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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북서부의 루아르(Loire) 강변은 중세 프랑스 왕들이 건설한 고성(古城)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루아르 강 주변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투르(Tours)를 천천히 산책하고 있었다. 투르도 긴 역사답게 도심을 흐르는 루아르 강 남쪽에 투르 성(Château de Tours)이라는 역사적인 고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투르 성을 찾아 투르 도심의 북쪽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프랑스 북서부 투르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예술이 꽃을 피운 곳이다.
▲ 투르 성 가는 길. 프랑스 북서부 투르는 다양한 문화유산과 예술이 꽃을 피운 곳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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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역에서 출발하여 관광안내소를 지나 걸어가니 생 가티앙 대성당(Cathédrale Saint-Gatien)의 장엄한 첨탑이 시야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대성당 앞에 자리한 프랑수아 시카르 공원(Square François–Sicard)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가 꽤 추운데도 공원에는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겨울에 이렇게 잔디가 잘 자라는 것은 유럽여행 때마다 궁금해지는 의문이다.

공원 안에서는 투르의 한 여인이 반려견과 함께 조용하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공원 입구에는 개의 그림이 그려진 설명문 아래에 새집 같이 생긴 보관함이 있었다. 내가 이 보관함이 무엇인지 쳐다보고 있었는데, 공원에 산책 나온 개가 급한 용무를 보게 되면서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이 반려견과 함께 온 젊은 여인이 보관함에서 바로 검은 비닐봉지를 빼더니 검은 봉지 안에 순식간에 개의 대변을 담는 것이었다.

초록색 잔디밭 위에 나무가 무성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 프랑수아 시카르 공원. 초록색 잔디밭 위에 나무가 무성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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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공원에도 반려견을 동반하는 시민들을 배려하여 반려견 용변봉투를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구촌에서 애견문화가 가장 발달된 프랑스에서는 반려견 주인들도 반려견의 용변을 책임지고 철저하게 처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작은 매너의 실천이 선진국의 발달된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려견 주인이 정성스레 관리한, 털이 고운 개를 보면서 한동안 휴식을 취하다가 다시 투르 길 답사에 나섰다.

루아르 강변, 투르 도심의 북동쪽 끝까지 걸어가자 내가 찾던 투르 성이 눈 앞에 나타났다. 실제 모습을 보니 투르 성은 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 등 루아르 강변의 다른 고성들에 비해 덩치가 아담한 편이다. 쓸쓸한 낙엽이 군데군데 걸려있는 거목들만이 성을 보호하듯 우뚝하니 서 있었다.

성의 크기는 비록 작지만 투르 성은 13~15세기에 프랑스 왕실에서 왕성으로 사용한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 투르 성도 2000년에 유네스코(UNESCO)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루아르 강변의 여러 고성 중 한 성으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왕의 역사에서 유폐와 도주, 그리고 파괴가 연속되었던 역사적인 성이다.
▲ 투르 성. 프랑스 왕의 역사에서 유폐와 도주, 그리고 파괴가 연속되었던 역사적인 성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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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성은 현재 많이 파괴되어 긴 장방형의 본성만 남아 있는 모습이다. 원래는 본성 건물의 네 모서리마다 네 개의 원형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건물의 남북에 두 개의 탑만이 남아 있다. 그 중 북쪽에 있는 더 뚱뚱한 탑은 '기즈(Guise)의 탑'이라고 불린다. 16세기에 이 탑 안에 프랑스 왕의 정적이었던 샤를 드 기즈(Charles de Guise)가 잡혀 와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앙리 3세(Henry Ⅲ, 재위 1574년~1589년)는 왕권을 위협할 여지가 있는 정적을 제거하는 데 이 투르 성의 시설들을 이용했다. 앙리 3세는 종교전쟁 당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앙리 드 기즈(Henri de Guise)를 그의 집무실에서 제거했다.

집권 초기의 앙리 3세는 가톨릭 측에 합류하여 개신교도들을 억압하는 전쟁을 벌였었다. 하지만 종교전쟁이 끝나갈 무렵 앙리 3세는 독자적인 세력으로서 중립적인 모습을 보여갔고, 개신교도들에게도 이득을 보장해 주었다. 이에 '신성동맹'을 결성하여 앙리 3세를 공격하기 시작한 가톨릭 측 중심인물이 바로 앙리 드 기즈 공작이었다.

당시 앙리 3세의 부하들은 앙리 드 기즈의 등을 다섯 개의 단검으로 찔러 암살했다고 한다. 앙리 3세는 후환을 없애고자 그의 아들 샤를 드 기즈(Charles de Guise) 등 기즈 가문 일가를 투르 성의 이 탑에 가두었다고 한다.

회색빛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기즈 탑은 높이가 25m에 달할 정도로 높다. 이 기즈 탑의 중앙을 유심히 보면 원형의 공안(空眼)이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폐쇄된 공간에서 적의 공격을 막으면서 활을 쏘거나 돌을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시설이다. 탑의 맨 위에도 숨어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원형의 돌출회랑이 있다. 이 돌출회랑은 내부에서는 위 아래가 통하도록 뚫려 있고 사방을 향하도록 삥 둘러져 있다.

기즈 탑을 쌓은 장방형 석재들은 시대를 거듭하며 보수된 흔적이 마치 한양성곽의 시대별 축성양식을 보는 것 같이 흥미롭다. 탑의 하단부는 마치 자갈을 쌓은 것 같이 작은 석재들이 혼재되어 있고, 중앙부와 상단의 석재는 오랜 세월에 풍화되어 곳곳에 반듯한 새 석재가 끼워져 있다. 비슷한 크기의 석재들도 흰색, 회색, 노란 색 등 지난 오랜 세월을 표현하고 있다.

이 탑 안에 갇혀 있었던 젊은 샤를 드 기즈는 어떻게 되었을까? 1591년 그는 투르 성의 경비병들을 속이고 기즈 탑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앙리 3세에 대적해달라는 가톨릭 진영의 기대에 부합하지는 못하였다. 그가 투르 성을 탈출한 후 앙리 3세를 제거했으면 드라마틱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될 터인데 이미 가문이 몰락한 그는 내전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사망하였다.

16세기 이후 투르 인근 루아르 계곡 상류 쪽에 화려한 르네상스 양식의 성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투르 성에 대한 프랑스 왕실의 애정은 점차 줄어들었다. 한동안 방치되던 투르 성은 17~18세기에는 지방 관리들의 저택이나 군대 주둔지 심지어 교도소 등으로 사용되었고, 당시 성의 건물 일부가 해체되고 성의 석재가 루아르 강의 제방을 쌓는 데 쓰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속절없이 훼손된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1671년 당시의 투르 성 조감도를 보면 큰 사다리꼴 모양의 성벽 안에 북서방향으로 치우친 작은 사다리꼴 모양의 성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의 투르 성은 성을 둘러싸던 성벽과 해자를 연결하던 다리 등 많은 구조물들이 사라졌으나, 성 중심 건물의 기본 배치는 당시 모습대로 남아 있다.

투르 성은 프랑스 중세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13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 역사기념물로 등재되었다. 현재 투르 성의 공간은 프랑스 국립 고고학 센터와 현대미술 갤러리의 기획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성의 벽 전면에는 전시 중인 사진기획전을 알리는 거대한 걸개그림이 투르 시민들을 부르고 있었다.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지만 현재도 투르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살아있는 문화공간이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구해준 의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 프랑스 의인 감사비.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구해준 의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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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투르 성 바로 앞은 프랑스 역사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는 루아르 강이다. 루아르 강변으로 건너 가려다 보니 예상치 못했던 한 기념비가 서 있다. 현대 조형물 같이 특이하게 유리로 만들어진 이 기념비는 이곳, 루아르 강 유역, 앵드르 에 루아르(d'Indre et Loire) 주에 살았던 프랑스 의인들에게 바치는 유대인들의 감사비이다. 이 비는 1940~1944년 프랑스에서 나치의 야만적인 대량 학살에 직면한 유대인들을 죽음 직전에서 구해준 '의인'들을 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유대인 학살 추모기관인 '야드 바셈 인스티튜트(Yad Vashem Institute)'가 인정한 이 의인들은 유대인들의 삶과 유대인들의 가족을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이 의인들이 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이 자행한 유대인대학살이라는 밤의 세계에 빛 줄기가 되었다고 감사해하고 있다.

이 기념비 마지막에는 더 인상적인 문구가 적혀 있다. 이 프랑스의 의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의무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의인들의 의로운 행동에 대해 영원히 감사하고 새로운 세대를 위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험난했던 삶을 경험했던 유대인들이 프랑스인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하고 있었다. 진심 어린 도움은 인류가 기억하고 기념하는 보편적인 가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투르 도심의 몇 개 블록을 지나왔지만 프랑스 역사의 여러 편린들이 도시 곳곳에 남아 이렇게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으로 프랑스 북서부 지방을 적시며 유유히 흐른다.
▲ 루아르 강.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으로 프랑스 북서부 지방을 적시며 유유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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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나와 북쪽으로 길을 건너자 바로 루아르 강의 잔잔한 물줄기가 나왔다. 루아르 강 위로는 '쉬스팽뒤 드 생 상포리앵 다리(Pont Suspendu de Saint Symphorien)'라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발음이 어려운 다리가 걸려 있다.

차량 통행 없이 인도로만 사용되는 이 다리는 루아르 강을 감상하기에 참 편안한 다리였다. 루아르 강변에 발달된 모래톱에는 수많은 철새들이 날아들고 있었고, 수량이 풍부한 강물은 시원스럽고 평화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세련된 검은 색의 트램을 수많은 투르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 투르의 트램. 세련된 검은 색의 트램을 수많은 투르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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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아르 강변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 아나톨 프랑스 광장(Place Anatole France)까지 걸었다. 아나톨 프랑스 광장 남쪽에 시원하게 뚫린 시내 중심가로는 세련된 검은색의 트램이 다니고 있었다. 중심가답게 트램이 도착하는 정거장 앞에는 많은 투르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투르 시민들을 가득 실은 날렵한 트램은 수많은 상가들 사이로 사라져갔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이방인에게 반가운 손 인사를 건넨다.
▲ 투르 골목길 답사.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이방인에게 반가운 손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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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화한 중심 대로보다는 일부러 광장 남쪽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처음 만나는 골목길, 처음 보며 인사하는 사람들. 미지의 도시에서 혼자 걷는 상쾌한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투르의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는 정말로 새로운 느낌이었다.

패션 감각이 놀라운 이발사가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투르의 이발소. 패션 감각이 놀라운 이발사가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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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안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사랑스러운 이발소도 있었다. 청색 머플러, 녹색 조끼에 청바지까지 입은 범상치 않은 패션의 이발사가 손님에게 이발을 해주고 있었다. 프랑스의 이발사들은 모두 이렇게 패션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인지 놀랍기만 했다.

이 이발사는 손님에게 이발한 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표정만 보아도 단골 손님과 이발사와의 정겨운 대화가 읽히는 것 같다. 머리카락 한 가닥 없는 이발사가 손님들의 머리를 다시 다듬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나는 이 멋진 이발사가 나를 쳐다보자 손을 흔들며 웃어보았다. 멋진 이발사는 나를 보고 경쾌하게 웃었다.

애견과 함께 산책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동네 분수대. 애견과 함께 산책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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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과 골목길이 만나는 곳에 작은 광장이 있고 광장 중앙에 청량한 분수 물이 졸졸 낙하하는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 앞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반려견까지 데리고 나온 한 아주머니가 동네 이웃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투르의 역사적인 성당을 찾아가려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광장에서 쉬면서 투르의 여유로운 사람들을 보며 손 인사를 나누었다.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투르 시민들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한가하고 여유롭다.

엄마 자전거 뒷좌석에 앉은 아이가 주변을 구경하고 있다.
▲ 투르. 엄마와 아이. 엄마 자전거 뒷좌석에 앉은 아이가 주변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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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자전거 뒷좌석에서 쉬고 있는 여자아이의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내 눈 안에 들어왔다. 애 엄마도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이웃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주머니를 따라 나온 귀여운 반려견도 이런 생활이 익숙한지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들으며 앉아서 쉬고 있다.

투르는 프랑스 북서부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한 곳이지만 너무 살기 좋은 동네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서울에서 바쁘게만 살아왔던 사람의 눈에는 이들의 여유가 어색하지만 부럽기만 하다. 나는 투르의 골목길을 다시 걸어가면서 여유를 누렸다. 역사와 예술의 도시, 투르는 일상이 예술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투르 , #투르성, #루아르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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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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