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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oo부터 #WithYou까지, 간명한 해시태그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나도 말한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뜨거운 주목을 받는 것이 새로울 뿐, 낯선 풍경은 아닙니다. 여성들은 이전부터 온라인 공간에서 해시태그를 앞세우고 사회 곳곳에 숨겨져있던 성차별, 성폭력 문제에 대해 말해온 바 있습니다.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파편화됐던 여성의 목소리는 작은 태그 아래 모여 힘을 얻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8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의 해시태그>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그간 터져나온 여성들의 소중한 선언을 조명하고, 앞으로 전하고 싶은 목소리를 한 문장의 해시태그로 정리합니다. 해시태그는 프로그래밍 도구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명령어' 앞에 사용하던 기호입니다. 우선,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작'입니다. '스쿨 미투'에 대한 김성애 전교조 여성위원장의 글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학교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증언을 모으고 있는 스쿨 미투 페이지.
 학교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증언을 모으고 있는 스쿨 미투 페이지.
ⓒ 스쿨미투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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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에 시작된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검찰 내 성폭력 등 미투 운동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5일에는 스쿨미투-학교 성폭력, 성차별을 고발하는 페이지(관련 링크)가 개설됐으며, 지난 4일까지 14번째 스쿨미투 증언이 들어왔다(관련 기사 : '미투' 열풍 초·중·고교로 확산 조짐... 대학가 폭로도 계속).

길게는 8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마음 속 깊이 꼭꼭 숨겨두었던 고통과 자기혐오,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동료교사를 성추행하고 성희롱 했던 가해자들은 일말의 가책도 없이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구성원들은 침묵했다. 이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여성들은 입을 모아 '학교에서 성희롱을 겪지 않은 여성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는 성적 사회화의 장소이다

학교는 남자는 남자답도록, 여자는 여자답도록 키워내는 성적 사회화의 주된 공간이다. 가정에서의 노력을 무력화시킨다.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학생들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나눠진다. 생물학적인 성별 이분법이 사람의 의식과 태도, 가치로 확장되며 이를 자연의 섭리로 가르치며 의심의 여지를 삭제한다. 

분홍색과 파란색으로 대표되는 장난감, 문구, 공주와 왕자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교육과정 안에서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고 있다. 성별에 따라 장려되는 태도가 정해져 있고 이를 잘 수행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로 주어진다. 교사 역시 당연의 세계에 의심을 품을 계기가 없다. 성별이분법은 여학생들을 주변화시킨다.

성을 단속하고 통제하는 것도 학교에서부터 시작된다. 현재의 성교육은 성을 성행위로 축소하면서 남녀의 연애, 결혼, 출산과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성은 개별 남성과 개별 여성의 개인적 관계이기에 당사자들이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데 성폭력은 개인의 일탈이며 가해자/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한다. 학생들의 이성교제는 불온하고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서 규제를 한다. 

여학생에게 성은 더욱 더 복잡하다. 학교 사회는 걸그룹의 댄스를 커버하는 여학생들에게 열광하지만 열광의 핵심은 그녀들의 댄스 역량이 아니라 성적 대상화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축제라는 한정된 장소에서만 이러한 행위가 허용된다. 화장도 짧은 치마도 허용되는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가 구분된다. 여학생들의 섹슈얼리티는 이렇게 소비된다.

학교는 학생들의 몸을 통제한다. 여학생들은 남학생보다 더 강하게 두발, 교복, 악세사리, 신발까지 학교생활규정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를 받는다. 어떤 학교에선 하얀 색 속옷을 입어야 하고 발목 양말을 신어서는 안 된다. '야하기 때문'이란다.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지만 성폭력이 발생하는 권력관계는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하라는 교육은 여성을 피해자화하고 피해의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며 공론화를 어렵게 하고 오랜 시간 자기혐오 속에 고통을 받게 한다.

페미니즘을 통해 우리는 교육이 성적 사회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성별이분법과 남성중심주의가 아닌 모든 존재의 평등과 존엄을 실현하는 교육을 모색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학교 문화를 성평등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학교는 교육하는 자와 교육받는 자의 위계가 확실하다. 교사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된다는 전근대적 의식이 여전히 강고하며 구성원 간의 위계는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예의와 예절의 문제가 된다. 정당한 목소리는 버르장머리 없음으로 인식된다.

교장들은 'OO학교 교육 가족'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민주적 소통과 리더쉽이 부재한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를 통제하는 방식은 가부장적이다. 교장은 아버지이고 여성들은 '딸'로 규정되면서 성희롱, 성폭력은 자식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명명된다. 교장과 교사, 교장과 학생  교감을 '윗분' '어른'인 구조에서 성평등은 요원하다.

중요한 보직의 1순위는 남성, 만일 남성이 없을 경우 자신을 잘 보좌할 수 있는 여성 교사들이다.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앞선 교장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좋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교장의 성추행을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한다. 침묵의 동조자가 되어야 승진이 가능하다.

학교 밖의 조직은 대표를 선출하기도 하지만 교직 사회에서 구성원의 합의에 의해 교장이 선출되고 임기를 마친 후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는(교장선출보직제) 경우는 거의 없다. 경력과 점수로 교장이 되는 현재의 학교 구조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교장이 무한한 권력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자녀를 맡긴 여성 학부모, 위계의 맨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 여성교사들은 성추행,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여학생들은 연령과 성별이라는 이중의 차별 구조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으며 가장 심각한 폭력을 겪고 있다.

 교실에서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
 교실에서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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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오는 사회의 문제다  

교실에서의 여성혐오가 심각하다. 여성에 대한 멸칭과 비하, 여성을 성기로 환원하는 일들이 일상화되었다. '앙 기모띠'에서 '느금마'로 교실은 혐오의 전시장이 되었다. 여학생들의 괴로움은 상상 이상이다. 매일 듣는 혐오발화는 여학생들의 자긍심에 심각한 상처를 준다. 혐오는 폭력을 정당화한다.

사회 구성원 중 누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가, 혐오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필요하다. 교사의 지적과 규정으로 제재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왜냐면 혐오는 사회가 무엇을 가치 있는 것으로 규정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혐오는 가치 있는 것에 소위 '정상, 기준, 표준'의 지위를 부여하며 다른 존재들을 주변화 시킨다. 혐오는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사회의 혐오는 교실로 스며든다. 인간의 존재가 성별로 구분되고 배치되고 사회에서 안전하고 존엄한 삶은 불가능하다.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은 기존의 성교육, 반성폭력 교육으로는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을 해소할 수도 없고 여성 혐오와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권자들의 요구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사회의 중심과 주변, 정상과 비정상, 표준과 비표준이라는 기준과 경계를 해체하고 성별, 성정체성에 무관하게 존재 자체가 존중되며, 나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안타깝게도 청와대의 답변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 끝을 쳐다본 격이다. 인권교육 강화는 기존의 대책의 되풀이에 불과하고 성의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와 제도, 문화라는 총체적 문제를 개인의 의식 전환으로 축소시켜 버렸다. 

최소한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임하고 젠더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정부라면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고 성폭력에 대한 오해를 강화시키는 성교육표준안 폐기를 선언하고 인권 기준에 맞는 성평등교육 가이드라인을 민관의 협력을 바탕으로 만들겠다는 선언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는가?

'학교에 페미니즘을'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들의 현실을 배우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이 무엇인지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배우는 것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인간 사이의 차이가 차별로 어떻게 전환되는지 그리고 권력과 위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배운다.

페미니즘 교육은 차별과 폭력을 알아차리는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며 저항하는 힘을 키우는 교육이다. 사적인 문제라 여겨졌던 것들이 사실은 사회적인 문제임을 알게 됨으로써 공동체가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방향을 안내하는 교육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여성혐오와 성희롱, 성폭력의 발생 구조를 문제 삼는 교육이다.

인식의 전환과 개선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식의 전환은 사회 구조의 전환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 부처, 특히 교육부, 시도교육청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과 집행하는 사람들, 그리고 학생을 직접 교육하는 교사들이 페미니즘을 알아야 한다.

페미니즘은 한국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문화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차별과 폭력의 작동 구조는 복잡할 뿐만 아니라 매우 강고하기 때문에 성폭력과 여성 혐오를 근절하고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기 대응과 더불어 사회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장기적 대책이 함께 실행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10대 (여성)청소년들은 차별과 혐오의 피해자가 아닌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구현'하는 주체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거대한 성차별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주체를 형성하는 교육이다. 페미니즘 교육은 개인의 인식 전환 뒤에 가려진 차별 구조를 볼 수 있도록 관점을 교육하는 것이다. 관점이 사회를 인식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출발이다. 페미니즘 교육으로 시작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성애씨는 전교조 여성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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