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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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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이나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를 만나기 전날이었다. 인터뷰 질문을 준비하던 와중에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생방송 인터뷰로 나오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할 말을 잃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준 안 전 도지사였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며 '시대교체'를 외쳤던 안희정조차도 뿌리 깊은 성별 권력에 찌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일부 남자들의 문제라고 볼 수 없다. '미투운동'을 통해 각계 여성들의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고, 더 이상 남성들은 과거의 방식대로 살 수 없게 됐다. 과거엔 '남자다움'으로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이었다는 것, 그래서 성폭력이라는 것을 온 사회가 알게 돼 버렸다.

남성들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 또 남성들이 지배하는 이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지난 6일 이나영 교수를 만나러 가기 전 '3.8 여성의 날'을 주제로 잡았던 질문지를 고쳤다.

"요즘 바쁘시죠"라며 안부를 물으니, 이 교수는 "항상 바쁩니다"라고 답한다. 방송 출연, 칼럼 기고, 여성단체 행사 참여, 언론 인터뷰까지.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가해자와 자신을 분리하는 남성들

 미투
 미투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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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기다. 요즘엔 여성학을 배우러 학생들이 많이 올 것 같은데.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이후 확실하게 학생들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이미 페미니즘 소양을 갖추고 온다. 이전에는 뭔지 모르는데 알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지금은 안전한 공간에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페미니즘 배우고 싶어서 온다. 청강생도 많고 저희 학교는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도 많이 생겼다."

- 2015년 이후 쭉 페미니즘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웨이브'다. 약간의 전진과 후퇴를 통해서 발전해나가는 것이고 단절되어 나간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지금의 흐름이 등장한 게 아니다. 선배들이 닦아놓은 것이다. 전국 조직으로서 꾸준히 성장해온 여성운동이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 그 선배들이 성차별적인 법과 제도를 개혁하지 않았다면 이런 현상은 있을 수 없다."

-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로 그 흐름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건가?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영화계 성폭력' '사진계 성폭력' 등 운동이 있었고 그 당사자들이 조직도 만들었다. 물론 어떤 일이 변곡점이 되고 기폭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이 (운동의) 원인은 아니다."

- 미투의 사회적 효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피해자는 '피해자라서' 사회적으로 배제당하고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런데 가해자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산다. 그렇다면 가해자에게도 적절한 처벌을 가하고, 사실에 대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야 하지 않겠나. 다음으로 배상(보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피해자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여러 차원에서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 지금 피해자들은 자기 생을 걸고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폭로자들에 대한) 이상한 방식으로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다."

- 가해자 단죄에만 초점이 모여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남성과 여성의 입장이 좀 다른 것 같다. 여성들은 성폭력이 성차별적 문화 구조에서 발생한 문제로 보고 나아가는데, 남자들은 선을 긋는다. 여성들은 일생에서의 피해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남성은 가해자였다.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성들은 가해자와 같은 성별이다. 동일시가 안 되니까 분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른 특정한 자, '나쁜 놈' 하나 처단하거나 솎아내면 안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해자성을 성찰하지 않고 철저하게 나와 그들을 분리하는 거다. 그러면 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안전해진다고 믿는다. 혹은 '진영논리'를 통해 '꽃뱀'이라든지 '대기업이 조종하고 있다'와 같은 말을 해서 벽을 친다."

"그들은 여성을 동료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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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투 운동을 통해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이 알려진 것은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앞에서는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어떻게 아무 죄책감도 없이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지난 대선에서 여성들이 '성평등이 민주주의 완성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에 대한 '예언'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진보진영의 가치에는 성평등이 빠져 있었다. 부차적인 것, 사소한 것, 특수한 것이라고 취급됐다. '페미니즘 넘어 휴머니즘' 이런 소리나 한다. 애초에 휴먼 비잉(Human-Being)에 여자가 없었으니까 페미니즘이 나온 거다. 한 번도 페미니스트 가치, 여성을 고려한 휴머니즘이 있던 적이 없다.

인권·민주주의·평등 이런 가치에서는 여성이 배제되어 왔으니, 말로는 거창하게 가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성평등이)무엇인지 모르는 거다. 결국 모든 보편적 가치라고 하는 것에 '젠더'라는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 아니겠나. 아무리 '진보 남자'도 '젊은 사람'도 그걸 모른다. 슬프지만 우리 남자들 수준이 이렇다는 걸 인정해야 될 것 같다.

- '남자들 수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남자들이 여자를, 약자를 대해 온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변화함으로써 이전에 했던 행동이 본의 아니게 범죄행위가 되니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남성적인 조직 문화, 남성 위계 사회에서 당연한 것들이 뒤집어지는 혁명적 순간이라고 본다.

그동안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안에서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야 '진정한 남성이다'라고 여기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또 그런 식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권력 있는 자에게 순종하고 권력 없는 자에게 권력을 부리면서 남성성을 구축해왔다.

그 가운데 절대적 타자로서 여성이 자리 잡고 있다. 남성성을 구축하려면 '여성이 아닌 것', '게이가 아닌 것'이 중요하다. 사랑은 이성애만 해야 된다고 강요받고, 자신의 여성적인 면을 부인하면서 남성이 성장한다. 그런 남성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찌질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페미니즘은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 해체하고 견고한 남성성의 구성 방식을 깨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판타지에 갇혀있는 남성을 구제하는 '남성 해방' 학문이다. '네 생긴 대로 내 생긴 대로' 서로 존중하면서 평등하게 살자는 것이다."

-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No Means No', 즉 여성의 거절을 정말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모든 공적 영역에서 누가 지배적인 성별인가. 남성이다. 사기업에서 의사결정권이 있는 자리에 여성은 거의 없다. 여성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 20년 전에 한 공대 교수님이 '자기가 만난 여자라고는 집에 있는 마누라와 딸, 술집 여자밖에 없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들은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동료로서 여성의 존재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성 집단에 여성이 한 명 들어오면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기회를 주지 않거나 여성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하나의 '문화'다. 내 경우에도 밥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내가 말할 때마다 남자 교수가 일부러 소리를 지르더라. 심지어 선배 여자 교수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 닥쳐라' '계집애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재떨이를 던지는 남자 교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무려 교수사회인데도. 물론 나는 같이 싸웠다. 그런데 같이 싸우면 '어딜 소리를 지르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여자' 취급하더라."

- 여성의 목소리를 낸다거나 거부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말씀인가
"상상해 본 적도 없고 경험해본 적도 없을 거다. '여자가 어디 눈 똑바로 뜨고 이야기하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고 같은 교수한테도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식으로 차별한다. 학생들한테는 또 어떻게 했겠나. 상상이 간다."

- 이번 안희정 전 지사 성폭행 사건처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제압하고 때리고 협박해야만 '성폭행'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강한 것 같다. 실제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고.
"'위력'이라는 개념에 포괄적으로 '권력'도 포함되는데, 이것의 핵심은 '성별 권력 관계'다. 거기에 '계층' 등이 얹어지면 피해가 더 심각해지거나 경감될 수 있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성별 권력 구조가 굉장히 크게 작동한다. 서구는 이미 성폭력 개념에서 핵심적인 게 '성차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식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당신은 성차별에 찬성합니까?" 아니라고 답한 당신은 페미니스트

 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34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렸다. 연대를 외치는 참가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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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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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들이 성찰 없이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신이 저지를 수 있는 성폭력에 대해 경각심을 갖도록 할 방법이 있을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해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구조적 부정의'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스스로 가부장제나 군사주의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구조를 돌아가게 하는 직접적인 수행자다.

이를테면 '남초사이트'(남자 가입자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의 야한 동영상·이미지 파일이 올라오면 '올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웃고 즐긴다. 이렇게 여성 차별이라는 구조적 부정의를 생산하는 구체적 행위를 하면서도 인지를 못 한다. 일상 속에서 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남자들이 성매매를 하면서 여성을 폭력의 대상, 착취의 대상으로 놓는 기제를 생산하는 데 기여한다. 이이리스 영은 우리 모두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한다며, '범죄행위'라는 법적 책임을 싸고 있는 더 큰 부정의 구조에 우리가 놓여있으며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 미투 운동을 통해 그간 쌓여왔던 수많은 젠더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분명 남성들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젠더 의식을 변화시킬 기회라고 여겨진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면 좋을까?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포르노그래피적으로 소비하고, 가해자의 악행은 신나게 손가락질할 문제가 아니다. 의식의 전환을 통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성차별적인 언행이나 문화적 관행을 개선할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자기 행동들을 규율해야 한다. 이제 '나는 뭘 할 건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가해자성을 성찰하고, 여성들도 피해자성을 성찰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동조자·묵인자로 가해자가 됐던 그런 경험들을 성찰하면서,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게 문화적 변혁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가 왔다고 본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정치가 삶의 영역을 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모든 정부 부처와 모든 당이 성평등한 관점을 기본적으로 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여성가족부가 모든 걸 해결하라고 하면 안 된다. 성차별적인 교육체계를 바꾸고 인권과 성평등 교육을 하는 것은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이고, 성희롱 문제와 성별 임금 격차는 고용노동부에 심각한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부처마다 핵심적으로 일을 담당할 수 있는 높은 직급의 '페미니스트' 담당관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 여성 비서관은 모든 영역을 들여다볼 수 있는 높은 위상을 지녀야 한다. 서울시는 성평등위원회가 서울시 홍보물까지 관여한다. 그런 체계가 이번 기회에 갖춰지고, 구멍 난 법들은 장기적으로 논의를 하고 숙의 과정을 고쳐서 전면적으로 고쳐야 한다."

- 마지막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특히 남성들에게.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은 성차별에 찬성합니까' 다들 아니라고 할 거다. 이제 페미니스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지향이다. 완성된 사람은 없다. 진보도 저는 지향이라고 본다. 그게 마치 완성된 것이고 완결된 것이고 화석처럼 굳어진 것이라고 생각 안 한다. 갈고 닦고 성취하면 된다.

그리고 50대 고독사 통계에 왜 남자가 많겠나. 성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자기 삶을 돌보는 연습이 안 돼 있어서 그렇다. 성별 고정관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다. 남성들의 삶을 위해서도 페미니즘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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