둔 '팀 킴'의 은메달, 그리고 전국민적인 인기가 휠체어컬링팀에 부담으로 작용하진 않았을까. 이와 관련된 질문에 서순석은 단칼에 "부담은 없다"라고 답했다.

"저는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팀 킴이 해낸 것만큼 저희가 더 해내고 싶어요. 그래야 컬링이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제 그 친구(김은정 선수)와도 '잠깐 반짝이는 건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거든요. 계속 국민분들이 응원해주고 (경기장에) 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마지막으로 서순석은 "컬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종목의 경우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다. 저희는 이번 패럴림픽 전에 송현여고 주니어팀과 경기를 치르고 왔다"라며 "다른 종목은 (장애인, 비장애인의) 차이가 크지만, 컬링에선 서로를 받아준다. 남, 녀, 장애인팀 상관없이 다 함께 가는 게 맞다"라고 말했다.

'잘 가고 있나요!?'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한국팀의 스킵 서순석 선수가 투구 후 나아가는 스톤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잘 가고 있나요!?'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한국팀의 스킵 서순석 선수가 투구 후 나아가는 스톤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집중해서 투구!'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유일한 여성 팀원인 방민자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있다.

▲ '홍일점의 스톤 나가신다!' 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 한국 대 미국의 경기가 10일 오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렸다. 팀의 홍일점 방민자 선수가 스톤을 던지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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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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